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는 법
2023. 12. 14.

 


Piotr Wiese - Waltz in B

 

with. 바울

 

 

 

바다에서 나고 자라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 어떤 기분일까? 돌로레스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사람이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기분을 묘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돌로레스는 대신 바다를 사랑하는 방법에 관해 읊었다. 당신은 배를 흔드는 파도를 느끼고 가끔 튀기는 물방울에 젖어볼 수 있다. 해안가에서 물장구를 칠 수도 있고, 모래를 밟으며 산책을 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달갑지 않다면 그냥 파도 소리를 들어봐도 된다. “발장구나 치는 정도로 바다를 알 수는 없을 텐데.” 바울은 그렇게 말했지만 돌로레스는 생각이 달랐다.

“그리고 아까 말하고 싶었는데.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거랑 바다에서 헤엄치는 건 다릅니다. 수영장 물은 안 짜거든요.”

그렇게 말하자 바울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는 아파 보였던 사람이 마냥 유쾌하게 웃는 걸 보니 돌로레스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뭡니까. 같이 웃죠.” 하늘을 수놓는 번개쯤은 잠시 잊을 수도 있을 것처럼.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휩쓸려 허공으로 날아갔다.

“있잖아요, 돌로레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기왕 도와주시는 거 이번 두 번만 도와주실래요? 좋은 꿈을 꾸기를 대신 빌어드릴 테니까.”

“… 보기와 다르게 뻔뻔하신 분이셨네요. 뭔지 들어나 보겠습니다.”

“다음에, 제가 두 발로 멀쩡하고 부끄러움 없이 델가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바다를 건너는 법 좀 알려 주실래요?”

“….”

“바다 위를 걷고 싶어져서요.”

바다를 등진 채로 바울이 환하게 웃었다.

 


 

 

​​

그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너왔다.

 

군인들은 델가로 후퇴했다. 알다하가 만든 거대한 물의 장벽은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4일이 지나자 파도를 뚫고 바다 위에 다리가 놓였다. 기사단은 검은 제복을 입고 다리를 밟았다. 델가의 땅 위에 내리치는 벼락은 선전포고처럼 느껴졌고, 돌로레스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전쟁은 계속된다.

멀리 고향의 섬이 보였다. 몇 년 만에 보는 것인지 그리움이 흘러넘쳐 당장에라도 바다를 건너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두렵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저곳은 지금 우리가 밟아서는 안 되는 땅이다. 차라리 이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돌로레스는 군화에 달라붙은 모래를 털고 등을 돌렸다. 멀리 기사단을 막기 위해 알다하가 일으켜 세운 물의 장벽이 보였고, 멀지 않은 곳에 기사가 한 사람 보였다. 바울이었다.

바울은 걸어서 바다를 건너왔다. 돌로레스의 등 뒤에는 델가의 바다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란히 바다를 걸을 수 없었다. 아직은, 아직은…. 습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돌로레스는 총을 어깨에 매고 바울을 지나친다.

 

 


 

 

“바다 위를 걷고 싶어져서요.”

바다를 등진 바울이 말한다. 여전히 팔에서는 피가 묻어나오고 있다. 돌로레스에게 팔을 맡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못 본 척하면 나쁜 꿈을 꿀 것 같다는 사람에게 좋은 꿈을 꾸길 빌어준다 했으니 말 다 했지. 돌로레스는 바울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거뒀다. 그렇다면 차라리 바울의 부상이 며칠쯤은 그를 의무실에 붙잡아둔다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을 잠깐 해본다.

“그럽시다.”

그렇게 된다면 이 사람에게 바다를 알려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정말요?”

“정말. 여벌 옷은 꼭 준비하시고요.”

돌로레스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장난처럼 답했다. 두 사람은 소풍 약속을 잡은 아이들처럼 쓸데없지만 중요한 준비물에 관해 한참 토론했다. 토론을 멈춘 건 돌로레스의 무전기였다. “잠시만요.” 돌로레스는 바울에게서 멀어져 통신을 나눴고, 바울은 그런 돌로레스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돌로레스가 돌아왔다. 헤어질 시간이다. 바울이 인사를 하려던 찰나 돌로레스가 뜬금없이 말했다.

“바다 위를 걷는 건 저도 안 해봤는데 그거 같이는 못 해요?”

“아하하. 저도 자신은 없는데 노력해볼게요.”

“좋습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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