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잠 못 이루고
2021. 11. 26.

Heritage Library (후가공)

 

 

with. 파비앙 G. 코코

 

 

 

  며칠간의 숨 막히는 고요가 지나고 조난자들은 릴리와 톰, 조르조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조난자들의 숫자는 월등히 많았다. 게다가 모인 자들의 면면은 얼마나 다양한지. 누군가는 세 치 혀로, 누군가는 무기로, 누군가는 선의와 성실함으로, 누군가는 단단한 포승줄과 분노로 세 사람을 묶었다. 위치가 반전된 자리에서 조난자들은 흉흉하거나 심란한 낯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죽여! 살려! 죽이자고! 그건 옳지 않아. 대가를 치러야지! 판단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한 번 했다고 두 번은 안 할까? 모르는 일이지요. 조난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층을 쌓았다.

  프랭키는 동굴에 남아있던 백골을 떠올렸다. 그 백골 앞에서 자기가 그리운 자들을 읊조리던 이들의 목소리도 기억에 남았지만, 무엇보다 프랭키의 마음에 걸렸던 건 이곳이 아틸라스의 섬이라는 점이다. 신에게 반항한 죄로 피를 흩뿌리게 되는 인간의 육신. 이 섬은 언젠가 잔인하고 표독스러운 인어들의 감옥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불현듯 해피엔딩을 좋아하던 익명의 독자들이 생각난다.

  "이 섬에 백골을 몇이나 남기려고. 육지로 돌아가고 싶은 자가 많은 줄로 알았는데."

  프랭키는 짧게 읊조리고 뒤에 빠진다. 프랭키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인간이 아니므로 선택은 육지로 돌아갈 수 있는 자들이 해야 마땅했다. 신이 그들을 돌려보내 줄지는 미지수지만.

  조난자들이 하는 양을 관망하고 있다 보면,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눈을 하고 서 있는 인어가 있었다. "전과자가 되기에는 전 너무 어리고 착한 사람이 아닐지…. 여기서야 응징이지 섬 밖으로 나가면 살인이거든요." 파비앙 코코의 말은 다른 이들의 격렬한 표현 사이에 묻힌다. 문득 파비앙과 프랭키의 시선이 마주쳤다. 프랭키는 기다린다. 파비앙은 말한다.

  "저기요. 진실한 사랑은 뭘까요?"

 

 

 

 

 

 

  어느 새벽, 파비앙 G. 코코가 프랭키의 객실 문을 두드린다.

  "방이… 참 따뜻해 보이네요…! 제가 누울 자리 정도는 있겠죠!"

  자다 깬 프랭키는 비몽사몽한 얼굴로 문을 열었고, 파비앙은 순식간에 방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가출한 거야?" 프랭키가 문을 닫는 사이 파비앙은 어지러운 바닥의 짐을 밀어내며 제가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가출이라니요…! 집이 없는데 가출은 아니죠! 제가 깨운 건가요!" 프랭키는 바닥에 늘어져 있던 종이 뭉치들이 휘날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침대로 향했다. 일등실의 이불은 따뜻하고 베개는 두 개나 있다.

  "호른이랑 싸웠냐고요…? 저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그래도 친절하시네요!"

  "허. 정말로? 그건 의외인데… 그 사람이라면 너랑 싸울 줄 알았어."

  "호른이요? 호른은 저에게 꽤 다정한걸요."

  프랭키는 남는 이불을 가져와 소파 위에 자리를 마련하는 파비앙의 등 위에 얹어주었다.

  "'역시' 친절하다고 해줘, 파비앙.'"

  "역시 친절하시네요…! 이 친절에 힘입어서 이 방에 뿌리내리도록 노력해볼게요!"

  "어라…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그쪽이 처음이야. 조금… 설렜을지도."

  "하… 이 기회를 잡아서 결혼까지 갈까요…? 신뢰와 설렘은 결혼의 기본조건이죠."

  "제법 박력 있어…?"

  그들은 뻔뻔스러운 낯으로 헛소리하면서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 사이에 프랭키는 이불로 둘둘 말린 고치가 되었고 파비앙은 신뢰를 잃어 절절하게 잘못을 비는 연인이 되었으며 프랭키는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가 되었다가 파비앙의 공략에 넘어가 따뜻한 베개에 몸을 뉘고 다시 잠들 준비를 했다. 무슨 소리냐 하면, 그냥, 헛소리를 잔뜩 했다는 뜻이다. 프랭키는 아주 졸렸다. 파비앙의 투정 많은 연인 흉내를 내다가도 파비앙 코코에게 꽤 다정한 호른 나왈을 떠올렸고 사람 셋을 묶은 뒤 그들을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생각하기도 했다. "흑…… 당신은 진짜 바보구나." "난 당신밖에 모르는 바보야…. 자자‥ 내가 자장가도 불러줄게." 파비앙은 프랭키의 옆자리로 기어들어와 누워서는 정말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자장가는 러시아어였다. "그래… 어, 블… …슈카… 너도 자." 프랭키는 알지 못하는 언어를 어눌하게 따라 부르다가 잠들었다.

 

 

 

 

 

 

  나는 둘을 가를 수밖에 없었단다 사랑하는 육지와 해저를 모두 지키기 위하여

  사랑이 울고 있다. 아니, 바다다. 아니, 나의 신… 아틸라스다.

  프랭키의 신이 육중한 몸으로 프랭키를 짓눌렀다. 바다와 사랑의 무게에 프랭키는 어쩔 줄을 모르고 목 졸린 소리를 낸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다신 안 그럴게요…. 중얼거리다 보면 결코 돌아봐주지 않을 것 같던 신이 프랭키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프랭키. 프랭키. 프랭키.

  "프랭키 씨!!!"

  눈을 동그랗게 뜬 파비앙이 프랭키의 눈앞에 양손을 휘젓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너무 무서운 꿈을 꾸는 것 같아서요…!"

  "아, 어. 그게, 곰이 날 깔고 앉았어."

  "정말 무서운 곰이었나 봐요!"

  '깔고 앉았다'는 대목에서 파비앙이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그는 프랭키의 몸에 다리 한쪽을 올리고 잤으니 육중한 사랑의 무게는 분명 파비앙 코코의 것이다. 다행히 프랭키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프랭키는 땀을 닦는다. 어느새 토막 나는 꿈의 파편을 더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랬지. 그런데 진실한 사랑 말이야."

  "이제 답할 생각이 드세요?"

  "아니, 파비앙. 파비앙 질문이라면 언제든 답할 의향이 있지만 진실한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는걸. 뭘까? 그거."

  파비앙은 배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프랭키도 그렇게 했다.

  "제가 알면 프랭키 씨에게 물어보지 않았겠죠?"

  "그렇네…. 그래도 언제 알게 되면 알려줘. 우리한테는 그런 게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필요할까요?"

  "그건…."

  가짜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프랭키가 누군가에게 했던 질문에는 아직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프랭키는 눈을 깜빡인다. 파비앙은 곁눈질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상체를 살짝 일으켜 다시 손을 휘저어 본다. "나 안 자." 깜빡 존 게 분명한 프랭키가 두 눈을 뜬다.

  "잠이 안 오네. 다 파비앙이 그런 말을 해서~"

  "제가 뭘요??"

  "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저기서 체스판 좀 가져와줘."

  프랭키는 눈을 꿈뻑거리며 하품하고, 종이 더미를 가리킨다. 그러면 이불을 돌돌 말고 일어난 파비앙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다가 문득 소리친다.

  "안 되겠어요. 우리 이혼해요!"

  "정말로…?"

  다시금 상황극이 시작되었으나 자다 깬 프랭키는 별로 좋은 배우자가 되지 못했다. 파비앙은 종이 더미 사이에서 체스판을 끄집어내고, 프랭키는 또다시 졸다가 깬다. 그 사이 그들은 두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했다. "그냥 주무시지 그러세요." 파비앙이 말한다. "안 돼. 지금 다시 자면 곰이 날 또 깔아뭉갤거거든…." 늘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파비앙은 무릎을 쪼그려 앉는다.

  이러한 사유로 그들은 어둠 속에서 다시 불을 밝혔다. 잠 못 이루고 하는 생각들은 혼자일 때 마귀처럼 찾아들곤 하니, 둘이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프랭키는 하품하며 소파 밑으로 내려왔다.

  "체스 잘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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