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에텔, 크람베, 티아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주점에서 시작해 주점에서 끝난다.’
- 『 주점의 미덕 』 저자 페나투리 추
제국력 473년 1월의 어느 날. 로투디아 제국 마이아 마을의 주점에 모험가들이 모였다. 모인 이들은 넷. 많은 모험가 무리가 그렇듯 그들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조합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자는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장신의 인물이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이유는 몰라도 이 자는 매일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눈물은 머리카락이나 옷처럼 그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이름은 에텔. 에텔은 치유 마법에 능통한 마법사로 동행하게 되었다.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나?*”
에텔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충분하지 않나?” 넓은 등을 구부리고 있던 인물이 대꾸했다. 그자가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옴네 이니티움 디피킬레 에스트! 처음이 항상 어렵다지. 안 그래?*”
잠깐 드러났던 입가가 천 밑으로 자취를 감춘다. 모인 사람 중 가장 덩치가 큰 그는 에텔 못지않게 눈에 띄었다. 덩치도 덩치지만, 얼굴을 전부 덮는 흰 천 때문이다. 얼굴부터 비밀인 그의 이름은 믿거나 말거나 크람베. 전사 크람베는 커다란 방패를 들고 다니는데 이 방패는 두 개로 분리하여 대검으로도 쓸 수 있었다.
“옴네 이니티움 디…. 그게 무슨 뜻이야 크람베 씨?” 방패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아까 말했잖냐? 처음이 항상 어렵다!”
“아~”
크람베가 방패를 옆으로 기울이자 방패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갈래로 올려 묶은 곱슬머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작은 체구며 망토 때문에 곧바로 눈에 들어온 인물은 아니었지만, 무시하지 마시라. 그자의 오른 눈에는 뭇 모험가들의 훈장과도 같은 흉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이름은 티아 코라오스. 정령술사인 티아는 노움의 도움을 받아 암석을 다룬다.
“확실히 해두는 게 좋겠지. 소망의 나무는 쉽지 않은 상대네.” 에텔이 말했다.
“지금까지 얘기한 대로만 되면 잘 될 것 같아.” 티아가 그들의 작전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면 나무가 소원도 들어주나?” 크람베가 장난처럼 묻는다.
티아는 짧게 고민한 뒤 이렇게 대꾸했다.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아?*”
크람베와 티아는 소망의 나무에게 빌 소원이 있냐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에텔은 눈을 돌려 마지막 사람을 바라보았다. 피클을 집어 먹으며 대화를 구경하던 자가 고개를 들었다. 엉킨 실뭉치 같은 머리에 꼬질꼬질 낡은 옷을 입은 그자는 티아 다음으로 체구가 작았다.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이는 그의 이름은 키사 할라라. 소망의 나무를 토벌하러 가자고 세 사람을 불러들인 연금술사다.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나.”
“괜찮지.”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짧은 대답이었다. “그래….” 에텔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키사는 맹물을 들이켰다. 이번엔 티아가 물었다.
“웬일로 맥주 안 시키고 물만 마신대?”
“내 마음, 형제.”
그때 네 사람 사이로 맥주잔 하나가 쾅 소리를 내며 놓였다.
“깨끗한 물 마실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누군가 네 사람의 뒤에 서서 말했다. 메마르고 피곤한 얼굴, 톡 쏘는 말투. 그는 주점 사장인 메뉴어 부인이었다. 막 주점에 들어서는 옷이 너덜너덜해진 모험가 무리가 맥주를 시킨다. “바닥 더럽히지 말고!” 메뉴어 부인은 새 손님들에게 버럭 외친 뒤 다시 네 사람을 보았다.
“적당히 굴러라.”
“걱정은 고마워, 형제.”
“에라이. 흰소리는.”
메뉴어 부인이 투덜대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네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 먹었지? 그럼 우리도 이제 갈까?”
마이어 마을은 달라지고 있다. 사람과 몬스터를 막론한 비명이 난무하고, 바닥에 흐른 피도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마을 주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하던 밭 위에 짐승의 사체가 뒹군다. 광장의 분수대에는 동전이 아닌 불순물들이 섞여든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죽어라 싸우고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는 잃어버리고….
벽 하나만 넘으면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점의 문을 닫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점은 이런 나날 속에서도 문을 열었다. 창밖의 풍경이 살벌해질수록 맥주가 팔려나가고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많은 사람이 도피처로 주점을 찾았다. 그러니 어찌하랴. 메뉴어 부인은 같은 자리에서 맥주를 팔고 피클을 담고 주문을 받는다. 메뉴어 부인의 주점에는 특히 모험가들이 많이 찾았다. 아니, 마이아 마을에 죽치고 있는 인간들이 많으니 그들이 소속된 ToB의 길드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들은 몬스터와 싸우느라 넝마가 된 옷에 지친 얼굴로 나타나 주점의 자리를 차지했다. 맥주며 물을 마시고 배를 채우고 한바탕 떠든 다음엔 다시 문밖으로 나간다. 메뉴어 부인은 주점을 자주 찾는 녀석들의 단골 메뉴를 외우고 있었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메뉴어 부인은 요즈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음에 저 문을 열고 돌아오는 녀석들이 몇 놈이나 될까. 그건 온종일 창밖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알 수 없을 일이다.
제국력 473년 1월의 어느 날. 주점의 문이 열린다.
“맥주 네 잔.”
꼬질꼬질해진 키사가 메뉴어 부인에게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인다. 그 뒤로 꼬질꼬질한 모험가가 또 셋. 티아, 크람베, 에텔이었다. 메뉴어 부인은 그들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지 않는다. 늘 그렇듯.
“오냐. 앉아 있어.”
주점에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메뉴어 부인은 가볍게 혀를 차며 맥주를 준비했다.
* 에텔의 프로필 한 마디 인용
* 크람베의 프로필 한 마디 인용
* 티아의 프로필 한 마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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