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어니스트 데이
프랭키는 얼마 전 엔디미온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헛소리를 들으면 어떻게든 맞는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 엔디미온은 프랭키가 그런 자라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따지자면 프랭키는 그런 자들에게 헛소리를 하고 또 해서 말문이 막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런 자들 앞에 나서기도 싫었다. 제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왜 그 말이 자꾸 생각나느냐 하면… … 누구보다 맞는 말과 옳은 말을 하는 인간을 찾아갈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어를 탐구하고 싶어서 승선했다는 거네?"
"그런 셈이죠."
아직 그들 사이에 인어가 있다는 게 밝혀지지 않았던 때, 프랭키는 어니스트와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흠… 인어를 탐구한다는 건 이런 거겠지? 지켜보고, 교감하고, 수조에 넣어보고, 불에 지져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은 어디에 있나 굶기면 얼마나 오래 사나. 또 뭐가 있을까. 정말 인육을 먹나 줘보기도 할까?"
취소. 담소는 아니었다.
"진담이라기엔 허황하고 농담이라기엔 불쾌하군요. 공상 중에서는 몹시 진부합니다."
"때로는 현실이 꿈을 능가하지. 당신은 정말 그런 생각 안 해봤어?"
프랭키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비겁하게 윌리엄 버크 사건¹을 언급한다. 버크, 그 양반도 그랬지. 인간의 몸을 탐구한다는 목적하에 시체를 찾는 해부학자들에게 죽은 자들의 시체를 넘겼잖아. 그자가 무덤으로 초대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어. 아무도 찾지 않으니 그들이 죽든 말든 사람 손에 무자비하게 파헤쳐지든 누가 상관하겠느냔 말이야. 당신도 학자라면 알고 있겠지. 해부학 법령²이 시행된 게 바로 작년이니까. 탐구한다는 건 뜯어본다는 게 아닌가. 한 존재의 존엄성을 파훼한 뒤에야 무언가를 증명해낼 수 있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프랭키는 요점을 교묘하게 벗어나면서 학자들을 비난했다. 어니스트는 프랭키가 저를 일부러 자극한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프랭키의 이야기에는 맹점이 있었고, 감정이 실려 있었다. 프랭키 서튼이 가십을 뜯어먹는 기자라는 걸 알았다면 더 기가 찼을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니스트 데이는 불쾌감을 억누르고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온도를 유지했다. 그는 시험에 드는 게 익숙하다.
"가난한 목숨으로 증명해낸 법칙이 많다는 것은 옳은 지적입니다. 개선해야 할 사항이고요. 탐구 대상의 윤리에 관해서라면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만, 여기서 당신에게 나의 도덕적 무결성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군요. 필요하지도 않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당신은 왜 나를 시험합니까? 무슨 연유로?
어니스트는 눈으로 묻고 프랭키는 웃는 낯으로 답을 피한다.
"자네, 저쪽에서 학자를 찾는데?"
무용한 대화에서 어니스트를 해방시켜 준 것은 레베카였다. 어니스트는 레베카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 프랭키를 한 번 돌아본다. 프랭키는 자신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불쾌한 대화에 감정을 소모할 시간은 없다.
어니스트 데이가 자리를 떠나면, 레베카가 프랭키의 어깨를 툭 건드린다.
"표정이 영 아니구만. 둘이 싸웠나?"
"아니, 아무것도 아냐……. 됐어."
프랭키는 레베카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물거린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레베카를 보니 다시금 억울함이 치민다. 되는대로 말했으니 담아둘 말도 없다. 프랭키는 갈 데 없는 감정을 어찌 할 줄 모르고 허공을 향해 크게 실소했다.
가끔은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애매하게 끊거나 뭉개지 마시고.
-E. Day
어니스트가 먼저 화해를 요청한 지도 벌써 많은 시일이 지났다. 프랭키는 아직 그에게 답신을 보내거나 찾아가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으려면 애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아틸라스는 조난자들을 다시 배 위로 올렸다. 니케 호는 무너진 적 없는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영국으로 나아간다. 신은 니케 호의 조난자들에게서 희망을 봤다지만, 조난자들은 이제 자신의 해로를 재설정해야 한다.
가짜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쩌면요. 뭍에서도 가짜 사랑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정령은 불행을 운명으로 타고난 것이 되는데, 이는 온당치 않습니다. 불행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는 없으니까요. 저는 누구에게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프랭키의 미완결 이야기에 돌아온 답신 중에 가장 마음을 울린 건 생각이 많은 사람의 서신이었다. 누가 학자 아니랄까 봐. 그의 필체는 어니스트 데이의 필체와 똑 닮았다. 프랭키의 삶에서 운명이 그릇되었다고 말해준 자는 지금껏 없었다. 입 밖으로 운명에 관해 꺼내 본 적이 없어, 프랭키는 마음 깊은 곳에서 홀로 의문을 삼켰을 뿐이다. 정말? 이런 운명이 있을 수 있나? 바꿀 순 없나? 부숴버릴 순 없나?
프랭키는 어니스트 데이가 한 말을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이다. 불행을 운명으로 타고난 자는 없으며 누구에게나 길이 있다는 말을. 그 사실을 어니스트 데이에게 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엔디미온은 프랭키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본 셈이다. 프랭키는 타고나길 의문이 많았고, 이는 학자들의 가장 좋은 능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프랭키에게도 증명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단지 제 세상과 자신을 파훼할 용기가 없어 어니스트 데이에게 분풀이를 했을 뿐이다.
순풍이 배를 밀어내는 오후, 프랭키는 어니스트가 선물로 줬던 위스키를 들고 어니스트의 선실 문을 두드렸다. 햇볕이 객실 안까지 길게 들어오는 날이었다. 어니스트는 금세 문을 연다. 단정한 차림새다.
"프랭키 씨. 무슨 일이십니까?"
담담하고 부드러운 그 얼굴을 마주하자 프랭키는 낯이 홧홧해졌다. 괜히 목덜미를 긁다가 제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병을 앞으로 쑥 내민다.
"거, 선물은 고마운데 내가 술을 잘 못 해서. 같이 마실 사람이 필요한데……."
아니, 이렇게 말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프랭키는 속으로 구시렁거린다. 아무튼 사과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고 프랭키는 어니스트 데이의 앞에서 애매하게 끊거나 뭉개며 초라해질 작정이었으나……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술, 할 줄 알죠?"
¹ 1828년 영국의 윌리엄 버크(William Burke)가 해부용 시체를 판매하기 위해 길거리의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살해한 사건
² 해부학 법령(Anatomy Act of 1832), 영국, 음지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시체 거래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사형수의 시체 외에도 기증받은 시체를 해부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것.(그러나 대부분의 시신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2021
'로그 > 프랭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이 드는 방에서 (0) | 2022.02.16 |
---|---|
친애하는 조난자들에게 (0) | 2021.12.01 |
신의 발치에서 (0) | 2021.11.26 |
인어는 잠 못 이루고 (0) | 2021.11.26 |
운명 (0) | 2021.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