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도 꿈을 꾸는가
2021. 11. 26.

 

Sir Edward Coley Burne-Jones _ Grave of the Sea (1905) / 후가공

 

 

 

  1833년 8월.

 

  마리아는 담배를 태우면서 손을 분주히 움직인다. 미간은 잔뜩 찡그려 주름이 깊게 팼고, 툭하면 펜으로 자기 손을 찌르는 탓에 왼손에 검은 반점이 생겼다. 종이가 쉼 없이 넘어가고, 연약한 종이를 배려할 생각이라곤 없는 거침없는 펜 선이 직직 그어진다. 그러다 문득 제 왼손을 찌르면 마리아는 욕설을 조용히 읊조리며 종이에 큼직한 글씨를 남긴다.

  프랭키는 마리아의 맞은편에 앉아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재촉할수록 결과가 나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애써 입을 다물고 있지만, 표정과 자세는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 사람처럼 보였다. 사실 이미 사무실을 두 바퀴는 돌았다. 사무실은 잉크와 종이, 담배와 향수가 뒤섞여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냄새다.

  "다시 써 와."

  이윽고 마리아의 말이 떨어졌을 때, 프랭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이번엔 또 뭔데요?"

  "또?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너는 왜 '또' 이런 걸 가져오냐?"

  코앞까지 튀어나온 프랭키의 얼굴을 밀어 치우면서 마리아가 구시렁거렸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프랭키의 원고를 하나로 모아 돌려준다. '전부 고칠 것'이라는 글씨가 활자를 침범했다. 프랭키는 받지 않았다.

  "이런 거라니 너무하시네. 다시 읽어 봐요."

  "다시 읽어도 똑같아."

  "아니, 구체적으로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데?!"

  점점 유치해지는 프랭키의 얼굴을 보면서 마리아가 담뱃불을 끈다.

  "그럼 하나만 묻자. 주인공이 누구냐?"

  "…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저, 저 뻔뻔한 얼굴 좀 보게? 그러니까 니가 안 되는 거야!"

  "아, 내 얼굴이 또 왜?"

  마리아가 탁자를 쾅쾅 치며 흐름을 끊었다. 이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랭키 서튼, 자칭 마리아에게 붙잡힌 수전노는 수전노답지 않게 자꾸만 편집장의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마리아는 한숨을 길게 쉬며 원고 뭉치로 프랭키의 팔을 쳤다.

  "인어의 꿈을 누가 듣고 싶어 하냐. 쓰려면 좀 그럴듯하게 쓰던가. 이거 뭔…."

  마리아의 혀 차는 소리에 이제 프랭키는 대놓고 성을 부렸다. 마리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유리컵 두 개에 술을 따른다. 들어줄 생각이 없으니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담뱃재가 떨어지고 알코올 냄새가 진해질 무렵이면 결국 프랭키는 항복했다. "알겠어요. 내가 다시 쓴다!"

  프랭키는 원고를 북북 찢어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 "공쳤나 봐, 프랭키. 좀만 더 늦으면 내가 뺏어간다." 톰이 뒤에서 얄미운 소리를 하며 프랭키가 하는 짓을 구경했다―나중에 프랭키는 이 수전노 동료의 이름을 빌린다―. "미쳤냐 내가 너한테 뺏기게?" 술 두 잔에 정말로 취한 건지, 아니면 취했다고 착각이라도 한 건지. 주정뱅이 같은 목소리로 프랭키가 꽥 소리를 질렀다. "못할 건 빨리 넘기고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거지." 톰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고 멀어진다. 프랭키는 톰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

  환상소설은 네 분야가 아니잖아. 아무리 콩트라도 말이야. 나쁘게 듣지는 말고, 너는 그쪽으로 상상력이 부족해. 원래 쓰던 것도 리얼리즘과 영웅담을 반쯤 섞은…. (그거 뭣도 못 잡는다고 욕하는 거 아냐? 프랭키가 정강이를 차자 톰이 신음을 삼켰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지. 지금 이 시점에 사람들이 가장 듣고싶은 인어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마리아 씨를 만족시킬만한 가십이 무엇이겠냐고.

  인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된 날 밤이었다. 마리아는 이 놀라운 소식에 걸맞는 특집호를 준비하기로 했고, 마리아의 준비된 수전노들은 제각기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이상하게 콩트에 집착하는 프랭키를 두고 톰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할 거야? 프랭키는 막무가내로 우겼다. 아, 한다니까 내가. 이거 내 거라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가져와 실어달라고 우길 때가 아니면 프랭키가 그렇게 주장을 내세운 적은 많지 않았다. 마리아는 떨떠름하게 승낙했다.

  프랭키는 원고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마리아가 원하는 대로 써야 돈이 들어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리아는 수전노의 새 글을 만족스러워했다.

  프랭키 서튼은 며칠 뒤 짧은 편지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존경하는 편집장, 마리아 에턴필드에게.

 

호주로 여행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냐고 화를 내시겠죠. 다음에 만날 땐 내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아차. 내 자리는 원래 없었군요.― 일단 들어보세요. 왜, 전에 하셨던 이야기 기억합니까? 우리는 가십을 파는 거지 예술 하겠다는 놈들을 후원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도 이야기를 싣고 싶다면 '진짜 이야기'를 가져오라고요. 그 말에 오기가 생겼지 뭡니까. 아무래도 존경하는 편집장께서 나를 너무 달달 볶는 바람에…. 게다가 톰 그 자식도 내 이야기에 뭐가 부족하다, 부족하다고 맨날 징그럽게 얘기하고요. 그래서 말이죠. 더 늦기 전에 그놈의 진짜 이야기라는 것에 관해서 고민을 해보려고요. 마침 인어의 전설을 확인하려 혈안이 된 사람들로 온 땅이 들끓고 있으니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보렵니다.

소식이 없다면 이놈이 멀리서 잘 사는구나 생각하시고, 소식이 온다면 이놈이 무슨 이야기를 들고 돌아올까 기대해 주세요. 담배는 적당히 피우시고요.

그럼 안녕히.

 

당신의 수전노, 프랭키 서튼.

 

 

 

 

 

 

  하나의 이야기가 결말을 본 이 시점에서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즈음 프랭키는 꿈을 자주 꿨다. 바다로 돌아가거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꿈이었다. 꿈에서 프랭키는 일렁거리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다. 잔물결이 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 등골이 송연했다. 파랗고 새까만 물이 금방이라도 몸을 일으켜 전부 집어삼킬 것 같은 중압감이 느껴진다. 프랭키는 그 앞에 서서 그저 두려워하고 있다. 때로는 바다에 몸을 맡긴 적도 있다. 그다음에는 늘 꿈에서 깼기 때문에 결과는 알 수 없었다. 꿈이 반복되고, 동료들이 인어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꿈과 신과 저주를 믿는 프랭키는 어느 날 떠밀리듯 '바다를 봐야겠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그의 가슴 밑에 평생 자리 잡고 있다가 밀물과 함께 들이닥치고 썰물과 함께 빠져나가곤 하던 생각이었다. '환상소설은 네 분야가 아니잖아.' '인어의 꿈을 누가 듣고 싶어 하냐.' 동료들의 말이 힘을 보탰다. 프랭키는 인어가 되어야 했다. 그는 뭍의 사람이었으나 물에서 호흡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레이트 니케호는 운 좋게 프랭키의 눈에 들었다. 세계 최대규모의 증기 유람선. 인어에 안달 난 사람들이 타게 될 배. 결심은 충동적이었으나 계획은 확실했다. 인적이 드문 새벽, 프랭키는 사전에 약속한 시각에 몰래 배에 숨어들었다. 화물칸의 송이 프랭키를 도왔다. 프랭키는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 화물칸 안에 몸을 숨겼다. 어두운 화물칸 안에서 몸을 쪼그리고 앉아있다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으나 다른 밀항자와 숨죽여 수다를 떨면서 애써 기운을 차렸다. 다시 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항해 중인 니케호의 화물칸에서 빠져나왔다. 송은 프랭키와 다른 밀항자에게 여기서부턴 알아서 하라고 일갈했다. 그들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서로에게서 등을 돌렸다. 밀항자가 그들 외에도 더 있다는 것, 밀항을 주도한 자가 따로 있을 거라는 사실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배에 몸을 숨겨 몰래 들어온 자들이 그런 걸 궁금해해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프랭키는 탐정이 아니었다. 기자로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프랭키는 화물칸 안에서 나오자마자 머리를 모아 묶고 1등석으로 향했다. 눈에 띄는 방문을 두드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가장하고, "욕실을 쓸 수 있을까요?" 이상한 부탁을 했다. 짐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고, 옷도 한 벌 뿐이었다. 그에게서 수상한 기운을 감지하는 승객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배 위에서 보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프랭키는 초조해졌다. 그레이트 니케호는 호주로 향하고 있었으나 그의 목적지는 호주의 땅이 아니었으므로 프랭키는 종종 갑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곤 했다. 꿈에서처럼 잔물결이 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 파랗고 새까만 물이 금방이라도 몸을 일으켜 전부 집어삼킬 것 같은 밤이 종종 찾아온다. 프랭키는 그 앞에서 그저 두려워했다. 인어가 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바다는 그에게 너무 커다랗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다가 정말로 몸을 일으켰을 때, 이 겁쟁이는 순간 신이 자신에게 벌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대규모의 증기 유람선도 신의 분노 밑에서는 힘이 없었다. 프랭키는 기둥을 양팔로 붙잡아 겨우 몸을 지탱했다. 미끄러운 갑판이 기울어지면서 누군가 프랭키의 다리를 잡으려다 놓쳤다. 파도 소리가 비명을 삼킨다. 모든 목소리가 묻히는 폭풍우 속에서 프랭키는 누군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걸 보았다. 눈을 깜빡인다. 누군가의 이름을 발음하려고 했으나 입술이 떼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with. 호른 나왈

 

 

 

 

  처음 뭍으로 나왔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땅 위는 추웠다. 한 번 호흡할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폐를 얼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서는 몸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참기 어려웠다. 물기가 사라질 때마다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다. 바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참았던 건 내가 뱉은 말을 취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면 밑에서 분명 내가 다시 돌아올지 말지를 두고 내기가 벌어졌을 테니까. 바로 물에 몸을 담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다리는 정말… 정말이지 버리고 싶었다. 그 마른 몸뚱어리로 땅을 밟고 서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아틸라스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지상의 공기는 지나치게 가벼웠고, 내 몸은 그걸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낭만도 뭣도 없는 첫 경험. 나는 물을 그리워하면서 뭍으로 나아갔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는 막 태어난 인간보다도 바다를 겁내는 놈이 되었다.

  이오에게 인어의 이름으로 '텐'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감도 잡지 못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한다. 처음에 썼던 이야기는 마리아의 말대로 쓰레기였다.

  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적지 않았다.

 

 

 

 

 

 

  승객 중 몇몇이 섬광처럼 물로 뛰어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땅을 밟은 자들이 멀거니 서 있는 사이, 파도는 기다리지 않고 다시금 밀려와 물에 몸을 담근 자들을 쓸고 지나갔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인간의 다리 대신 지느러미를 펄럭이면서. 파동은 이제 뭍에 있는 자들에게로 전이된다.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물결로, 누군가에게는 격렬한 해일로. 프랭키는 숨을 헐떡였다. 바다의 이름을 떠올린다.

  탕!

  총성이 적막을 가른다. 탐욕으로 벌겋게 얼굴을 물들인 톰 웨슬리가 장총과 그물을 들고 비명을 지른다. 충격을 덮는 충격, 파동을 뒤엎는 불씨였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이곳이 인어의 섬이란 게 확실하다면, 전부 잡아가겠다!"

  총알이 날아든다. 웨슬리 옆에 있던 하인은 작살을 들었다. 물고기를 무자비하게 꿰는 육중한 작살의 이미지가 프랭키의 머릿속에 박혔다. 프랭키는 곧바로 작살을 던지는 이에게로 달려갔다. 비명과 총성, 고함으로 사방이 시끄럽게 울렸다. 작살이 허공을 가르고 누군가의 몸을 꿰뚫는 걸 보고 있는데 손이 그 망할 놈한테 닿지 않고 몸이 무너졌다. 등에 한 발. 웨슬리였다. 웨슬리의 똘마니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도망쳐 작살질을 계속했고, 총성은 그사이에도 몇 번이나 더 울렸다. 겨우 먹먹한 소음이 꺼진 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프랭키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다 곧바로 고꾸라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웨슬리가 입힌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꿈속에서 몰아치는 듯 파도 소리가 웅웅거리며 거세지고 있었다. 땅이 울리고, 모래바람이 분다. 프랭키는 직감했다. 바다가 다가오고 있다.

  거센 파도가 해안으로 쏟아지고, 높은 곳에서 온몸을 짓누르는 시선이 느껴진다. 목소리가 내리꽂힌다. 마땅히 경애하고 두려워할 존재의 목소리가…….

  "나의 자녀들아, 고개를 들라."

  온몸의 핏줄에 퍼지는 감정들은 제각기 달랐지만 단 하나는 같았다. 아틸라스의 아이들, 환상 속의 주인공과 괴물들, 축복받은 아이와 저주받은 아이, 겁쟁이, 불결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은 불가항력으로 바다의 부름에 응한다.

  나의 신, 나의 바다. 우리의 아틸라스.

  그 누가 신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바다가 바다로 돌아간 뒤 뭍에 남은 인어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프랭키 역시 그랬다. 가슴의 지느러미가 늘어졌고, 벌어진 목덜미가 기이한 감각을 안겼다. 뭍인데도 불구하고 벌어졌다 닫히기를 반복하는 아가미는 꼭 그가 숨을 헐떡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프랭키는 수치스러웠다. 신 앞에서, 인간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아틸라스의 아이는 어쩔 줄을 모르고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들, 인어들, 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세상에 아틸라스의 숨이 묻지 않은 곳은 없을 테지만, 최소한 혼자라는 착각은 할 수 있는 곳으로. 프랭키는 넓은 몸을 펄럭였지만, 곧바로 다른 자의 등에 부딪혔다. 팔을 붙잡은 손이 프랭키의 몸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도왔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저곳은 아직 위험…."

  프랭키는 저를 붙잡은 이를 내쳤다. 몸은 모래로 다시 엎어지고, 다시 팔이 몸을 붙잡고. 무용하게 느껴지는 맥 없는 다툼이 이어진다. 반은 인간, 반은 가오리인 몸은 비효율적이다. 모래사장에 엎어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반면 반은 인간, 반은 일각고래의 몸을 한 인어는 상체를 들고 상대를 붙잡는다. 누워있는 인어를 두 손으로 잡고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눈이 마주친다. 그들은 둘 다 눈이 어두웠으나 그만한 거리에서는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프랭키 서튼."

  호른의 눈동자는 여전히 새까맸으나 물이 일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고요한 얼굴, 이마에는 그의 출신을 증명하는 뿔이 자리잡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프랭키는, 상대가 호른 나왈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애틋해지고 만다. 인어를 다시 만나고 싶었으니까. 누구든 아틸라스의 부름에 굴종하고 말 존재들의 타고난 모습을 바라보고 물살을 가르고 헤엄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동시에 프랭키는 도망가고 싶었다. 마른 몸으로 땅을 딛고 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인어가 되어보려 했으나 지금 그가 노출된 것은 자의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는 폭풍우가 들이닥쳤을 때처럼 바다가 두려웠다. 아틸라스는 자신의 아이의 나약함을 꿰뚫고 있을 터다. 지금도 벌을 받는 걸지도 모른다. 프랭키는 꼴사납게 눈알을 굴리고 뭍에서 무용한 헤엄을 친다. 호른은 그런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았다.

  "뒤돌아보십쇼. 등에 총알이 박힌 채로 돌아다녀봤자 죽음밖에 부르는 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제 프랭키는 경계하는 눈동자로 호른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축축한 손이 팔을 붙잡았고 침착한 호흡이 몇 번이고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프랭키는 그래서 붙잡혀 있었다. "…화가 났어." 프랭키는 가장 쉬운 감정부터 입에 담았다. "이제야 입을 여실 마음이 드셨군요. 좀 진정은 되셨습니까?" 물살이 그들의 축축한 몸을 적시고 지나가면 호른은 그 틈을 타 프랭키의 뒤로 헤엄쳐 움직인다. 등에서 흘러나오는 파란 피가 선연하다.

  호른은 날카로운 산호를 지렛대처럼 사용해 프랭키의 등에서 총알을 뽑았다. 프랭키가 온갖 성질을 부리는 동안에도 호른은 침착했다. 가쁜 호흡에 등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상처에서 흘러나왔다. "젠장. 이걸 여기서 이렇게 쓸 줄은 몰랐는데." 호른은 인어의 눈물을 꺼낸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진주를 깨물어 잘게 조각낸 뒤, 환부에 그것을 흘려넣는다. 프랭키는 이물질이 살에 닿고 그 위를 차가운 손이 덮는 것을 느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신 살리고 있습니다."

  "아니, 내 몸에 뭘 넣은 거냐고, 지금."

  "인어의 눈물입니다."

  "뭐?"

  긴장으로 어깨를 굳히나 싶더니, 잠시 후 프랭키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곧바로 찾아오는 통각과 저를 혼내듯 등을 꾹 누르는 손에 숨을 죽인다.

  "미치겠네…. 뭐, 이제 와서 아깝게 됐다고는 안 할게."

  '그쪽도 인어였으니까.' 하지 않은 말을 들춰보듯 호른이 뒤에서는 어렴풋이 보이는 프랭키의 볼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그대로 박아 넣으려다가 봐 드린 겁니다."

  등에 가해지는 압력에 프랭키가 작게 앓는 소리를 낸다.

  "고마워…."

  프랭키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답잖게 순한 태도였다. 신의 무정한 손길이 호기를 앗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신이 진정 그들의 생존을 확증한다면, 그는 그들을, 다친 인어를 버리지 않았을 터다. 호른은 그렇게 믿었다. 지혈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으나 프랭키의 호흡은 확연히 차분해졌다. 그때마다 가슴 밑의 지느러미가 함께 벌어졌다 다물린다. 호른은 문득 그들이 인간 프랭키와 인간 호른 나왈이던 때 나누던 대화를 복기했다.

  "바다를 믿지 않으십니까?"

  같은 질문. 같지만 다른 상대. 프랭키는 항복하듯 답했다.

  "그럴 리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바다가 무섭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런데 그거 질문이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질문은 이상하게 넘기세요. 그 이상으로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편향되거든요.

  과거의 대화를 떠올리며 프랭키는 숨을 뱉는다. 프랭키 서튼은 꿈과 신과 저주를 믿고 이상한 질문을 이상하게 넘기지 못한다. 그는 꿈을 꾸지만, 신은 꿈보다 무정하고 저주는 풀리지 않는다. 프랭키는 이제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이 바다인지, 혹은 인어였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잠시 망설인 끝에 프랭키가 호른에게 물었다.

  "당신도 바다가 무서워?"

  인어의 지느러미가 부딪혔다. 그들의 등 뒤로 파도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모래를 적셨다.

 

 

 

 

 

 

누가 괴물이 무얼 두려워할지까지 생각하겠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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