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nse
내가 탐정을 따라 이 배에 탔다고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 뭐, 선장님에게는 말씀을 드렸지만,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인 만큼 거짓말일 경우를 염두에 두신 것 같아 드리는 말입니다. 아~ 아뇨. 기분 안 상했는데요. 진짭니다? 거짓말을 찾으려면 거짓말하는 얼굴을 봐야 한다. 옳은 말씀이지요. 다만 누군가는 얼굴을 가리고… 그래요. 이를테면 베일로 가릴 수도 있겠죠. 그쪽처럼. 또 누군가는 목소리에서, 손짓에서 거짓말을 찾아내지요.
어쨌든 거짓말을 찾으려면 단서를 쫓아야 한다 이겁니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어쩌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네, 우리가 지금 거짓말쟁이를 찾기 위해 공유한 그것 말입니다.
배에 타기 전에 나는 단서를 줍는 일을 조금 했습니다. 탐정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면 가끔 그것을 마주칠 때가 있었는데, 아십니까?
그것은 종류가 꽤 많습니다. 볼 때마다 이전에 본 것과는 달랐다는 의미죠.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결국 우리, 인간이 흘린 욕망을 줍기 위해 그것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진짜 거짓말쟁이들은 가면을 잘 바꿉니다.
정말 거짓말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그 안에 도사린 욕심을 봐야 하죠.
참. 여기 이 자리에도 그것이 있습니다.
Liar or Innocent
1. 내가 탐정을 따라 이 배에 탔다고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
날은 저문 지 오래지만 클레멘타인 롤랑은 바다의 암초를 분명히 응시한다. '있구만. 있어. 이곳에 확실히. 인어가 존재하는구만.' 들뜬 목소리와 담비털 담요를 두른 노인의 뒷모습. 프랭키는 클레멘타인의 눈을 쫓아 다가왔고, 이제 둘은 서로의 목적지를 떠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프랭키가 묻자 클레멘타인이 같은 질문을 되돌려 준다. 프랭키는 천천히 답했다.
떠나고 싶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못할 건 무엇인고. 배라는 건 사람을 태우고 멀리 보내는 물건인데, 제 역할을 하는 게지. 무엇으로부터 떠나는가와, 어디로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고. 말할 수 있는가? 자넨 뭘 위해 떠나는가.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클레멘타인 롤랑의 질문에 프랭키는 한참 턱을 매만지다 눈을 찌푸렸다. 철썩. 파도 소리가 뺨을 때리는 기분에 고개를 든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자에게 등대 없는 바다는 짙은 암흑으로 보일 뿐이다. 프랭키는 클레멘타인을 보고 말한다.
운명을 시험하려고. 어쩌면 이게 답이 되겠습니다.
2. 어쨌든 거짓말을 찾으려면 단서를 쫓아야 한다 이겁니다.
"악!"
비명이 짧게 터진다. 제 목소리에 지레 놀란 자가 고개를 빼고 갑판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긴 시각, 그레이트 니케 호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정적 속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바위를 손으로 짚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으로 뛰어내린다. 금방 삐끗한 발목이 시큰했다. 프랭키는 위를 올려다봤다. 암초에 박힌 니케 호의 선두. 무인도에 처박힌 첫날 눈을 뜨자마자 보았던 것보다 더 육중해 보이는 것은 어둠 탓일까. 프랭키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모래를 밟았다. 모래 알갱이들이 발바닥에 짓눌리고 흩어졌다가 발가락 사이로 모인다.
미역 사이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사람을 습격할 만한 생물이 뭐가 있을까? 1번, 게. 2번, 바다뱀. 3번은… 쥐?
난 2번, 바다뱀으로. 자네 생각은 어때? 버틀러 씨는 눈이 좋을 것 같은데.
오, 아레스 씨는 버틀러 씨보다는 시력이 나쁘답니다. 당신만큼은 아니겠지만요.
폴 아레스의 말을 떠올리며 프랭키는 미역 줄기들을 손으로 헤집었다. 손을 다친 자들을 보았지만 다칠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쳤으면 했다. 미역 줄기를 헤집고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프랭키의 뒷모습에서는 무언가 벌어지길 바라는 사람의 냄새가 났다. 프랭키는 모래 속에서 발을 움직여 보다가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갑갑한 조끼 단추는 풀었고, 조심성 없이 움직이는 새 셔츠는 바지 밖으로 삐져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바다 앞에서 프랭키는 망설였다. 주춤하고 있으면, 그를 놀리듯 급작스럽게 높은 파고의 물살이 들이닥쳐 뺨을 때린다.
프랭키는 뒤로 넘어졌다.
3. 진짜 거짓말쟁이들은 가면을 잘 바꿉니다.
행색이 꼭 그래 보여서 말입니다. 도둑질이 아니라면 외도인데.
도둑질과 외도라니.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후자가 나아서 고민되지만… 난 살림을 차린 적이 없으니까 휴가를 즐겼다고 해둘게. 섬에서 노는 거야 다 똑같지.
당신은… 싸움을 하다 오신 건 아니지요?
뭐, 이 무인도와 사투를 벌였지.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누가 싸웠어? 좋은 구경을 놓친 거라면 아쉬운데 말이야.
그쪽은 뭘 하다 왔길래 옷차림이 그 모양인가요?
아, 이거야 내가 이 옷이랑 아직 친해지질 못해서. 그쪽은 어쩌다가?
그렇게 지혜를 요구할 일이 당신에겐 없을 줄로만 알았거든요, 프랭키.
오. 그런 섭섭한 말씀을. 내가 탐정님을 따라온 이유가 그게 아니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지혜, 진실, 그런 거 말입니다…
4. 거짓말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그 안에 도사린 욕심을 봐야 하죠.
"내가 그렇게 사기꾼처럼 생겼나?"
라이어 게임의 결과가 나오자 프랭키가 입술을 비죽였다. 아니라곤 못 하죠. 누군가의 말에 프랭키가 짐짓 화난 척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거기 누구야!"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웃는다.
그들 사이에서 잭 클라크의 웃지 않는 얼굴을 발견한 프랭키가 멈칫한다.
프랭키는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자네의 목적지를 기억하나? 그러나 묵직한 선장의 목소리와 그가 내민 백색의 종잇장을 기억했다. 프랭키는 제게 달라붙는 것들을 모두 떨쳐내려는 듯 큰 소리로 웃으며 농담을 잇고 장난을 쳤다.
거짓말을 찾아내지 못한 조난자들의 가면 사이에서 잭 클라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5. 참. 여기 이 자리에도 그것이―사냥개가― 있습니다.
프랭키는 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머리끈은 언제 끊어진 건지, 묶은 모양대로 동그랗게 모였다가 축 처져서는 모래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프랭키는 상체를 일으켜 모래사장에 앉았다.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하!!!"
실소가 터져 나온다. 왜인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고 애꿎은 모래를 방망이질하다가 오른손이라는 걸 깨닫고 힘을 풀었다. 몸 일부가 제 것 같지 않은 감각에 인상을 쓴다.
"안경을 가져올걸."
파도가 일렁거리는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프랭키는 읊조렸다. 입술이 연신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해야 하는 말, 아니 할 수 없는 말이……
사람의 기척을 느낀 프랭키가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감각을 느낀다.
"뭐야?"
저도 모르게 성난 음성으로 외친다. 제 표정이 얼마나 못나 꼴인지도 알지 못하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