with. 오로라 레인필드
연회장의 불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며 떠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온다. 새벽의 찬 공기가 술과 열로 뜨거워진 몸을 식힌다. 조난자는 양팔로 제 몸을 감싸고 난간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린다. 잘 들어보면 노래 같기도 했다. 리듬을 타듯, 혹은 조급함에 떨듯 몸을 앞뒤로 까딱거리던 조난자는 중얼거림을 멈추고 코를 훌쩍였다. 걷어둔 소매에 물이 동심원을 그린다.
딸꾹.
오른쪽에서 들린 소리에 조난자가 고개를 든다. 딸꾹질의 주인공은 제풀에 놀란 듯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아. 그게… 말을 걸 타이밍을 못 찾았어요!"
"…오로라?"
"프랭키 경.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울어요."
떨어진 거리에 서 있던 오로라가 두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진녹색 드레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딸꾹. 그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딸꾹질에 민망하기도 했지만, 염려를 담은 다정한 얼굴은 민망함에 무너지지 않았다.
코를 훌쩍거리던 프랭키가 더러운 소매로 제 볼을 닦는다. 눈물이 묻어나왔다.
"진짜네?"
꼭 제가 뭘 하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 같은 얼빠진 표정을 바라보며 오로라는 프랭키의 곁에 섰다.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그렇게 많이 마신 건 아닌데…."
"아니면 슬픈 일이 생각나셨나요?"
"아니, 아니야…."
"그… 이건 왜 안 멈추는 거람!"
타이밍 안 좋게 튀어나온 딸꾹질에 오로라가 제 가슴을 두어 번 친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프랭키가 웃었다. 그러는 장본인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오로라는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때마침 손수건이 없는 걸 아쉬워했을 따름이다. 프랭키는 웃다가, 울다가, 울면서 웃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까?"
"어떤걸요?"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프랭키는 그런 식으로 두루뭉술한 말을 반복했다. 슬픈 건 아냐. 글쎄. 앞에 바다가 있잖아. 잘 모르겠는데. 그쪽은 어떻게 생각해? 아니, 아니야. 그런데도 오로라는 전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힘들면 내려둬도 돼요."
그러자 프랭키는 잠시 오로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코를 훌쩍이던 프랭키는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닦아내고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선원 한 명이 발코니를 살피러 오면서 오로라에게 필요한 건 없는지, 문제는 없는지 물었다. 그는 당장 돌아나가지 않고 조금 더 오로라의 안색을 살폈는데, 자세히 말을 들어보니 조금 전의 술주정뱅이와 문제가 있었을지 궁금했다고 한다. 아까 전부터 연회장을 빙빙 돌고 있다니까요. 술 깨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뭘 찾는 사람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하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저 사람, 배에서 일하는 처지에서는 썩 좋게 보이진 않거든요. 혹시 무슨 일 있었을까 봐 걱정돼서 여쭤봤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면 다행이에요. 오로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빙긋이 웃어 주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선원이 연회장으로 돌아가자 오로라는 양팔을 감싸고 제 몸을 난간에 기댄다. 니케 호의 후미는 바다에 걸쳐져 있었는데, 그 때문에 세상이 온통 새까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늘에 붙잡힌 달과 별, 달빛을 받아 넘실거리는 물살만 아니었다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을 터다.
술주정뱅이의 말에서 오로라가 무엇을 발견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로라는 홀로 바닷바람을 조금 더 쐬다가 연회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등불로 밝힌 실내는 따뜻하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