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ve
길쭉한 화물용 운송 차량이 고속도로를 달린다. 커브를 돌 때마다 꼬리 같은 화물칸이 아슬아슬하게 가드레일을 피한다. 바퀴가 요란하게 도로에 지문을 남긴다. 차체를 통해 전달되는 반동이 강한 탓에 파티마의 몸은 차가 떨리는 대로 리듬에 맞춰 덜덜 떨렸다. 바퀴와 도로가 마찰하는 소리, 바람 소리, 사이렌 소리, 화물칸에서 덜컹거리는 소리. 소음의 합주를 뚫고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린다. 그건 꼭 빗방울이 창문을 때릴 때의 소리와 비슷했다. 파티마는 백미러로 후방을 확인했다. 화물칸 뒤에도 꼬리에 꼬리를 잇는 것은 다른 차량들이다. 백미러 위로 총알이 지나간다. 운전석에 있던 오마리가 흘긋 파티마 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무슨 소리예요?”
“저쪽에서 총을 꺼냈어.”
“네?”
“속도 올려.”
“아니….”
트럭이 방지턱을 넘으며 덜컹거린다. 동시에 무언가 차를 두드리는 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오마리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올렸다. 트럭이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앞으로 질주한다.
Ian Post - On the Way (Alternative Version)
Don't drive us crazy
; 미치게 만들지 마
1시간 9분 전, 화물 차량들이 주차된 차고지. 커다란 화물 트럭 뒤에서 소음이 흘러나온다. 그곳에 칙칙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다. 잘 보면 대화를 나누는 건 두 사람이다. 제각기 트럭의 몸체에 등을 기대거나 선 채로 상황을 주시하는 에스퍼들 사이에서 파티마가 한 발짝 앞에 나섰다.
“얘기랑 다르잖아요. 일 이렇게 할 거야?”
“우리도 스케줄이 있어요. 얘기가 다른 건 그쪽이야말로….”
상대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그는 누가 이곳을 볼까 신경 쓰이는지 연신 바깥쪽에 눈길을 주었다. 대체로 어둡게 입은 에스퍼들과 달리 밝은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그는 누가 봐도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매니저, 니코. 가슴팍에 달린 명찰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운수 업체에서 일하는 니코가 파티마의 연락을 받은 건 지금으로부터 약 18시간 전이었다. “누군지 알죠? 급하니까 본론부터 갑시다.” 상대는 준비한 계획을 빠르게 읊었다. 3월 3일 저녁에 영자공학연구소로 들어가는 화물 차량을 준비하라. 운전기사는 맡기겠다. 이쪽에서 실을 화물이 많으니 내부에 자리를 마련해라. 몇 톤쯤 되나요? 조심스럽게 되물었을 때 상대는 잠시 고민했다. “1톤은 넘겠지?” 어중간한 답변이었다. 니코는 상급자를 통해 이 일에 관해 간략한 개요를 들은 바가 있었다. 돈이 많이 나오는 대신 위험한 일이라고. 에스퍼와 치안국이 엮인 일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눈치챘다. 니코는 비밀을 함구하겠다고 계약서를 쓰면서도 이 일을 깊게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통화를 마치고 누웠을 때는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에스퍼들이 뭘 하려는 거지? 영자공학연구소에는 왜? 1톤이 넘는 화물이 뭐가 있지? 폭탄? 폭탄이 그 정도 무게가 나가나? 나 테러범을 실어주겠다고 약속한 거야?
그 화물이 에스퍼 무리라는 게 밝혀진 지금, 니코는 폭탄을 싣는 줄 알았을 때보다 겁이 났다. 하나같이 수상한 복장에 숨기려 해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저 사람 실종됐다고 했는데. 테러범을 하나도 아니고 열 명 넘게 태워야 한다니. 케빈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오늘 이 트럭을 운전할 운전 기사 케빈은 니코보다도 아는 게 적었다. 니코는 시계를 확인했다. 10분 안으로 케빈이 돌아올 것이다. ‘화물’들을 무사히 화물칸에 태우면 케빈이 덜 겁먹을지도 모른다. 니코는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물칸에 짐이 너무 많다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에스퍼들은 대체로 상황을 관망하거나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우린 다른 게 없는데 무슨 소리야. 얼른 빼요 이거.”
파티마가 열린 화물칸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니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하긴 한데요. 가져오실 화물이 이렇게 클…지 몰랐잖아요. 무게며 부피며 전부 딱딱 맞춰서 보내는 건데 임의로 맞추긴 어렵죠. 시간도 촉박했고요.”
“빼라면 어련히 빼는 거죠.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 얼른.”
“저도 다음 일정이 있으니까 그쪽에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허?”
파티마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몇 사람이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 벽에 기대 있던 섀넌이 고개를 들었다.
“차 빌려준다는 사람 태도가 왜 그럽니까? 우리가 댁들 허드렛일 도와주러 온 걸로 보여요?”
섀넌의 말을 들은 니코가 발끈했다.
“아니. 제가 혼자서 이걸 어떻게 빼요! 사람도 그쪽이 더 많은데.”
“기사는 언제 와요?” 파티마는 니코의 발언을 무시했다.
“기사님이 하실 일도 아니고요!”
“저기요. 잘못한 쪽에서 소리를 높이면 어떻게 해?”
파티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섀넌이 중재하듯 두 사람 옆으로 다가왔다. 그가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서 안 빼시겠다는 건가요?”
약 2분 뒤. 섀넌은 니코의 손에서 차 키를 낚아채고 트럭으로 뛰고 있다. “이봐요! 당신 뭐야!” 니코가 황급히 뒤를 쫓았지만, 에스퍼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역부족이었다. 섀넌은 트럭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먼저 화물칸에 앉아 있던 월터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치채고 잽싸게 트럭에서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트럭이 움직인다. “트럭도 몰아? 재주 좋네.” 마리에케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뭐 당연히 섀넌은 트럭을 몰 줄 모른다.
막 차고지에 들어서던 케빈 굿맨이 제게 달려드는 트럭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파티마는 휘파람을 불었고 클락션이 시끄럽게 사람들의 귀를 울렸다. 앞으로 벌어질 소란의 서막을 알리듯.
Fear drive them away
; 공포가 그들을 몰아낸다
섀넌의 퍼포먼스 덕분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니코와 케빈이 짐을 빼면 에스퍼들이 손발을 맞춰 그것을 옮겼다. 어느 정도 자리를 마련한 뒤에 에스퍼들은 화물칸에 올랐고 파티마는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대를 꽉 붙든 케빈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이리저리 굴러갔다. 난 이 차 끌고 못 갑니다. 불과 몇 분 전에 백기를 들었던 사람이다. 섀넌과 파티마가 타일러 운전석에 앉혔지만, 케빈은 내내 불안한 얼굴이었다. 트럭이 제 앞으로 달려들다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을 때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화물칸에 모여 앉은 에스퍼들에 관해서는 들은 적도 없었다. 그들이 날붙이나 총기를 들고 있는 걸 본 케빈은 니코가 전날 밤 했던 것보다 더 극단적인 상상을 하고 있었다.
파티마는 케빈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과거를 떠올렸다. 안톤과 베라가 뒷좌석에 앉아 있고, 제 옆에는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날 운전대를 잡은 건 파티마였지만 그 차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엘리엇이었나? 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1월 1일. 그날은 헤븐스게이트에 인면괴수가 나타났던 날이다. 엘리엇은 헤븐스게이트의 주민이었는데 거기서부터 급하게 차를 몰고 나오다가 파티마 일행의 차를 쳤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엘리엇은 불안과 공포로 질려 있었다. 괴물을 봤어요. 엘리엇은 그렇게 말했으나 그날 그가 보인 태도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엘리엇은 그날 인면괴수를 차로 치고 도망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괴물이 아닌 사람을. 괴물을 바깥에서 목격한 자와 거울 속에서 발견한 자의 공포는 다르다. 다니엘 로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목에 칼을 겨눈 것이다.
그날로부터 2개월이 지났다. 파티마는 1월 1일부터 시작된 경주의 결승선이 머지않았다는 걸 예감했다. 지든, 이기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겁먹은 사람 하나 때문에 멈추는 건 아까운 일이다.
“눈치 보지 말고 똑바로 운전해요. 경력에 흠집 내고 싶지 않으면.”
파티마는 속도가 느려지는 케빈을 재촉했다. “제대로 하고 있다고요….” 케빈은 겁먹어서 우물쭈물하면서도 짜증을 못내 숨기지 못했다. 파티마는 운전대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케빈이 화들짝 놀라서 파티마의 손을 밀기 시작했다. “뭐, 갑자기 뭐예요?” 파티마는 그들 위로 지나가는 표지판을 바라봤다.
“여기 아니잖아?”
“이, 이 길 맞아요. 전 늘 이 길로 다닌다고요.”
“그래요?”
그러나 파티마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자마자 케빈은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운전대를 급하게 꺾었다. “이봐요.” 케빈은 파티마를 연신 돌아보면서도 입술을 꾹 다물고 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언의 결심을 했다는 게 확실해졌다. “제대로 안 해? 차 다시 돌려요!” 케빈은 파티마를 무시하고 트럭을 으슥한 도로로 몰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신고했어요? 이 사람이 진짜 미쳤나?” 케빈은 파티마를 아예 보지도 않았다. 겁먹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는데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번들했다. “아, 안 들으시겠다?” 파티마는 기어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단수를 내렸다. 케빈이 화들짝 놀라서 파티마를 돌아봤다.
“갑자기 그러면 엔진에 무리가 가요!”
“차 멈춰요. 안 그러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케빈 역시 기어를 붙잡고 있었지만 파티마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파티마가 손에 다시 힘을 주자 케빈이 꽥 비명을 질렀다. “아,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케빈은 서서히 속도를 줄여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나가게 해주세요.” 파티마는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막지 않았다. 케빈은 헛구역질하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파티마는 케빈을 싸늘하게 내려다봤는데 케빈은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운지 고개를 숙여버렸다.
화물칸에서 나온 오마리가 케빈을 보고 파티마에게 물었다.
“설마 때리신 건 아니죠?”
“자기 혼자 겁먹어서 주저앉은 거야.”
“제 말은, 파티마가 그럴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음… 죄송해요. 일단 이분 좀 일으켜 세워 드릴게요.”
그리고 잠시 후 케빈은 오마리에 의해 화물칸으로 운송된다.
Don't stop, drive on
; 멈추지 말고 운전해
그렇게 다시 여기. 케빈의 자리를 대체한 오마리는 웬만한 트럭 운전사들도 헤쳐 나가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추격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뒤에서는 경찰차들이 줄지어 쫓아오고 총까지 쏘는데 사실 오마리에게는 이 상황을 난제로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오마리가 트럭을 운전해 본 건 10년도 더 전에 한 번 있었던 일이고 그마저도 무면허였다는 점이다. 한번도 안 해본 사람들보다야 오마리의 사정이 나았기 때문에 자리에 앉았지만, 긴장으로 입이 바짝바짝 탔다. 화물칸에는 심지어 사람들이 있다. 실수할 수 없다.
“운전해 본 거 맞지?”
중간에 파티마가 물었을 때 오마리는 답하지도 못했다. 난처하게 웃으며 클러치를 밟았을 뿐인데 미소도 1초 만에 사라졌다. 표정을 갈무리할 여유가 없었다.
오마리는 백미러를 확인하다 화물칸의 백도어가 열리고 무언가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보았다.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볼 뻔했다. “앞을 봐!” 파티마가 오마리를 다그치자 오마리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누가 뒤에서는 목을, 앞에서는 얼굴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만큼 몸이 뻣뻣했다.
“무슨 일이에요? 말해주세요.”
“걱정 마, 안에서 던진 거니까.”
동료들이 화물칸에 남아 있던 짐을 밖으로 내던져 추격자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안다고 마냥 안심되지는 않았지만. 오마리는 누가 다치거나 떨어지거나 총에 맞거나 하는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속도를 줄였다.
“멈추지 마.”
파티마는 오마리가 무엇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오마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마리는 문득 록산나를 등에 업고 콰디라와 함께 도망치던 때를 떠올렸다. 그 기억은 다른 날의 기억을 항상 배반한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건 진심이에요. 파티마에게 그렇게 말했던 어느 날을. 다시 만났을 때 파티마는 오마리가 도망갔다고 힐난하지 않았지만, 그 일은 오마리에게 여전히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그들은 같은 차에 나란히 앉아 있다. 멈추든, 달리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함께인 것이다.
“안 그래요.”
오마리가 액셀을 지그시 밟는다. 파티마는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무대로 헤드라이트가 조명처럼 그들의 앞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