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이오 이튼
뻔한 이야기를 읊는 동안 프랭키는 종종 관객의 손을 보았다. 정확히는 조각칼로 나무토막을 괴롭히는 그 관성적인 행위를. 이 배 어딘가에서 조용히 나무토막을 깎던 사람이 한 명 더 생각나긴 했지만, 이오 이튼과 알렉산더 이튼은 곧장 엮을 만큼 닮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오 이튼의 손안에서 나무토막은 어부의 콧대가 되었다가 폭풍의 빗줄기가 되었고 다시 인어의 비늘이 되었다. 실은 그중 무엇도 되지 못했다. 그 모습은 꼭 높이와 모양이 다른 파도에 몇 번이고 깎여나간 바위 같았다.
이오는 그런 바위 위에 앉아 있었고, 불현듯 프랭키는 그와 위치를 바꾸기로 한다.
"답은 없으니까 이제 당신이 얘기해 봐. …마침 톰이 바다를 구경하던 자리가 거기였거든."
그러자 이오는 손을 멈추고 조각 같은 미소로 프랭키에게 화답한다. 위아래로 저를 훑어보는 시선을 프랭키는 구태여 피하거나 붙잡지 않는다. 대신 기다렸다.
"그러다 일주일째에, 톰은 인어에게 질려버렸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될 순간을.
톰은 육지가 그리워질 무렵 인어에게 떠나겠다고 말한다.
인어는 톰을 붙잡는다. 톰은 거절한다.
인어는 톰을 잡아먹는다.
다음날 아침 무인도는 다시 무인도로 돌아갔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배 한 척에 이끼가 앉기 시작했다.
프랭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늘 둘 중 하나의 길을 걸었다. 운명에 순응하거나, 반항하거나. 이도 저도 되지 못한 자들은 소설의 테두리에서 먼지처럼 살아간다. 그러므로 톰과 인어의 이야기는 프랭키 서튼의 콩트이지, 프랭키의 소설이 아니었다. 독자는 그 콩트 안에서 인어의 운명을 확인할 수 없다. 이오가 생각한 대로 프랭키 서튼의 콩트는 진부한 결말로 끝이 나고, 프랭키는 색다른 변주곡을 원했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바라는 독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눈앞의 인물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했다.
"결국 여기에는 껍데기만 남았고, 그 육신은, 제가 서 있는 바위의 일부가 되었겠죠…."
이야기를 마친 뒤 이오는 파도에 쓸린 흔적이 남은 바위 위에 두 다리로 단단하게 균형을 잡고 섰다. 그러나 초점은 순식간에 어긋나고 이오는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망령의 자리다. 프랭키는 생각했다.
이야기는 화자와 청자를 바꾸며 끊임없이 변주되고,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를 거쳐 간 이들의 삶으로 빚어진 거대한 거울과 같았다. 그리고 프랭키는 이오 이튼의 변주곡 속에서 망령을 보았다. 아름다운 꿈속의 환상과 보잘것없는 존재 사이를 오가는 망령을.
이오가 드리운 베일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프랭키는 가늠하지 않았다. 이오가 말하지 않았는가. '아, 신비해 보이지만 멍청한 면모가 있네. 베일을 걷어보니 별거 아니잖아. 그렇게까지 선망하고 갈구할 필요가 없겠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프랭키는 베일을 걷지 않는다. 꿈은 꿈으로 남겨져야 아름답다. 프랭키 서튼의 콩트에서 인어의 목소리가 삭제된 것처럼, 이오가 인어를 인간의 꿈속에 갇힌 실재하는 환영으로 해석한 것처럼.
이오는 무엇도 되지 못한 나무토막을 바다에 던지고 말간 웃음소리를 냈다.
"행복하게 끝나지 않아야 아름다울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잖아요…"
"꿈은 꿈으로 남겨져야 아름다우니까. 그렇지?"
꿈속에 갇힌 듯한 미소를 바라보며 프랭키가 웃었다. "그쪽, 소설을 써도 되겠는걸.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재밌는 이야기야." 프랭키는 허리를 굽혀 돌멩이를 하나 들고, 그걸 던졌다 받았다 반복했다. 한동안 말없이 돌멩이와 장난을 치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금 막 파도가 다녀간 바위는 모래와 진흙을 남겨 엉덩이가 더러워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한 가지 질문이 입술을 근질근질 괴롭혔으나 프랭키는 그걸 함에 넣어 간직했다. 그는 이오가 나무토막을 버린 바다에 돌멩이를 집어 던진다. 바다로 가라앉은 것을 다시 꺼낼 날이 올 지, 지금은 알 수 없을 터다.
프랭키는 한없이 가벼운, 그러나 한 구석이 짓궂은 미소를 띤 채 이오를 돌아본다.
"그쪽 이름을 빌리고 싶어. 별 건 아니고, 인어의 이름으로…. 빌려줄래? 알려주면 잘 썼다 돌려줄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