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쟈에게.
안녕, 나쟈.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조금 전까지 당신 얼굴을 보았는데, 이곳에 앉아 당신 몰래 미래의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네. 반항아가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이게 당신에게 보내는 첫 편지라니, 믿어져요? 참, 이곳은 겨울의 여명 관찰 파견지입니다. 당신은 아마 봄의 우리 집에서 이 편지를 읽고 있겠죠. 어때요. 그곳의 나도 잘 지내고 있나요?
겨울이에요. 겨울... 당신은 내게 내가 여름에 만난 겨울 친구라고 말했죠. 이곳에서는 눈을 보지 못했지만, 눈이 내리는 계절이 되면 나는 재작년 겨울을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 지쳐 있었고. 외로웠고.. 갈 곳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다시 만났죠. 겨울, 왕성의 나무 아래에서... 발아래가 꺼지고 손에 잡히는 게 없어 힘들던 그때에 당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 그 온기가 오래전과 다르지 않아서, 그게 날 얼마나 슬프고 기쁘게 만들었는지 몰라요.
나쟈. 나에게 바다는 오랫동안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곳이었어요. 나의 고향에서는 바다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오래전에, 처음으로 바다에서 죽은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나는 바다가 새까만 죽음 같아서 무서웠어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겠다면서 바다를 보러 갔다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어요. 며칠을 그렇게 바다를 보러 나갔던 것 같아요. 죽음을, 이별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앉아서 말했죠. 이반. 저긴 포에르디아 너머야. 그는 수평선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어요. 포에르디아를 떠난 사람이 어디로 돌아올 수 있겠니. 그를 보러 오는 건 좋다. 다만 그는 저 너머에, 너는 여기에 있다는 걸 명심해. 나는 죽은 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갔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며 바다가 더는 무섭지 않아졌지만, 슬픈 건 여전했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바다로 떠나는 걸 집을 떠나서 처음 봤어요.
바다로 당신이 떠나는군요. 나는 내가 보았던 세계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 나에겐 바다도 포에르디아네요. 나는 이제 바다에서 산 사람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어요. 나쟈. 당신 덕분에..
당신은 내게 떠나는 일이 늘 슬펐느냐고 물었죠. 물론 슬펐어요. 언제나.. 하지만 매번 이만큼 슬퍼했다면 나는 포에르디아 곳곳을 방문해보지 못했을 거예요. 가장 슬펐던 이별은 늘 집을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나의 고향 헤이터스, 라제니에 학원, 그리고 당신. 나의 세 번째 집. 이제 나는 이별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지만, 당신과의 이별은 재회를 믿고 싶게 만듭니다. 바다로 떠난 사람은 다신 돌아오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당신은 살아 있으니 언젠가 한 번은 이 땅을 다시 밟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소망을 품어요. 당신이 많은 걸 보고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웃기는 일은 유리에게 맡기면 누구보다 잘 해내리라 믿기 때문에 걱정되지 않네요.
나는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나아가는 당신을 그려봅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라 내가 슬퍼하는 일로 눈물 지을까 걱정이 되네요. 걱정 말아요. 우리가 더는 밀회를 즐길 수 없게 된다는 건 슬프겠지만... 나는 바다에서, 그리고 짙푸른 수정 속 요정에서, 우리의 오르골과 둘만의 인장에서, 함께 만든 노래와 곳곳의 나무에서 당신을 찾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 나는 당신만이 읽을 편지를 밀회라고 이름 붙일 거예요. 우리의 칭호를 저 먼 곳까지 널리 알려줘요.
참 신기한 일이죠. 전혀 다른 세계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다는 것이. 당신과 함께여서 난 기쁘고 행복했어요. 지금 곁에 내가 있나요? 당신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당신을 보내는 편지를 썼다니 조금 괘씸하려나.. 그렇다면 꿀밤을 먹이고 꼭 안아주세요. 오늘은 내가 요리할 테니, 당신은 무사히 집에 도착해 편히 쉬고 있길.
내 오랜 친구이자 나무 그늘인 당신이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당신 발이 닿는 모든 길에 황금별이 함께하길.
사랑을 담아,
이반.
추신.
오늘은 당신의 신발을 여러 켤레 봤어요. 혹시 집에 있던 신발을 다 가지고 온 건 아니겠죠? 당신은 언제나 날 놀라게 해.
돌아갈 땐 꼭 같이 돌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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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둘 말린 종이가 함께 동봉되어 있다. 자색 리본을 푸르고 종이를 펼치면, 나쟈의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