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 톰이라는 어부가 있었어. 톰은 부지런한 사람이었어. 늦잠 한번 자지 않고 이른 새벽마다 배를 띄우고 석양과 함께 돌아왔지. 집으로 돌아오면 두 아이가 톰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두 아이를 홀로 키웠는데, 착하게도 엄마가 바다로 나가 있는 동안은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돌봤다나. 세 사람의 입에 풀칠하려면 엄마가 일해야 한다는 걸 안 거지. 똑똑한 아이 덕분에 톰은 안심하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어.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폭풍? 에헤이. 그런 건 묻지 마. 여기선 톰이 그만큼 부지런하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자, 자. 집중!
하루는 톰이 아직 바다에 나가 있는데 멀리서 회색 구름이 보였어. 톰은 뱃사람이었기 때문에 구름을 보지 않아도 물결이 거세졌다는 걸 알 수 있었지. 하지만 그는 뱃머리를 돌리지 않았어. 그날따라 고기가 잘 잡혔거든. 조금만 더. 톰은 생각했어. 정말 조금만 더 잡고 가자. 그러면 이번 주는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사실 톰은, 쉬고 싶었어. 정말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고 내일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 날이 흐려진다면 내일까지 비가 올지도 모르니 핑곗거리도 알맞지 않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래. 그쪽이 기다리던 거 맞아.
빗물이 얼굴을 때리고 코트가 몸에 달라붙었어. 아, 그래. 코트는 안 입었다고 치자. 어부한테는 좀 안 어울리긴 해? 어쨌든 옷이 몸에 쫙 달라붙었어.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고 사방이 요동치는지 톰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쾅!
톰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자…
프랭키는 눈을 떴다. 기침이 터졌다. 텁텁한 입안의 침을 모아 뱉자 모래알이 끈적하게 섞여 나왔다. 마른 손에도 모래가 잔뜩 붙었다. 그는 모래사장에 누워있었다. 프랭키는 모래 사이로 헤엄치듯 제 손바닥을 밀어 넣었다가 뺐다. 고개를 들자 니케 호가 보인다. 그 유람선은 놀랍게도 무인도의 암초 사이에 올곧게 서 있었다. 정확히 섬의 아가리에 뱃머리를 꽂아 넣은 것 같은 풍경. 폭풍우가 지난 뒤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흔들림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옆으로 바다가 보였다. 장대하고 고요하고 잠잠한 물. 별안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바라보는 것 같다. 프랭키는 몸서리치며 뒤를 돌았다.
톰은 무인도에 떨어졌어. 아름다운 섬이었지만 톰의 눈에는 그런 게 들어오지 않았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애들은? 배는 멀쩡했지만 당장 떠나기에는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고, 바다는 아직 안전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어. 톰은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야. 일단 하루를 보내기로 했지.
날이 저물어 야영하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어. 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사람이 살고 있었던 걸까? 수풀을 헤치고 나아간 곳에서 톰이 발견한 것은…… 인어였지. 인어가 상반신은 인간의 몸, 하반신은 물고기의 비늘을 하고 앉아서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톰은 호기심이 생겼어. 노랫소리 때문이었을까? 왜 인어는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린다잖아. 톰은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인어에게 다가가는 걸 멈출 수 없었어. '저기… 그, 사람입니까?' 물론 말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인어는 노래를 뚝 멈추고 톰을 바라봤어.
그리고 웃었어.
하하하!
톰은 생각했지. 꼭 사람처럼 웃는다고.
니케 호의 선장 잭 클라크는 일 처리가 확실했다. 선승객이 아닌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를 규합해 빈 일등석과 이등석을 제공하고 편의시설을 정상화했다. 프랭키는 죽은 사람들의 일등석을 차지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그 방을 내놓으라고 드는 자들이 있어서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돈도 안 내고 들어온 사람이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하는 건 말도 안 된다나 뭐라나. 프랭키는 그들이 들어오든 말든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고 사람을 데려와 술을 마시나 싶더니, 그들이 시끄럽게 하자마자 뻥뻥 발로 차 내쫓았다. 그자들은 객실 밖에서도 끈질기게 쫓아오며 프랭키를 괴롭히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포기했다.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지만.
"이제 다른 희생자를 찾을 생각이야? 다음번엔 좀 돈 많고 유약한 놈이 걸리길 바라~!" 프랭키는 돌아가는 그들의 뒤에 대고 소리를 쳤다. 뭐, 일등석을 순순히 양보할 놈이 있겠냐마는. 프랭키는 샐쭉 웃었다.
조난자들은 이때가 아니면 모일 일이 없을 것 같은 종의 집합처럼 보였다. 선승객이 아닌 자들의 존재 때문일 터다. 어떤 자는 조난 전후로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도 하였으니, 상황이 바뀐 탓도 있었다. 구조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그리고 섬에 대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비췄다. 이곳이 인어의 섬이고 우리 중 인간이 아닌 기묘한 존재들이 섞여서 인간 행세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프랭키는 때로는 조류를 따르고 때로는 거스르며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였다. 아직 질릴 일은 없었다. 이곳에는 이야기가 많았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숨은 이야기. 그들이 엮이며 만들어내는 이야기. 발굴되지 않은 이야기. 새롭게 탄생할 이야기.
그리고 바다를 보는 일도 질리지 않았다. 프랭키는 바다를 보기 위해 니케 호에 올랐다.
인어와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어. 인어는 잘 웃었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줄 알았고, 신기해하는 톰이 자기 비늘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 톰의 배에서 굶주린 고동 소리를 듣고는 물고기를 잡아주기도 했어. 톰은 달콤한 과일들을 따서 먹기도 했어. 태생이 바닷사람이었기 때문에 직접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배를 타는 것은 어딘가 꺼려졌어. 이튿날이 되자 톰은 잠잠한 바다를 보면서 다른 생각에 잠겼지. 조금만 더. 하루만 더. 이틀만 더 있다가 돌아가는 건 어떨까? 그동안 너무 고생했잖아. 힘들었으니까 쉴 때도 되었지.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프랭키는 낯선 조난자에게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손가락을 맞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났을까?"
프랭키는 니케 호에 오르기 전 사람 먹는 인어에 대한 콩트를 썼다. 편집장이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다음 날 아침 무인도는 다시 무인도로 돌아갔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배 한 척에 이끼가 앉기 시작했다.' 프랭키는 그 콩트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인어가 궁금한 자들이 모인 배를 타기 위해서.
"내가 아는 이야기는 영 재미가 없거든. 답은 없으니까 이제 당신이 얘기해 봐."
프랭키는 입술을 씰룩이며 손가락으로 상대가 앉은 바위를 가리켰다. 상대를 놀리는 것처럼 농담을 덧붙인다.
"마침 톰이 바다를 구경하던 자리가 거기였거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