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지는 원체 뭘 자주 잊었다. 전 애인들과 헤어진 이유 중에는 분명 선희지가 뭘 자주 잊어먹는 놈이라는 게 들어있을 터다. 선희지는 약속에 늦었고, 기념일을 깜빡했으며, 사소하지만 중요한 말들을 잊었다. 기억력이 나빠서는 아니었다. 선희지는 자신에게 중요한 건 기가 막히게 기억했다. 그런 사람이 뭘 자꾸 잊는다는 건 선희지가 상대에게 불성실한 사람이라는 방증과도 같았다. 차가 막혔다. 이미 약속 시간에서 10분이 지나버리자 선희지는 조금 초조해졌다. '잊지 말아요.' 포스트잇에 꾹 눌러쓴 글자가 자꾸 생각났지만, 그 글씨의 주인에 관한 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기에 애틋하지는 않았다.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선희지는 잊어버린 시간보다 잊어버린 사람에 관해 고민했다. 애인이었을까? 친구?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