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콜릿과 크림을 넣은 쿠키를 입에 넣은 아지지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입안에 퍼지는 크림과 초콜릿은 기분 좋은 달큰함 대신 느끼하고 텁텁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아지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식은 좋지 않습니다, 아지지 님.]
"알아요."
아지지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기계에서 눈을 돌리고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빵과 쿠키 부스러기들, 덜어낸 생크림, 터진 블루베리 따위가 어질러져 있다. 아지지는 큰 접시에 그것들을 모두 덜어내고 상을 닦았다. 노아의 기계 몸은 아지지의 주변을 천천히 배회한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노아가 그렇게 말하자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청소 기계가 작동음을 냈다. 아지지는 표정이 달린 네모난 기계와 표정 없는 청소 기계를 한 번씩 바라보고, 접시를 내밀었다. 자리는 깨끗해질 것이다. 아지지는 빈손으로 카페테리아를 나간다.
[아지지 님. 과식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당 섭취량이 많습니다. 식단 조절을 권장해 드립니다.]
"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예요."
부유하는 노아는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따라붙는다. 아지지는 입을 다문 채 천천히 걸었다.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굽히고 싶지 않았다. '뭘 굽혀?' 곁에 있는 건 노아밖에 없는데도. 탈이 난 모양인지 몸이 차가워지고 배가 아팠다. 참아보려 했으나 찌릿한 통증에 결국 벽을 짚었다.
아득히 먼 곳에 있던 목소리가 거리를 좁히더니 갑자기 귀를 때린다.
"안녕? 뭐해? 와아~ 막 나오자마자 죽을 것 같은 친구가 있네. 노아~ 이건 어떻게 해야해? 응?"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분홍색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짓궂어 보이는 젊은이의 얼굴.
"안녕. 방주에서 뭘 잘못 먹어서 죽은 사람이 지금까지 있었는지 노아에게 물어봐 줄 수 있어요? 없다면, 제가 첫 번째가 될지도 모르겠거든요."
"하하! 그래~ 물어는 봐줄게~ 노아! 방주에서 뭘 잘못 먹어서 죽은 사람이 있어?"
[없습니다. 리리 님.]
'리리'라고 불린 상대는 끊임없이 말했다. 아플 때면 남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느껴지곤 했는데…… 아지지는 변덕스러운 몸이 그새 배를 쥐어짜길 그쳤다는 걸 깨달았다. 식은땀이 나는 이마가 시원했다. 과식했다고 고백하자 눈앞의 경쾌한 젊은이가 손짓했다.
"약 처방 해줄게~ 이리와 구구구~"
"비둘기를 치료할 약을 구한 건 아니길 바라요."
아지지는 농담하며 젊은이를 따라갔다.
2.
리리의 이름은 리데레였다. 기록을 위해 개인용 휴대기기에 이름을 입력했더니 자동 검색 기능이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버튼을 띄웠다. 아지지는 화면 속 버튼을 눌렀다. 인터넷은 'ridere'에 '미소'라는 뜻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아지지는 리데레를 미소로 기억한다. 왼쪽 눈을 찡그려서 어딘가 삐뚜름한 느낌을 주던 얼굴, 장난스럽게 벌어지는 입술과 톡 튀어나온 송곳니.
리데레는 자신이 21세기에 살았다고 말했다. 아지지는 20세기에 죽었으니 그들 사이에는 약 100년 치의 강물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아지지는 19세기와 20세기의 간격과 20세기와 21세기의 간격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도, 리데레와 아지지는 다른 곳에서 왔다.
"아지지~ 아지지~"
리데레는 그들 사이에 100년이 있는 것도, 그들의 나이에 몇십 년의 간격이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리데레에게는 격식이 없는 대신 허위도 없었다. 리데레는 길에서 아지지를 마주치면 종종 노래 부르듯이 인사했다.
"리데레~ 리데레~"
그래서 아지지도 그렇게 했다.
3.
[아지지 님. 리데레 님과의 간식 약속 당일이 되어 알려드립니다.]
"노아. 오늘 날짜를 다시 말해 줄래요?"
[2638년 9월 17일입니다.]
"약속을 언제 했죠?"
[2638년 8월 17일 오후 5시 28분, 아지지 님과 리데레 님이 '한 달 뒤'로 일정을 예약하셨습니다. 시각은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아지지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한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아지지는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나처럼 욕심이 과해서 먹어보지 않은 것들을 먹겠다고 위장을 혹사했다. 끊임없이 새 옷을 찾는 것처럼 새 디저트를 찾았다. 몇 주 동안 이어진 과욕을 그만두기로 한 날 리데레와 만났다. 아니다. 리데레와 만난 것이 먼저고 이후 과욕을 그만두기로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만났고, 한 달 뒤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다.
'제일 맛있었던 건 뭔데? 나중에 참고해보게~'
'크레이프가 맛있었는데, 그게 첫 번째여서 그럴지도 모르죠. 한 달쯤 뒤에 다시 물어봐요.'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내가 까먹으면 네가 와서 말해줘야 한다~?'
그 자리에서 둘은 노아를 불러 일정을 예약했다. 한 달 뒤, 간식 약속, 아지지, 리데레.
이후로도 두 사람은 여러 번 마주쳤다. 인사하고 잡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약속은 점차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원체 가볍게 물 흐르듯 약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리데레의 말대로 노아에게 일러두지 않았다면 완전히 잊었을 수도 있다. 아지지는 이 약속에 큰 기대를 안고 있지 않았다. 리데레 때문은 아니었고, 질리도록 디저트를 먹느라 속을 버린 경험이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아지지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하다가 땋아내린 머리카락들을 올려 둥글게 말았다.
리데레는 금방 만났다. 팔을 저으면서 경쾌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사람을 아지지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아지지~ 아지지~ 우리 오늘 약속이다아~? 약속 안 만들었지? 있었어도 이게 선약이야!"
"당연하죠. 그런데 리데레. 나 뭐 달라진 거 없어요?"
"으응? 음…"
마주보고 선 리데레가 고심하는 얼굴로 아지지를 뜯어 본다. 아지지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곤 틀어올린 제 머리를 톡톡 치고, 다음으로 리데레가 양쪽으로 틀어올린 머리를 가리켰다. 리데레는 나무라는 듯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린다.
"뭐야아~ 아! 맞다. 아지지! 디저트 이제 안 질리지? 오늘 먹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리데레는 아지지의 팔을 붙잡고 카페테리아로 이끌었다. 아지지는 평온한 얼굴로 검지를 들어 보인다.
"딱 하나만."
"그래 그래~ 알았어~."
4.
"이거 진짜 맛있는데. 이거 딱 하나만 더 먹어 봐."
"싫다니까. 크림 올라간 건 안 먹을래요."
"음료 더 시키면?"
"다음에 먹죠. 이러다 저녁 식사를 못하겠어요. 시간을 봐요."
"벌써~?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 다음에 꼭 먹어봐야 돼. 노아~ 아지지랑 약속 잡아줘! 날짜는~"
리데레와 헤어진 뒤 아지지는 자신이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았다. 카페테리아에 처음 앉았을 때 떠오른 건 한 달 전, 여러 디저트를 시험해보던 식탁이었다. 그러나 헤어질 때는 달랐다.
아지지의 기억 속에는 디저트가 존재하는 수많은 식탁이 있었다. 바라보기만 하던 식탁이 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던 식탁이 있다. 어머니의 손과 초콜릿으로 기억되는 식탁. 쿠키와 차, 뒷담과 허위가 존재하던 식탁. 여러 손과 잔, 접시가 무질서하게 놓여 있던 칩의 가게의 식탁.
리데레와 함께한 시간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으나 그 중 무엇과도 닮지 않았고, 아지지는 종종 웃었다.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아지지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식탁이 흐리게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경쾌한 웃음소리, 말과 미소, 그리고 리데레가 있는 식탁이.
아지지는 그 식탁이 언젠가 뚜렷한 형체가 될 것을 알았고, 그날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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