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중사: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걔 한번 물고 늘어지면 어디까지 물고 늘어지는지 아시죠 상사님? 그대로 뒀다가는 반년 전에 제가 ‘실수로’ (오해하는 사람 아직도 있는데 진짜 실수였습니다? 쌍방이었다구?) 발톱 나가게 한 것까지 끌고 올 기세였어요. 아니, 걔가 최근에 야간 근무가 많긴 했는데, 우리가 노는 사람들도 아니구? 저는 걔가 오마이알 좋아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B 소위: 야, 근데 오마이알이 뭐냐?
C 상사: 아이돌입니다. 이름 특이하죠.
B 소위: 암튼 근무 잘 바꿔줬으면서 생색은 엄청 내요. 너는 V-pop 콘서트 봤다며.
A 중사: 그렇긴 하죠. 아, 그냥 하는 말입니다. 제가 좋다고 그날 걔 야간 근무 세운 것도 아니구…. 우는 소리 엄청 하길래 저도 한 소리 해본 겁니다.
C 상사: 소위님. 중사가 콘서트 보고 와서 하사 엄청 놀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더 그런 거지. 하사는 뭐 하고 놀겠대?
A 중사: 아, 상사님두~! … 걔 운동한다던데요. 말 잘 듣는 하사 훈련시켜주는 셈 치고 바꿔 달라구 얼마나 사정에 사정을.
B 소위: 근무 시간도 바꿔서 한다는 게…. 원래 고생을 사서 하는 친구야?
C 상사: 저도 그럴 때 보면 하사를 모르겠습니다. 운동 중독이에요, 중독. 운동 어떤 거?
A 중사: 전화 걸어볼까요?
“옙! 중사님. 근무 시간은 아니지만, 해양 스포츠 시설 쪽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예?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입니까?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예. 전부 정복하고 오겠습니다. 일단 목표는 크게 잡는 겁니다. … 예, 알겠습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중사님~ 중사님 최고!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돌로레스는 전화를 끊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얼굴은 근래 들어 가장 개운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근래라 하면 브리스타 축제가 시작된 무렵부터 지금까지를 말한다. 델가와 페티르 휴전 20년을 기념한 랜드마크 브리스타가 완공되며 발탄에서는 대대적인 축제가 열렸다. 특히 야간에 행사가 많았는데, 야시장부터 퍼레이드, 그리고 V-pop 콘서트까지! V-pop 콘서트에는 무려 돌로레스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출연! 하지만 돌로레스는 연일 항구 근처에서 야간 근무를 서느라 굵직한 행사를 전부 놓쳤다. 테러 예고장이 발견되면서 군과 기사단에서 여러모로 촉각을 세우는 시기이긴 하지만, 축제 분위기를 조금은 즐기고 싶었는데…. 좋아하는 그룹 직관 놓친 것도 서러운 참에 A 중사가 생생한 직관 후기를 아주 얄밉게 들려주어서 통한의 밤을 보낸 게 전날의 일이다.
오늘 돌로레스는 A 중사를 졸라 하루치 근무표를 바꾸었다. A 중사의 담당 구역은 이타티아 테마파크. 돌로레스는 A 중사의 근무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잠도 거의 못 자고 새벽부터 근무를 섰다. 그래도 괜찮았다. 돌로레스 멜로 산토스는 오랜만에 이타티아 테마파크의 스포츠 시설을 정복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테마파크에서 할인 행사가 있는 날! 기념으로 스포츠 시설을 완주하면 경품까지 준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다. 돌로레스는 단순히 스포츠를 좋아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돌로레스는 경품에 환장한다.
돌로레스는 근무가 끝나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몸을 흠뻑 적시며 테마파크를 즐겼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20분.
‘어디 보자, 남은 게… 플라이피시… 바나나보트… 그리고… 잠깐.’
싱글벙글한 얼굴로 팸플릿을 들여다보던 돌로레스는 벼락처럼 깨달음을 얻었다. 남은 스포츠가 전부, 모조리, 혼자서는 탈 수 없는 기구들로 즐기는 것이라는 걸….
돌로레스는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사람이 있다! ‘1+1은 2니까 탈 수 있어!’ 지금이라면 근무 중인 기사든 사이 나쁜 상사든 누구든 상관없다.
“이게 누굽니까. 저 좀 구해주십시오! 제 인생의 희망, 제 구원자. 귀인을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돌로레스는 귀인의 옆에 착 달라붙어 테마파크의 수상 스포츠 구역을 향해 한껏 손을 뻗었다.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돌로레스의 손에서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팸플릿이 바람에 처량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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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박수~”
“와아….”
“어야~”
돌로레스가 뿌듯한 얼굴로 선포하자 맞은편의 리오와 올비디어가 박수로 호응했다. 세 사람이 있는 곳은 마릴링 카페. 꽃밭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명물 마이티 프루츠 빙수를 기다리는 중이다.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이 동석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짠~ 경품부터 자랑하고 가겠습니다.”
돌로레스가 엽서 크기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매끄러운 재질의 종이에는 요즘 유행한다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위에 누군가가 사인을 한 상태였다. 리오와 올비디어는 종이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오? 뭐일 것 같습니까 이건?”
“아… 그게, 캐릭터 제작자 사인이라고 했어요.”
올비디어가 리오를 돌아보자, 리오가 돌로레스를 흘긋 보며 대신 답했다. “맞습니다!” 돌로레스는 그 사이 종이를 소중하게 문지르고 주머니로 쏙 집어넣었다. 좋긴 좋은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요새 유명한 친구입니다. 이 캐릭터가요.”
“취향은 존중하겠는데, 경품이 진짜… 그거? 참여한 사람이 있긴 한가?”
“… 흠. 사실 경쟁이 치열하지는 않았습니다. 선착 못 잡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진지하게 답하는 돌로레스의 표정을 보고 올비디어가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종이 쪼가리를 위해 그걸….”
올비디어는 이틀 전 이타티아 테마파크에서 돌로레스에게 붙잡혀 바나나 보트를 탔다. 돌로레스의 목적은 해양 스포츠 시설을 완주하고 그날만 주는 경품을 받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 듣자 하니 옆에 있는 리오 상급기사도 돌로레스에게 붙잡혀 플라이 피쉬를 탄 모양이다. 이번에는 두 사람 덕분에 경품을 탔으니 한턱낸다나.
“그런데 왜 하필 여긴감?”
“여기 있는 리오 기사님이 오고 싶어 하셨거든요.”
“저요?? 아…. 그거….”
놀란 표정을 짓던 리오가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비디어가 리오와 돌로레스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뭐야. 둘만 아는 얘기 하면 이 아재가 섭하거던요.”
“으하하. 별거 아닙니다. 리오 기사님과 저는 여기 시식권을 두고 싸운 적이 있는 전우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거죠.”
“또 경품이냐.”
“잘 아십니다.”
“하이고. 그리고 이 아재 취향은 고려도 안 하셨다 이거네. 서운합니다~”
“다음에는 올비디어 기사님이 좋아하는 곳 데려가 주시던가요~”
장난스럽게 말한 뒤 돌로레스는 리오 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올비디어 기사님 말입니다. 보트 탈 때 소리 시원~하게 잘 질러주시던데요. 원래 목청 좋으십니까?”
다 들리는 귓속말 아닌 귓속말이, 올비디어를 놀리는 게 분명한 말투였다.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구경하던 리오는 두 사람의 시선(올비디어는 눈을 가린 상태였는데도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이 제게로 쏟아지자 약간 당황했다.
“어, 그게….”
그리고 리오가 머뭇거린 찰나 무언의 화살은 리오에게로 돌아갔다.
“어야. 리오 상급기사가 함 말해 주시죠.”
올비디어가 가볍게 말을 이어 던졌고, 돌로레스는 눈을 반짝이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 … 빙수가… 안 나오네요.”
리오의 시선은 올비디어와 돌로레스를 지나 가게 문으로 향했다. 말 없는 SOS 신호가 마릴링 카페의 직원들에게 닿았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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