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첩이 어긋나 닫히지 않던 장롱을 버렸다. 이인해가 줬던 작은 반상과 삐걱거리는 의자, 낡은 전자레인지도. 끝이 닳은 색연필이나 소파 밑에 숨어 있던 빗, 지우개, 기한이 지난 쿠폰과 전단지 역시 머리카락과 함께 모아 버렸다. 놓친 게 없나 방들을 다시 둘러보다 다연의 벽 귀퉁이에서 처음 보는 낙서를 발견했다. ‘이다연.’ 또박또박 적은 이름 세 글자였다.혜화는 어릴 적 아지트를 떠나면서 남겼던 낙서를 떠올렸다.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더라. 품에 꼭 챙긴 돈다발을 제외하면 수중에 아무것도 없던 때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때. 그때는 몰랐지만 열여덟의 이혜화는 세상에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연도 비슷한 마음일까. 별 모양 벽지는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