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상, 죽음에 관한 묘사가 있습니다.
“3시 방향입니다.”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로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머리의 상병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돌로레스를 바라보았다. 땀이 번들번들한 얼굴은 매우 어려 보였다. 돌로레스는 델가의 군인들이 보통 어떤 나이에 입대하는지를 다시금 상기했다.
“어떻게 할까요?”
상병이 조급하게 물었다. 돌로레스는 눈가에 들어간 땀을 팔로 닦아냈다. 그들은 한쪽 벽면이 뚫린 건물의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돌로레스는 총알을 다시 채워 넣으면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상병의 능력 운용 방식은 대충 파악했다. 화려한 것보다 조심스럽고 섬세한 방식을 좋아하는 군인이다. 돌로레스가 상병을 발견했던 것도 실처럼 가는 물줄기 덕분이었다. 사람이 많았다면 다른 이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함정을 만들어봤을 법도 한데, 지금 이곳에 있는 군인은 단 둘뿐이다. 왜 이렇게 됐지? 이동 중에 전멸당한 부대원들을 생각하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돌로레스의 지시를 기다리는 상병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본래라면 돌로레스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은 없었을 테다. 왜 이렇게 됐지? 쓸모없는 생각이다. 상병의 말에 따르면 상대 기사는 창조 능력을 사용한다. 역시 조심스러운 성향인 것 같지만, 알 수 없다. 무언가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까운 바다는 동편. 많은 양의 바닷물을 단번에 끌어오려 하면 적에게 들킬 테다. 돌로레스는 결정을 내렸다.
“제가 먼저 나갑니다. 주의를 끌 테니, 상대가 몸을 드러낼 때를 노리죠.”
“하지만….”
상병이 머뭇거렸다. 상관이긴 하지만 전투에서 뒤로 빠지는 일이 잦았던 치유 능력자다. 전투 능력과는 별개로 우선하여 보호해야 할 동료라는 인식이 있었다.
“명령입니다.”
“… 예.”
돌로레스가 총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상병도 더는 따지지 않고 기둥에 몸을 기댔다. 돌로레스는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밖으로 나섰다. 3시 방향으로 견제하듯 총을 쏘자 그쪽에서도 총알이 날아왔다. 돌로레스는 벤치나 떨어진 표지판 따위에 몸을 붙이면서 빠르게 이동했다.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팔을 스쳐 지나갔다. 돌로레스는 가까운 골목에 등을 기대고 다시 총알을 채웠다. 주변을 살피자 상병은 반대편에 있었다. 돌로레스는 그가 어느 정도의 바닷물을 끌어모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병도 돌로레스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총을 쏘는 순간 기사 측에서도 준비를 마치고 부딪히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돌로레스는 마른 입술을 핥고 곧바로 총을 빼 들었다.
그러나 기사가 한발 빨랐다. 그는 돌로레스를 보고 있지 않았다. 돌로레스가 쏜 총이 빗겨나가고, 기사는 몸을 밑으로 수그렸다. 손을 뻗는다.
“안 돼!”
상병이 준비를 마치고 발로 땅을 딛는 순간, 자세가 무너지면서 날카로운 창살 여러 개가 몸을 꿰뚫었다. 피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떨어진 표지판을 커다란 덫의 형태로 변형한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목격한 장면이 너무 잔인했던 탓일까, 돌로레스의 몸이 잠깐 굳었다. 기사의 총구가 돌로레스를 향했다. 늦었다. 돌로레스는 자신보다 상대가 더 빠르게 방아쇠를 당기리라 생각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는 얼굴이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동요하는 눈동자가 두 쌍.
기사는 팔에 힘을 풀었다.
돌로레스는 그때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총소리가 귀를 울린다.
그 순간, 총알이 상대의 배를 관통한 순간 돌로레스는 그 사람이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우리가 함께 카페에서 케이크를 시켜 먹은 적이 있어서? 벤치에 앉아서 상관의 뒷담을 나눈 기억 때문에? 함께 웃었던 시간 때문에? 기사의 몸이 옆으로 기우는 것을 바라보며 돌로레스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아는 사람을 쐈다는, 싸울 의지가 없는 상대를 쐈다는 죄책감. 그러나 그 죄책감 직전에 돌로레스가 느꼈던 감정은 자신을 쏘지 않은 그 상대가 상병을 공격했다는 데에서 온 분노였다. 속이 울렁거렸고,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를 원망과 슬픔이 밀려왔다. 몸은 그 순간에도 바쁘게 움직여 쓰러진 상병에게 향했다. 관통된 부위가 너무 많고 출혈이 심각했다. 치유하는 속도가 피가 흐르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빌어먹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 돌로레스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안돼, 안돼, 안 된다고.”
피가 솟구치는 상병의 몸에 양손을 얹고 수십 초가 지나서야 돌로레스는 늦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만약 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썼다면 그자는 살릴 수 있었으리라는 것도.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기사의 숨이 한계에 다다른 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됐지? 군인이 아닌 기사를 먼저 살렸으면 후회했을 테다. 그러나 돌로레스는 그렇게 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하고 있었다.
상병의 시선이 허공을 가르고 하늘로 향했다. 돌로레스는 짧은 순간 해를 담았던 그의 눈동자에서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옆에는 다른 사람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차마 그쪽을 볼 수 없었다. 총을 처음 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돌로레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 손가락이 저렸다. 피가 울컥거리는 몸을 만지고 총을 쥔 손이었다. 검지로는 방아쇠를 당겼고, 엄지는… 오기로 손톱을 떼어낸 자리에는 아직 새 손톱이 자라나지 않았다. 피로 물든 바닥에서 손을 떼자 검은색 타일과 흰색 타일이 드러났다. 얼마 전에 다른 기사, 베일리를 마주쳤던 곳이었다. 그때 그들은 ‘적당히 평화로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지?
왜 이렇게 됐지.
‘어쩌면 지금이 앞으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지요.’
최소한 베일리 기사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돌로레스는 두 구의 시신 옆에 주저앉아 자신의 인생이 전쟁을 겪기 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걸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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