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북동쪽에서 발견한 백골에는 'BREAKER'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선장이 망자의 명찰을 확인하여 그가 니케 호 출장 며칠 전 런던에 왔던 배의 선장임을 알려주었다. 그가 바로 인어를 납치해 영국에 인어의 존재를 알린 사람이라고. 상의 위에 새빨간 피로 쓴 글자는 누가 봐도 경고였다. 어떻게 그자가 이곳에서 백골이 되어 있는지 추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망령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운 존재에게 짓밟힌 목소리들. 프랭키는 프랑소와 드뇌브, 아니 한나 티어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 한나가 부르는 사람이 저런 모습으로 죽어 있을 리 없으므로 프랭키는 백골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태고의 섬의 조난자들은 같은 운명 속에 놓여 있었다. 인간은 죽고, 인어는 바다로 돌아간다. 그로 인해 땅과 바다의 경계는 다시금 확고해지고 인어는 인간에게서, 인간은 인어에게서 멀어진다. 그렇게 같은 운명임에도 저마다의 생각이 달랐다.
신의 참견이라면 지긋지긋해서요. 인간의 삶이자 인간의 영역입니다. 초월자께서 관여하실 바는 아니지요.
… 당신과 같은 인어들은 늘상 신의 통제 하에 있으신가 봅니다. 평생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네요.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다를 바가 없군요.
그물에 걸린 물고기. 프랭키는 빈센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어 화가 났다. 꼭 그에게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신을 마주하고도 인간들은 운명이 제 몫이라고 믿었다. 신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듯, 자신의 앞에 자유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제 존재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던 인어에게는 박탈감마저 느껴지는 태도였다.
그러니까 이제 프랭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인간들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있노라고.
눈구멍과 콧구멍을 뚫은 포댓자루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프랭키는 그게 우스웠다. 그는 바다에서 바다의 냄새를 품고 태어났고, 뭍으로 올라와서도 오래도록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마음에 품은 인간들에게서도 바다 냄새가 났다. 뱃사람들, 바다의 사람들. 그런데 이 낡은 포댓자루에서 나는 냄새가 마냥 친숙하지만은 않다.
프랭키는 포대자루를 쓰고 커다란 떡갈나무 잎사귀 앞을 서성거렸다. 저 잎사귀를 벌리면 그 안에 아틸라스를 위한 태고의 신전이 있다. 프랭키는 그곳에서 아틸라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틸라스의 음성은 무정하고도 애틋하다. 파도에 쉽게 휩쓸리는 인어는 곁에서 누가 보든 말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곁에 다른 자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마음속에 일어나는 건 슬픔이 아니다. 프랭키는 오래도록 마음 깊이 묻어둔 감정을 채굴하고 있었다. 그게 두려운 한편으로 제가 꺼낸 것을 신 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제발, 부탁인데, 같이 들어가주면 안 될까?"
프랭키는 자루를 쓴 얼굴을 뒤로 돌렸다. 조금 전부터 한 발치 떨어져 있던 인영이 어깨를 움찔거린다. 어쩌면 그 역시 두려움에 떠는 종자일지도 모르지만, 누구든 상관없었다. 프랭키는 이제 혼자라면 신물이 났다……. 정확히는, 혼자 신을 마주하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절대로. 죽을 때까지.
"솔직히 그쪽도 무섭잖아. 그렇지?"
아무 말이나 뇌까린다. 누구는 프랭키를 보고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던 적을 본 적이 드물다고 했는데,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야 신을 등 뒤에 두고 어떤 자가 제정신이 박힌 채로 살 수 있단 말인가. 프랭키는 한없이 두려웠다. 얼마나 두려우면 냄새나는 포댓자루로 신의 휘광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프랭키는…… 마음속에 일렁거리는 감정들을 애써 눌렀다.
신은 이런 마음을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