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캐서린을 죽였을까

 

 

※ 폭력, 유혈, 살상에 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던데.”

 

도로시는 정리하던 비디오를 손에서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비디오를 줍는 사이 말쑥하게 생긴 손님이 일방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요즘 세상이 말세예요. 말세. 집요정인지 뭔지 이상한 사람들도 돌아다니고. 범인은 잡혔나요? 이 동네는 치안이 나빠서 큰일이야. 여기 보고 얘기 좀 해봐요. 맞다. 얼마 전에는 머피도 자리를 비웠던데. 며칠 안 나왔다면서요. 별일 없었나요? 여자 둘만 일하기에는 좀 그렇지. 사장은 전에 보니까 사람이 좀 그렇던데요. 설마 그 사람이….

 

“장난치지 마세요.”

“미안해요. 선 넘었다.”

 

손님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도로시의 손에서 비디오를 빼앗아 갔다. 그는 이 새로운 가십에 관한 얘기를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누군데요?”

 

이걸로 스물둘이다. 그 질문을 던지는 무신경한 사람들의 숫자.

 

“캐서린이요.”

 

“캐서린?” 손님은 의미 없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내가 아는 캐서린은 하나뿐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도로시는 그를 지나쳐갔다. 이런 사람들은 뻔하다. 떡밥을 던진 뒤 상대가 그걸 물기를 바라는 거다. 남의 반응을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울컥 화가 치민다. 그때 다른 손님이 도로시를 불러세웠다.

 

“감상실 확인해주지? 시간 넘겼잖아.”

“아… 알겠어요.”

 

순식간에 기분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죽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보다 거북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도로시는 캐서린에 관해 묻는 끈질긴 손님을 마저 응대했다. 그가 떠난 뒤 도로시는 카운터 밑을 더듬었다.

총은 여기에 있으니까 알아둬. 일주일 전 머피가 그것을 도로시와 루미에게 보여줬다. 총? 범인 잡힌 거 맞지? 나 걱정해야 해? 루미가 불안한 눈초리로 물었다. 머피는 루미가 토요일 밤에 여기서 뭘 한 거냐고 물었던 때와 같은 답변을 돌려줬다. 알 거 없어. 그러고 나가버리면 화살은 도로시에게 돌아온다. 대쉬, 넌 총 쏘는 법 알아? 루미가 물었고 도로시는 답했다. 알긴 알아. 루미는 비밀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이고 말했다. 그럼 쏴본 적 있어?

약 두 시간 전에도 머피는 무책임하게 도로시를 내버려 두고 나가버렸다. 영화감상실에 누가 있는지 알면서!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물으니 금방 오겠다고 답했지만 그건 ‘알 거 없어.’와 하등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역시 머피는 오지 않았다. 지금은 루미도 없다. 도로시는 총의 감촉을 손가락에 새겼다. 그것은 도로시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두렵게 만들었다. 아냐. 다른 사람이 있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루미는 비명이나 지를 거고 머피는 그때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었으니까. 도로시는 두 사람을 욕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려 애썼다.

 

원색적인 신음이 영화감상실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이 사람은 늘 이런 식이다. 듣기 거북할 정도로 볼륨을 높이고 시간을 넘기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문을 열고 싶지 않다.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언제든 다시는 이 문을 열지 않을 수 있다면.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세상에 마법은 없다. 도로시는 다시 문을 열고 그날로 돌아간다.

 

 

 

 

 

 

Who Killed Catherine

 

CAST

Dorothy, Ash, and blah blah blah…

 

 

 

 

 

 

Catherine

 

캐서린은 엄마와 함께 사는 소극적인 여자아이다. 캐서린의 엄마는 극성맞은 기독교 신자로 자기 딸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특히 순결을 강요하는 방식이 지독하다. 캐서린은 그런 엄마의 밑에서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아이로 자란다. 학교에서는 따돌림까지! 캐서린은 외로운 아이다. 캐서린의 첫 월경이 영화의 기점이다. 캐서린은 학교에서 점점 더 고립되는 한편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건 바로… 넘치는 성욕이다. 무언가 기시감이 드는데 좀 이상하다면 그게 맞다! 〈캐서린〉은 〈캐리〉*의 아류작이다. 캐리의 플롯을 상당히 베껴온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캐서린이 섹스에 미쳐 있다는 것이고 영화는 피와 살과 신음으로 가득하다. 이하 줄거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궁금하다면 찾아보길 바란다. 아무튼 이 삼류 성인영화는 쌔러데이 나잇의 인기작 중 하나였다. 심지어 캐리보다 잘 나갔다. 캐리보다 캐서린이 잘나간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날의 영화는 캐서린이었다. 머피가 골랐다. 취향하고는.

그날의 등장인물은… 늘 그렇듯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가까워질 무렵 불청객이 찾아왔다. 도로시와 프레디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누군가 토요일 밤 쌔러데이 나잇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도로시는 이번에 안쪽에 있었다. 가게의 어둠 속에 숨어 불청객이 문을 흔드는 것을, 머피와 실랑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는 사람이었다.

 

 

 

 

 

 

Mistake

 

그 사람은 가끔 가게에 찾아와 성인영화를 보고 갔다.

 

누군가는 그를 워크맨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그를 애쉬라고 불렀다. 암 덩어리, 거렁뱅이, 이봐, 빌어먹을, 따위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잔뜩 엉킨 머리카락, 해지고 더러운 옷, 거리의 냄새… 그를 이루는 모든 것이 그 모양이지만, 노숙자라는 건 본인이 친히 알려줬다. (회원 등록 때문에 연락처와 주소를 물어봤다.)

애쉬는 영화를 크게 틀어두고 잠들기 일쑤였다. 영화감상실을 잠자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지. 예약한 시간이 넘어가면 도로시는 칼같이 문을 열고 나가라며 그를 재촉했다. 내심 그에게서 풍기는 궁핍과 뒷골목의 냄새를 얼른 내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느 밤. 도로시가 골목에 쓰러져 있던 애쉬를 보고서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지나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선택은 도로시의 마음 한구석을 괴롭혔다. 그 사람이 이후로 쌔러데이 나잇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아파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닌가? 사실 너도 봤잖아. 피를 흘리는 것 같았어. 아니,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은 제 시선을 알아채고, 또 그날 자길 피한 것을 알고 이곳에 오지 않기로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로시는 부끄러웠다. 차라리 제 잘못을 아예 모른 척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착한 척에 재능이 있던가. 도로시는 너무 어중간했다. 쉽게 선망하고 질투하고 쉽게 회피하고 욕했다. 도로시는 실수투성이였다. 그리고 밤이 되면 제 하루를 끊임없이 곱씹으며 이불을 찼다.

그래서 그를 두 번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애쉬가 또다시 어느 골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또 버리고 갈 거냐?” 저를 불러세웠을 때. 도로시는 애쉬에게 다가갔다. 실수였다.

 

 

 

 

 

 

Witness

 

그 사람이 죽였어요.

 

얼마 전에 그 사람을 본 적이 있었어요. 한 일주일도 전에… 그때 찾아온다고 얘기했는데…. 아뇨. 전 잘못한 게 없어요. 그 사람이 다쳤길래 부축해 준 게 전부라고요. 그러니까… 가끔 가게에 찾아오던 사람이라 안면은 있었어요. 네. 그 이상으로 아는 건 없어요. … 그때도 그런 식이었어요. 항구에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도착하니까 갑자기 총을 들이댔어요. 네. 이유 없이요. 그런 식이에요. 자길 도와준 사람한테 총을 들이대는 게 말이 되나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날도 우린 그냥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억지로 들어와서 총을 들고 우리를 위협했어요. 그래서… 네. 그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게 게임인 줄 아나 봐요. 제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래서 엠마를….

엠마는 죽은 거죠. 저도 알아요. 그냥….

 

저도 모른다니까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그냥 전 그 사람이랑 마주친 것뿐인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저도 진짜 모르겠다고요!

 

 

 

 

 

 

Murder Case

 

가게에서 세 개의 탄피가 발견되었다. 그중 두 개는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피해자는 손과 가슴에 총상을 입었으며 건물 내부의 영화감상실의 테이블 위에서 사망했다.

세 번째 탄피는 감상실에 설치되어 있는 스크린에 구멍을 냈다. 도로시 데커 제닝스가 쏜 것으로 추정된다. 용의자가 총을 쏘라고 종용했다고 진술.

가게 내부에서 발견된 마약은 피해자가 들여왔다고 진술.

건물 내부, 감상실 밖에서 혈흔이 발견되었다. 최초 신고자의 진술에 따르면 그곳에서 네 번째 총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의자, 혹은 제3의 인물이 상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 탄피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진술. 이에 관해 추궁하자 진술을 여러 번 번복했다.

목격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진술의 진위가 불확실하다.

현장에는 4인이 있었다고 진술하였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Dorothy and the Others

 

“총은. 어디 갔어?”

“그 사람이 가져갔어요.”

“걔가 쏜 거야?”

“아뇨. 제가… 제가 쐈어요.”

“어딜 쐈는데.”

“모르겠어요. 피가 많이 났는데… 그럴 생각은 아, 아니었는데 그 사람이 자꾸….”

“똑바로 말해!”

“손을… 손에서 피가….”

 

줄리아가 도로시의 뺨을 때렸다. 몸에 힘이 빠져 있던 도로시가 비틀거리다 그대로 넘어졌다. “뭐야.” 줄리아도 넘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도 잠깐, 줄리아는 악에 받쳐 도로시에게 소리를 질렀다.

 

“쏠 거면 제대로 쐈어야지! 여기서, 아까 쏘라고 그랬잖아! 그러면 엠마랑 그 애쉰지 뭔지 하는 새끼가 서로 쐈다고 하면 됐다고! 네가 기회를 날린 거야. 아니… 아니지. 걱정은 네가 해야겠다. … 걔 너 때문에 온 거지? 그런 것 같던데. 맞지? 그렇네. 이거 다 네 책임이야. 너 때문이라고. 네가 뭔데. 별것도 아닌 게 왜 일을 이렇게 만들어!”

“그만하고 말부터 맞춰. 여긴 내 가게야, 젠장. 사람이 또 죽었잖아.”

 

머피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줄리아는 어깨를 떨었다. 표독스럽던 얼굴이 순식간에 서글퍼졌다. 줄리아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새끼.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니고 엠마라고….” 그는 엠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도로시는 줄리아가 우는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봤다. 연출에 실패한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원래 남이 울면 나도 울고 싶어지는데. 저 사람이 왜 우는지도 알 것 같은데. 나도 아까부터 계속 울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줄리아의 눈물은 다른 세계의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비극을 겪었는데도 그들은 다른 영화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긴. 이 사람들은 문밖에서 총성이 들렸을 때도 누구 하나 나와보지 않았지. 문밖에서 죽는 게 나였어도 상관하지 않았을 거야…. 도로시는 차갑게 식은 제 몸을 끌어안고 기다렸다.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쯤 그들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야. 오늘 난 여기 없었던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경찰이 우리 이름을 들먹이지 않게 하라고.”

 

줄리아가 윽박지르고 자리를 떠났다. 월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남은 건 머피와 도로시, 그리고 주검이 된 엠마뿐이었다. 머피는 의자에 앉아 도로시를 바라보다가 술을 내밀었다. “마셔라.”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도로시는 언제쯤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아니다, 어디로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누구의 눈도 없는 곳으로. 모든 게 엉망이다. 피가 너무 많다. 혼자가 되고 싶다. 이곳에서 도로시는 너무 외로웠다.

 

 

 

 

 

 

Who

 

꿈속의 도로시는 총을 들고 서 있다. 그날의 등장인물들이 정지화면처럼 영화 감상실에 서 있다. 무감각한 눈으로 도로시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애쉬가 말한다. 그냥 쏴. 다른 이들도 연호한다. 쏴! 쏘라고! 쏴버려!! 그러면 꿈속의 도로시는 생각한다. 대체 이 중에 누굴 쏘라는 거야? 전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그들이 다가온다. 도로시는 물러나다 벽에 부딪힌다.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눈을 뜨면 덜덜 떨리는 손이, 테이블에 누워 피를 폭포수처럼 흘리는 엠마가 보인다. 어떤 때에는 머피가 그 자리에 누워 있다. 줄리아, 월터, 심지어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이 누워 있을 때도 있다. 모두가 피를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모두가 사라지고 구멍 뚫린 스크린만 남아 있거나… 배경이 바뀌고 진열대 앞에 애쉬만 남아 있을 때도 있다. 슬래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의 손에서 피가 쏟아져 내린다. 그가 말한다. 못하겠다며. 또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때로 도로시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두려움에 떨다 꿈에서 깬다. 어느 쪽이 나은 건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됐지?

 

내가 그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면, 아니 처음부터 도와줬다면,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머피가 쌔러데이 나잇의 문을 열지 않았다면, 월터가 멍청이처럼 굴지 않았다면, 엠마가 칼을 들지 않았다면, … 내가 총을 제대로 쐈다면, 쏘지 않았다면.

그러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 사람은 왜 그럴까.

 

도로시는 그날의 일을, 애쉬를 종종 생각했다.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저열한 감정과 생각, 의도를 모두 파악한다면, 그래서 이야기의 결론을 낸다면 비로소 조금은 ‘이긴’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다. 이긴 기분이 들 리가 없잖아.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 도로시는 이길 수 없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도 수렁에 빠지는 것 같은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도로시는 어떤 면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트래비스와 캐리와 캐서린에게 이입했던 것처럼 애쉬에게도 자신을 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로시는 트래비스도 캐리도 캐서린도 애쉬도 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가 아냐…. 당신 마음대로 하고 살 순 없다고. 당신은 그게 가능해? 어떻게? 그러고 살면 좋아? … 외롭지 않나? 도로시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수만 가지 말을 되뇌곤 했다.

 

아니… 넌 내 기분을 알아. 짜증나잖아… 날 소외감 느끼게 만드는 것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벌떼마냥 몰려다니는 새끼들, 무시하면서 아닌 척하는 저 눈빛.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아니야, 도로시? 넌 날 이해할 수 있어….

 

‘개소리.’ 도로시는 머릿속으로 애쉬의 말에 답했다. ‘진짜 불쌍하다.’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땐 이렇게 답했고, ‘미친놈.’ 도저히 그를 이길 자신이 없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상상 속의 애쉬는 총을 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웃거나…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Silly Hole

 

애쉬는 몇 주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가게의 문을 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봐요. 시간 지났어요.”

 

도로시가 목소리를 내자 애쉬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입맛을 다시고 주변을 둘러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로시는 문가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그의 행색, 몸짓, 눈짓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상상 속의 애쉬는 총을 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웃거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도로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왼손이었다. 피가 쏟아져 내렸던 그 손. 엄지가 힘없이 늘어지는 게 옷 너머로 느껴졌다. 도로시는 턱에 힘을 줬다.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내가 한 짓을 기억하라고? 긴장하지 말라고 비웃는 건가? 돌아서서 갑자기 총을 쏘진 않겠지? 아냐, 지금은 한낮이고 밖에는 사람들이 있고…. 고개를 돌렸을 때 애쉬는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도로시는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았다. 싸구려 영화가 여전히 상영 중이다. 살색 영화 속 배우들의 어깨, 다리, 목, 뺨, 가슴, 눈동자에 구멍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스크린에 뚫린 구멍은 몇 주째 그 자리에 남아 무수한 영화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그 모양이 정말이지 꼴사납고 우습다. 도로시는 그 구멍을 한참 노려보다가 조용히 읊조렸다.

 

“미친놈….”

 

 

 

 

 

 

 


 

 

Pink Floyd - One of the Few

 

* 〈캐리〉 (Carrie,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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