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the door
2021. 6. 1.

 

 

  "어딜 가도 문제네."

  미스트레아는 푸른 눈으로 먼 곳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지지는 느슨하게 서로를 붙잡고 있는 손의 감촉을 느끼며 미스트레아와는 조금 다른 곳에 시선을 뒀다. 그들은 안전한 곳을 찾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곳, 위험한 사람이 없는 곳. 어디든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누구든 위험할 수 있는 방주에서는 길을 찾기 어렵다.

  문제는, 사실 그들 둘도 서로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방금 막 마주친 낯선 타인이었다. 아지지는 그 사실을 되새김질하면서 수많은 자기계발실이 있는 층으로 미스트레아를 데려갔다. 복도는 조용했다. 수많은 용도의 방들이 복도를 따라 이어진다. 원래의 용도가 어떻든, 사람들은 제각각의 의도를 갖고 방을 사용할 터다.

  의식은 복도를 따라 달려 다른 기억 앞에 선다. 방안에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앉아 있다. 이름은 아야네. 나서서 남을 돕는 귀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기이하게도 그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면 선율이 타인을 속박했다. 아지지는 방문 앞에 서 있다. 작은 영웅은 몸을 다친 상태였다. 괜찮다면 들어갈게요. 방안으로 목소리를 흘리자 아야네의 분홍색 눈동자가 조금 열린 문 너머로 아지지를 응시했다. 작은 영웅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아지지는 기다렸다. 경계와 의심 속에서 상대를 판단하는 길고도 짧은 시간을.

  눈을 한 번 깜빡인다.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방문 앞에서 멈춘 아지지는 미스트레아를 돌아본다. 서로의 눈동자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서.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Open the Door

; 문을 열다

 

 

 

 

 

  9월 23일, 페페가 방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 한 문장의 파급력은 작지 않았다. 힘을 가진 자들,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던 사람들, 바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 무엇보다 지친 많은 사람이 방주 밖으로 나가는 데 동의했다. 서로를 향한 불만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역할이 나뉜다. 누군가는 밖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방주의 문제를 찾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끊임없이 올라갔다 내려온다. 아지지는 가만히 서서 사태가 흘러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뛰었다. 바깥은 아지지가 모르는 세상이었고, 노아를 동행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만날지, 누가 위협이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지지에게는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 많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버사 씨, 일행 없으십니까?"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알렉산드르 볼코프가 서 있다.

  "아, 네."

  "혼자는 좀 불안해서 말입니다."

  캡모자 밑으로 정적인 눈동자가 아지지를 바라보았다. 아지지는 방주 내에서 알렉산드르 남매를 본 적 있었다. 강인한 얼굴과 친근한 손짓, 경직된 어깨.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방주의 어느 사람들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특성이므로.

  아지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걸 지켜보다 다시 알렉을 바라본다. 어쩌면 자신처럼, 알렉도 무표정한 얼굴 밑으로 많은 감정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순간, 아지지는 그중 하나가 두려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편이 안심되니까.

  "그래요, 같이 나가죠."

 

 

 

 

 

  살갗을 태우는 전기가 느껴졌다. 아니다. 코앞의 모든 숨을 빼앗겼다. 아니, 무언가가 눈앞을 휘젓는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아니, 아니다. 아지지는 모든 것을 감각한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풀, 짐승의 발짓, 검을 휘두르는 소리, 전기가 살갗을 태우는 냄새, 빼앗긴 숨이 한곳에 모여 이룬 기이한 공. 아지지는 총을 쏘는 대신 휘둘렀다. 팔이 욱신거린다. 그런 와중에도 알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계속 시야를 어지럽혔다. 아지지는 눈을 감는다. 낯선 냄새, 피와 땀과 물이 섞여 아찔하게 코끝을 찌르는 습기. 울부짖는 소리. 욕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아지지는 눈을 뜬다. 커다란 하이에나가 나무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등을 굽히고 이를 드러내던 하이에나 무리는 혼란스러운 듯 그 주변을 배회했다. 곧 가장 먼저 발길을 돌리는 하이에나를 따라 무리는 멀어진다. 아지지는 천천히 몸에 힘을 풀었다. 주변의 풍경과 물체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시야, 냄새, 소리, 살갗에 달라붙는 습기와 바람이 순식간에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현기증이 났다. 아지지가 얻은 새로운 힘은 그 주인을 피로하게 했다.

  "젠장. 다신 돌아오지 마라~"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겨우 고개를 들자 온통 새빨간 사람이 보였다. 이능력을 풀었는데도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에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으나, 그 사람의 몸을 뒤덮은 핏물의 대부분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곧바로 깨달았다. 그들은 하이에나 전에 악어와 만났고, 그 악어는 지금 뼈와 살이 분리된 채로 한쪽에 놓여 있었다. 하이에나 무리는 죽은 생물의 자취를 쫓아온 모양이다.

  "핀리."

  "어라, 다쳤어?"

  이름을 부르자 한쪽 팔을 쥐고 있던 핀리가 뒤를 돌았다. 아지지는 고개를 저으며 턱짓으로 핀리의 팔을 가리켰다. 핀리의 이능력은 그 자신의 몸을 태워버릴 것 같은 전기로 나타났다. 방주 밖으로 나온 핀리는 때때로 자신의 팔을 쥐거나 문지르곤 했다. 아마 이능력의 부작용 때문일 터다.

  "괜찮아요?"

  이번엔 아지지가 물었고, 핀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렉! 어떻게 해. 아프겠다. 제대로 보자."

  왼쪽에서 들려오는 긴장된 목소리에 아지지와 핀리 모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규하였다. 공기를 압축하는 능력으로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으로 소총이며 단검까지 휘두르는 게, 아지지로서는 놀랍기만 했다. 아지지는 고작 팔 한 번 휘두른 게 전부였지만 규하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하이에나를 노렸다. 지금 규하는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앞에서 호흡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은 알렉이었다. 피 냄새가 났다. 이번엔 진짜라는 것을 모두 눈치챘다.

  "뭐야, 어디 다친 거야?"

  "알렉. 말할 수 있나요?"

  "심한 건 아닙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무시할 수 없는 상처가 보였다. 오른팔은 전투복은 물론이며 살점까지 흉하게 뜯겨 있었고, 등과 가슴에는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나 살갗을 드러냈다. 아지지는 미간을 좁혔다. 알렉은 심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아지지의 삶에서 사람이 이렇게 다치는 건 흔한 게 아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이능력을 쓰지 않았는데도 아지지는 귓가를 울리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동시에 조금 전 이능력을 썼을 때 자신의 시야를 괴롭혔던 게 알렉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능력을 써서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아지지의 눈은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하이에나 무리가 혼란스러워 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터다.

  아지지는 알렉에게 물었다.

  "방주로 돌아가는 건 어때요?"

  "괜찮습니다."

  규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알렉의 안색을 살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예. 충분히 움직일 수 있어요."

  알렉은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친 건 그 자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침착한 얼굴이다. 그 얼굴을 보자 핀리가 발끈했다.

  "장난해? 다친 게 폼이야?"

  "방주 밖으로 나온 게 처음이잖아. 욕심날 수 있지."

  "그 몸으로 돌아다니는 건 짐만 될 뿐이라고. 이대로 죽고 싶은 거면 알아서 해."

  규하가 알렉을 변호하듯 나섰고, 핀리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짜증스럽게 넘기다 한숨을 쉬었다. 걱정이 묻어나오는 얼굴이었다.

  "돌아가죠. 저도 슬슬 걷는 데 힘이 드네요."

  아지지는 핀리의 편에 섰다.

  다치더라도 식량을 조금 더 얻어보는 게 낫다, 다음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당장 다친 몸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다친 몸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곳에서 무슨 짐승을 만날지 모른다, 우리는 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길 수도 있다. 그들은 한동안 공방을 이었다. 그러는 동안 피 냄새와 습기에 익숙해지고 땀이 식은 몸이 차가워졌다. 모두가 지쳐서 말을 멈췄을 때, 문득 규하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분홍색이야."

  그 말에 나머지 세 사람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네."

  "오랜만이네."

  "…돌아가자."

  혼잣말처럼 툭툭 내뱉은 말들이 서로 얽힌다. 어둠이 찾아온다면 지금보다 더 힘겨워질 거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네 사람은 왔던 길을 다시 되짚었다. 늪의 습기를 빨아먹은 것처럼 몸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들은 악어 고기를 번갈아 나눠 들고, 서로를 부축했다가, 멀리 떨어졌다가, 도움을 받았다가 거절하면서 방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탈 때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붉은빛에서 검은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와~ 땀 냄새 대박."

  핀리가 그렇게 말했고 힘없는 웃음소리가 하나둘 엘리베이터 안에 울렸다. 그들은 모두 초라한 몰골이었다. 아지지는 세 사람을 보면서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하늘을 다시 떠올린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고,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이 다시 열릴 때를 떠올렸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규하가 말했다.

  "다음이 있을 거야."

  밝은 조명 아래에서 전보다 해쓱해 보이는 알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까지, 그들은 각자의 상념을 안고 침묵했다.

 

 

#2021

Mission 2. 돌발상황

너무 급하게 엮은 부분들이 보여서 아쉽쥐만... 즐거운 합동미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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