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티아, 에텔, 크렘베
수많은 나뭇잎이 칼날처럼 뺨을 스쳤다. 시야가 금세 어지러워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인데도 돌풍에 휩싸인 기분이다. 키사는 눈을 똑바로 뜨려 애썼다. 티아, 크람베, 그리고 에텔은 아직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다친 건 에텔이 해결해주겠지.’ 아픈 건 질색이지만, 나무의 속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다칠 걸 각오하고 가까이 접근해야 했다.
“기다려!”
막 움직이려던 순간 티아가 암석으로 장벽을 하나 더 세웠다. 키사는 티아의 장벽들을 방패 삼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게 뻗은 가지가 키사의 팔을 꿰뚫을 뻔한 순간에는 크람베의 오른쪽 대검 스페라가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나뭇잎들이 키사의 등에 비늘처럼 달라붙으려던 순간에는 에텔의 원거리 마법이 키사를 구했다. 키사는 세 사람에게 뒤를 맡긴 채 소망의 나무에게로 다가갔다. 며칠 전 나무의 종류를 파악하기 위해 먼발치서 본 적이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거대한 크기에 침이 절로 삼켜졌다. “정신 차려!” 누군가 외쳤고, 키사는 나무의 공격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챙겨온 건 대용량의 묘약이었다. 예상대로라면 이 묘약이 나무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 것이다. 약해진 뿌리는 티아가 뽑아버리겠지. 키사는 묘약을 나무의 뿌리 부근에 흘려보냈다. 이상한 액체를 감지한 나무가 꼭 발작하듯 움직였다.
통증을 참으며 묘약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털어낸 키사는 검을 쥐고 뒤로 약간 물러났다. 나뭇가지에 맞고 나뭇잎에 쓸린 부분들이 시큰거렸다. 키사가 물러난 걸 확인한 티아가 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힘을 끌어올리는 게 보였다. 긴장한 것도 잠시, 지반이 흩어졌다.
멀어지는 사냥감을 향해 나무가 가지를 뻗는 순간이었다. 함정에 걸린 나무가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다음 순간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렸다. 소망의 나무에게 접근하기 전, 키사는 시야를 밝게 해주는 묘약을 나머지 세 사람과 나눠 가졌다. 눈동자에 뿌린 묘약의 효과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덕분에 뿌연 먼지 속으로 나무가 보였다.
소망의 나무의 뿌리는 그 나무만큼 컸다. 나무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 맨눈으로 보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키사는 검을 고쳐 쥔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