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거야, 도로시!

 

film 04 (1980)

 

1980.10.31 속보! 라 미아주 시의원 ‘밴 카운슬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찾지 못한 머리는 어디에?

 

 

 

 

 

Bodies

 

“폐차장이래.”

“응?”

“폐차장에서 ‘그’ 머리가 나왔다고~!”

“무슨 머리?”

“얘는. 당연히 밴 카펜터지. … 이름 이거 맞나? 아참참. 시간 됐다.”

“밴 카운슬러. 어디 가?”

“2시에 약속 있어서. 수고~”

 

루미가 휘파람을 불며 카운터 밖으로 나갔다. 또 근무를 빼다니. 머피는 루미에게 너무 관대했다. 쟨 아직 1년밖에 안 된 알바인데. … 그보다 쟤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밴 카운슬러의 머리가 나왔다는데? 도로시는 루미가 던지고 간 폭탄을 머릿속에서 해체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폭탄은 사람들 입에서 사람들 입으로, 신문에서 TV로 열심히 옮겨졌다.

 

“다들 머리 얘기뿐이네.”

 

그 얘길 꺼낸 손님이 벌써 몇 번째인지!

 

“아, 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너희 가게에 그런 건 없어?”

“약 안 팔아요.”

 

손님이 깔깔대며 도로시의 어깨를 쳤다. 도로시는 얼굴을 구기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너한테 누가 약을 구해? 그거 말고. 그거 있잖아, 그거. 밴 카운슬러가 주인공인 영화. 너도 봤지?”

 

곧바로 실패했지만. 도로시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괜히 목이 지나치게 허전하고 가려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어디선가 도끼나 톱 같은 게 날아와 목을 통과할 것만 같은,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밴 카운슬러가 주인공인 영화’는 핼러윈에 방영되었다. 그건 쌔러데이 나잇에서 대여하던 것도 아니었고 극장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도로시는 그걸 집에서 봤다. 출처가 어딘지 모를 끔찍한 스너프 필름은 갑작스럽게 TV 화면을 장악했다. 필름은 총 4개였다고 한다. 약에 절은 제인 스타빌부터 시작해서 점점 수위가 높아지던 그 필름 연대기가 두 번째 죽음을 보여줬을 때, 베벌리가 욕을 쏟아내면서 TV 플러그를 뽑았다. 덕분에 도로시는 마지막 필름을, 밴 카운슬러의 잘린 몸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밴 카운슬러의 몸통 얘기는 연일 화제였다. 그의 머리가 화제가 된 오늘처럼.

 

“안 봤어요.”

“겁쟁이! 끝까지 안 봤구나?”

 

이미 약에 취한 상대는 낄낄대며 도로시를 손가락질하다 사라졌다.

자기가 뭘 안다고! 도로시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1부터 24까지의 숫자가 적힌 꼬깃꼬깃한 어드밴트 캘린더. 며칠간 도로시를 괴롭히고 있는 편지였다. 도로시는 10번에 적힌 주소를 문질렀다. 여기다. 이곳이 밴 카운슬러의 머리가 발견된 폐차장이다. 주소로 찾아가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주소 인근의 폐차장은 하나니까. 이 편지는 도로시 외에도 많은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숫자 뒤의 주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 줄도 모르고.

21번은 항만 컨테이너로 도로시를 이끌었다. 도로시는 아직도 그때의 냄새와 습도, 풍경을 기억한다. 깨진 병과 빈 주사기, 약품 냄새. 그리고 그것들을 압도하는 고기 썩은 냄새. 시체의 냄새였다. 컨테이너 안에 시체가 있었다. 도로시는 구역질이 올라와 입을 막았다. “참지 그래. 우선 나가지.” 동행한 사람이 말했다.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줄줄이 컨테이너를 빠져나왔다. 욕을 하는 사람도, “약물 중독이네요.” 차분한 사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도로시는 바다에 그날 먹었던 것을 게워냈다. 한참 만에 등 뒤에 손 하나가 닿았다. “너 괜찮니?”

속이 안 좋다.

 

 

 

 

 

Maniac

 

상어 애호가: 걔가 나보고 피비 케이츠를 닮았다고, 그 검은 머리에 목이 졸리고 싶다고 했단 말야! 이 거짓말쟁이…. 남자들은 왜 그렇게 금발을 좋아하는 거야?

 

사이코패스 킬러: 그래. 크리스마스 파티나 데이트도 마다하고. 혼자서 처량하게, 마티니나 만들어 마시면서 코니 메이슨이 가짜 피를 뒤집어쓰는 걸 구경하려는 별종도 이 세상에 있는 법이야, 아가씨….

 

세상에는 참 별종이 많다. 도로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제가 너무 평범한 건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별난 건지 모르겠다. 검은 머리에 목이 졸리고 싶다는 머피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코니 메이슨의 가짜 피를 관람하는 미남자는 양반이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지면 도로시는 “이 X 같은 도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수상한 편지를 처음 받았을 때, 그리고 수상한 남자가 자기 이름을 불렀을 때 도로시는 양면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자기가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제게도 배역이 주어졌다는 짜릿함. 전자가 후자를, 후자가 전자를 다시 자극했다. 도로시는 맡은 배역의 소임대로 편지의 숫자를 하나하나 열어봤다.(거의 열어보기만 했다.) 그러나 시체를 발견했을 때는 두려움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밴 카운슬러의 머리까지 발견되고 나자 도로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제 배역 따위와는 무관한 더 큰 이야기라고. 이 X 같은 도시가 문제라고.

 

사실 사이코패스 킬러와 만난 건 30분도 안 된 일이다. 영화 속 사이코패스 같은 미남자가 쌔러데이 나잇에 들러 크리스마스 파티나 데이트도 마다하고 〈2000 마니악〉을 빌려 갔다. 그래, 코니 메이슨이 가짜 피를 뒤집어쓰는 영화다. 그래서 도로시는 그에게 사이코패스 킬러 배역을 주었다. 뭐, 잠깐 상상하는 것 정도야 괜찮잖아?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이코패스 킬러도 제 배역이 영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도로시는 슬래셔를 즐기지 않지만 2000 마니악이 어떤 영화인지는 알고 있다. 이름난 영화들은 그 명성만으로도 기억에 각인을 남기는 법이다.

 

영화의 배경은 한 마을이다. 러닝타임 내내 공포와 살육에 휩싸이게 될 마을.

 

도로시는 궁금했다. 이 이야기에도 범인이 있다면, 제 배역은 희생자일지 관람객일지. 그도 아니면… 이 별종으로 가득찬 도시에서 도로시 데커 제닝스의 역할은 무엇일지.

 

 

 

 

 

She doesn't have a clue

 

하지만 왜 하필 그때 그 시간에 그곳에 갔을까?

 

도로시가 공업단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쇼가 시작된 후였다. 불타는 건물들, 매캐한 연기와 잿가루 사이로 폭죽처럼 눈이 떠다녔다. 그런 풍경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로시는 눈송이를 하나 붙잡았다. 그것은 녹지도 않고 도로시의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Obviously, this is bullshit

 

영화의 배경은 한 마을이다. 러닝타임 내내 공포와 살육에 휩싸이게 될…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런 건 이제 따분해. 더 신선한 게 필요해! 그래. 요즘 시대엔 킬러들도 신선한 재료를 찾는데 네가 그래서야 되겠어? … 잠깐. 네가 뭔데?

 

“도로시!”

 

맞다. 나는 도로시 데커 제닝스지. 나는 기억력이 좋아. 다 기억할 수 있어. 나는 영화를 만드는 중이었다. 투자는 못 받았지만 제스도 좋아해 줬지. 제스는 네가 이 도시에 와서 막 만든 친구야. 알아, 알아. 기억한다니까. 들어봐. 이 영화는 한 여자애가 이상한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 편지에는 불타는 감자가 들어 있다. 이거 봐. 냄새가 맡아지지? 이 영화는 무려 후각을 자극한다. 그래서 내가 그걸 포기하지 못한 거야. 그래, 그 편지를. 거기에서 독한 냄새가 나잖아. 게다가 그 편지에는 예쁜 숫자도 있고 시체도 있고 살인마도 있으니까.

잠깐, 잠깐. 오지 마…. 나는 코니 메이슨이 아냐! 피비 케이츠는 더더욱 아니지. 잘 봐. 이건 갈색 머리라고. 어두워서 그쪽이 잘못 보고 있는 거라고! 뭐? 붉은 머리? 그건 내가 아니라 루미라고요! 내 목은 가져가지 마. 호러 영화에는 미인만 나오는 게 아니었어?

아, 루미가 웃는다. 옆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 나를 보고 웃고 있어. 뭐라고 하는 거지? 잘 안 들려. 무섭다. 도망가야겠다. 왜 이렇게 무섭지? 그래. 이건 다 이 X 같은 도시 때문이야. 나는 진작 여길 벗어났어야 했어. 다리가 무겁다. 망할 다리. 이 빌어먹을 도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너무 어렵게 사는 건지, 남들이 쉽게 사는 건지, 그도 아니면 대체 뭔지….

 

 

 

 

 

That's the Way It is, Dorothy!

 

CAST

Dorothy, and… who are you?

 

 

 

 

 

S#24 라 미아주 (NIGHT)

 

공업단지의 불타는 건물을 배경으로 하늘에서 흰 가루가 눈처럼 흩날린다. 누군가는 입을 벌려 맛을 보고 누군가는 손을 내젓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도로시는 손바닥을 펼쳐 가루를 붙잡는다. 손을 내젓는다. 어라, 맛도 본다. 도로시가 입맛을 다신다.

 

도로시: 도로시!

 

도로시가 벽을 붙잡고 중얼거린다. 편지를 꺼내 흔든다. 건물에서는 연기가 계속 나오고 불길이 번진다. 지나가던 행인이 도로시를 붙잡는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도로시, 비명을 지르며 외친다.

 

도로시: 잘 봐. 이건 갈색 머리라고.

행인: 알아! 안다고! 이 미친 사람아!

 

도로시, 비명을 지르며 공업단지 밖으로 끌려 나온다. 행인은 도로시를 내버려 두고 멀어진다. 목을 붙잡고 있는 도로시. 약에 취한 사람들이 도로시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도로시가 달린다. 운다. 웃는다. 달리는 도로시의 뒤로 라 미아주의 전경. 바닥에 쓰러진 사람과 하늘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린 사람, 구토를 하는 사람의 그림자.

 

쇼핑센터,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눈이 반쯤 풀린 세 사람이 서 있다.

 

부츠: 저기 저거 말이야. 지금 내 눈에만 보이는 거냐?

도로시: 나도 보여. 별이 있어.

막크: X바.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가 글씨도 친히 읽어준다. 잘 들어라. 해피 뉴 디어….

도로시: 그거 맞아?

부츠: 와!!! 선물이다! 선물! 내 거야!

 

….

 

 

 

 

 

 

 


 

 

Lipps Inc. - Funkytown

 

 

'로그 > Boring Doroth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해는 마세요. 난 그냥  (0) 2025.06.06
바보 같은 짓  (0) 2025.06.06
금요일 밤의  (0) 2025.06.06
올해의 픽션 후보  (0) 2025.06.06
안녕, 수상한 사람  (0) 2025.06.06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