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원칙
2024. 5. 15.

with. 헤사

 

 

1. 형제는 멀리서 봐야 애틋하다

“혹시 가족끼리 같은 방 쓰고 싶으면… 2인실은 없지만, 원하신다면 같은 방으로 옮기셔도 돼요.”

헤사 할라라가 ToB에 가입한 다음 날, 헤브린이 키사를 찾아와 말했다. 휴게실에 앉아 있던 키사는 헤브린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두 분이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형제. 걔한테 물어봤으면 됐어. 나까지 신경 쓰지 마.”

“헤사 씨는 신참이니까 말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니라면 다행이고요.”

“다 큰 형제끼리 같은 방 쓰는 건 좀 그렇지.” 

휴게실 구석에 앉아 돈을 세던 길드원이 짓궂게 말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헤브린은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그래도 보고 싶어 하셨으니까….”

“뭐야, 할라라. 헤브린한테 그런 얘기까지 했어?”

“아니….”

했다. 뭐라고 했더라? 키사는 헤브린보다 더 민망해졌다. 그야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헤사 할라라를 보고 싶어 했다.’ 이런 문장은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게다가 헤사는 이제 같은 건물에서 산다. 같은 건물에 사는 애를 새삼스럽게 그리워할 이유가 당최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들은 4년 만에 만난 그 순간에도 반갑다고 눈물의 상봉을 하는 형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런 거지. … 간다, 형제들.”

“벌써?”

헤브린 옆에 있던 길드원이 장난스러운 얼굴을 들이밀었다. 키사는 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2. 형제의 양심은 찾지 않는 게 낫다

“이거 네 거 맞지?”

“아.”

“그 전에.”

헤사가 주머니를 든 손을 뒤로 뺐다. 갈 곳 잃은 키사의 손은 주머니 대신 바닥을 짚었다. 조금 전까지 서부갈까마귀들에게 시달렸던 터라 기진맥진했다. 헤사는 삐딱한 자세로 서서 그런 키사를 내려다본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그런 생각은 안 들어? ‘형제’?”

형제. 비아냥대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색해서 팔에 털이 솟는 기분이었다. 형제 형제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키사도 북대륙 언어로는 그 단어를 좀처럼 발음하지 않았다. 그야 다른 많은 이들이 말한 것처럼 ‘형제’란 곧 헤사를 가리키는 말이니까. 키사는 헤사를 보다가 나무에서 구경하는 새를 보다가 다시 헤사를 보며 볼을 긁었다.

“너도 개고생 중이잖아. 둘이라 좀 낫나?”

“두르키는 혼자라는 걸 잘도 말해주네.”

그들의 아버지 두르키 할라라의 이름이 등장하자 키사의 입꼬리가 꿈틀 움직였다. 대답은 한 박자 늦게 나왔다.

“그건 내 책임은 아닌데.”

“웃기시네. 그럼 내 책임이다 이거냐?”

“….”

키사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집 나간 직후에야 ‘난 아무 잘못도 없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녔지, 2년 차에 접어든 무렵부터는 아픈 두르키를 두고 냅다 가출해버린 것이 키사의 양심을 콕콕 찔렀다. 헤사도 그걸 알고 있었다. 키사가 가출하고 2년이 지난 뒤에 집으로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네 양심은 2년 동안 뭐 하고 있었냐?’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키사의 양심은 여전히 단단했다. 양심이 발동하는 조건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두르키에게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헤사에게는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키사도 슬슬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키사는 헤사에게 붙잡힌 가녀린 묘약 주머니를 가리켰다.

“이제 줘.”

“내가 왜?”

두 사람은 잠시 눈싸움을 벌였다.

“됐어, 그럼.”

키사가 체념한 사람처럼 대꾸하자 헤사는 인상을 썼다. 또 그런 식으로 나와? 헤사가 말하지 않아도 키사는 헤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들이 같은 핏줄에서 났기 때문이 아니라 살면서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다음에 벌어질 일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3. 재수 없는 형제는 싸움을 부른다

“야. 너….” 헤사가 입을 열었고, 키사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는 척 헤사의 발목을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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