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의 바람을 잠재울 점의 개수는
아주 아주 먼 옛날, 태초에 바람이 있었습니다. 아니, 신과 사람이 있었지요. 음. 지루한 부분은 빨리 넘길게요. 저는 독자들의 의견을 정말 잘 듣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알기로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1장에서 손을 놓은 어린 독자들이 많… 네. 사족이 길었죠?
시간은 흐르고 신의 마음도, 인간의 마음도 변했습니다. 인간들은 신에게 청원했지요. "정말로 우리를 어여삐 여기신다면, 신이시여. 한번만 다시 굽어 생각해 주시지요…." "감히 너희가 날 내쫓는구나." 신은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세대를 이어 끈질기고 끈질기게 부탁했고 마침내 신은……
신은 수수께끼를 좋아했습니다. 인간들의 곁에 머물며 매일매일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인간들을 찾았지요. 아! 이 대목에서 샤즈님은 저를 '바라봐' 주셨습니다만, 이 이야기의 원본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그럼요. 저는 그저 역사를 읽는 사람일 뿐! 어쨌든 그날도 신은 고민 끝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다. 맞춘다면 너희들의 소원대로 떠나주지. 어떠하냐?" 인간들은 매우 곤혹스러워했어요. 신의 수수께끼는 늘 어려웠거든요! 이건 저도 알지요. 나 원 참, 신이 자신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으로 보였답니다. 그러나 신께서 답이 틀렸다고 목숨을 앗으시는 분은 아니었기에 신의 자비를 등에 업고 많은 인간들이 수수께끼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흘렀습니다.
인간들은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요. 신은 그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죽, 인간들을 괴롭히며 살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 아차, 그게 아니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요! 그러나 한 인간은 1년을 하루 같이 매일 신 앞에 섰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끈기 있다고 칭찬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역시 미친 사람이라 욕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평은 분분하더라고요. 어디서는 외톨이고 바보 천치다, 어디서는 마을의 제일 가는 미인이다, 어디서는 마을에서 가장 똑똑하던 사람이다, …. 어찌됐든 사람들은 1년 동안 그 사람이 신에게 제출한 '오답'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반 년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누구도 신 앞에서 수수께끼가 풀리는 장면을 고대하지 않았거든요. 처음에야 어떤 답을 낼까, 과연 이번엔 정답이었을까,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게 된 지가 벌써 오래였지요.
아마 이건 사실일 거예요. 그러니 누구도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신이 수수께끼를 내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어느 밤에 별안간 신의 웃음소리가 지축을 울렸습니다. 신이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은 구태여 사람들을 모으지 않아도 모두에게 말을 걸 수 있었어요. 그가 곧 섬이었고, 그의 시선과 목소리는 섬의 모든 곳에 닿을 수 있었지요.
신은 말했습니다. 정답이다.
그리고 다시 말했어요. 약조대로 섬을 떠나겠노라.
"자. 여기서 질문! 과연 정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넌 오늘도 그 소리냐?"
"이건 제게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게 궁금한 게 그것밖에 없다니, 고약하기 짝이 없어. 네가 같은 질문으로 날 괴롭힌 게 벌써 3주째다."
혀를 차는 소리가 주막에 울려 퍼진다. 혀를 찬 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음에도 울림이 있어, 혀를 한 번 차고 신음을 한 번 내어도 온 사방을 울렸다. 뱀 같은 얼굴이 맞은편에 앉은 자를 내려다본다. 테이블에 침을 튀겨 가면서 열심히 이야기를 잇던 작은 인간이 발을 굴렀다.
"3주면 답을 주실 때도 되었지요! 샤즈님!"
"어허. 당돌해."
커다란 목소리, 뱀 같은 얼굴을 가지고 '샤즈님'이라 불린 자가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주막의 온 사람들이 그들의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다가, 샤즈의 시선이 닿으면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다만 한 사람만이 그러지 않았다. 주막의 주인 되는 사람이었다. 샤즈는 주인에게 손짓했다.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로 달려온다.
"무슨 일이신가요?"
"술 한 잔만 더."
"두 잔이요."
맞은편에 있던 자가 질세라 빠르게 덧붙인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주인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우물쭈물거렸다.
"뭔데?"
"저… '물이 마르지 않는 땅' 쓰신 팔테 님, 맞죠?"
주인이 샤즈 맞은편의 사람을 향해 눈을 반짝인다. 그러자 '팔테'가 표정과 자세를 고치며 웃었다. 아까까지 철없이 발을 동동 구르던 행색은 어디로 가고, 부드러운 미소가 만면에 자리 잡았다.
"와~ 네! 맞아요! 알아주시는 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들려서…."
주인이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인다.
"저 그거 진짜 재밌게 읽었거든요. 딸에게도 읽어 보라고 했는데 그 녀석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하하. 그럴 수 있죠. 말씀 감사해요."
"나도 주책이네 참. 괜히 반가워서요. 술 두 잔 가져다 드릴게요."
두 사람의 훈훈한 대화가 끝나고, 팔테는 주인이 자리를 뜨자마자 샤즈를 돌아봤다.
"샤즈님. 저 얼굴 뚫릴 것 같아요…."
"가증스럽구나, 가증스러워."
"설마 질투하세요?"
"내가? 누굴? 뭘로? 설마 널? 표정이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주 가증스럽다 생각했을 따름이다. 쯧."
"그러시구나…."
'가증스럽습니다, 가증스러워.' 팔테는 속으로 웃었다. 이 선주룡이 제 속마음까지 읽을 수 없음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팔테는 이를 일전에 이미 몇 번 시험해 본 바 있다.) 샤흐나즈의 신이자 팔테의 서적 '물이 마르지 않는 땅'에 등장하는 기룡 샤즈는 팔테가 알기로는 꽤나 단순한 용이다.
팔테가 '물이 마르지 않는 땅'을 처음 펴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용에 의해 땅바닥에 처박힐 것을 염려하며 수군거렸다. 그야 만난 적도 없는 선주룡에 대한 이야기를 356 페이지 내내 주절거렸으니 팔테가 생각해도 그는 운이 좋았다. 그 대상이 기룡 샤즈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다음에 산 전체를 울릴 정도로 웃은 다음에 기룡이 머리에 내리꽂은 게 벼락이었다면… 팔테는 이 자리에 없었을 터다. 팔테는 기룡 샤즈와 정말로 만난 뒤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 한시름을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등이 펴지고 배가 부르고 자만심이 들기도 했다. 팔테는 이 용을 '안다'. 용은 아마 자기 이야기가 잘나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신은 못 알아보고 한낱 인간인 팔테를 알아보는 사람의 존재라니, 분명 아니꼬울 것이다! 사실 팔테는 샤즈를 알아도 굳이 그에게 말 붙일 생각이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또 소설을 쓸 생각이냐?"
"전 소설가가 아니라 역사가입니다, 샤즈님."
"'그건' 소설이던데."
"샤즈님이 제게 친히 역사를 알려 주신다면 더 좋은 역사책이 될 수 있겠지요."
샤즈와 동행한 3주 동안 팔테는 샤즈의 변덕과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 대가로 제법 쏠쏠한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샤즈는 '아무것도 안 알려 줄 건데.'하며 얄미운 태도를 유지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꽤나 잘 흘린다.
"이것 봐라?"
그리고 샤즈는 이 정도의 발칙함은 봐준다. 어쩌면 재밌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팔테는 샤즈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웃었다. 그 사이 주인이 맥주 두 잔과 함께 지역 특산물인 가리비로 만든 찜 요리를 내왔다. "이건 서비스예요." "어머!" 주인과 팔테의 훈훈한 대화가 다시 오가는 걸 지켜 보는 게 꼴사나웠던 건지, 샤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네가 그렇게 원하니 내가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다."
샤즈의 목소리는 다시 주막에 울려 퍼진다. 팔테와 대화하던 주인은 어색하게 자리를 보전하고 선 채였다.
"저 깊은 해저에는 이것으로 만든 궁전이 있다 한다. 그 궁전엔 무엇이 사느냐?"
샤즈의 손은 정확히 뜨끈한 가리비를 가리키고 있었다. 팔테는 눈을 굴렸다. 샤즈가 자꾸만 잊는 것이 있는데, 팔테는 마른땅의 역사와 용의 역사를 지나칠 정도로 파고드는 인물이다. 이 수수께끼는 그에게 밥 먹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사실 정답은 따로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기룡 샤즈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샤흐나즈의 수수께끼를 맞춘 자도 분명 샤즈를 만족시켰을 터다. 팔테는 얼굴을 찡그렸다. 새까맣고 시퍼런 눈과 눈 사이 점을 뚫을 듯이 바라보면서. 단번에 답을 내기보다 뜸을 들이는 것이 좋고, 아주, 아주 어렵게 고민하는 얼굴을 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음… … …… ………… …………………… ……………………………………………………………………"
"적당히 해라."
가장 중요한 것.
"넵."
틀렸을 땐 빠르게 인정해야 한다.
안 그러면 용께서 친히 바람을 불어 주시기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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