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선
2021. 11. 26.

Sir Edward Coley Burne-Jones _ Meadow Sweet (1905) / 후가공

BGM: Mary Lattimore - We wave from our boats

 

 

1

 

  내가 탐정을 따라 이 배에 탔다고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 내 목적지는 그분을 따라갑니다. 뭐, 안 믿기시는 게 당연하겠죠. 하지만 돈과 이야기를 따라간다고 생각하세요! 돈! 이야기! 난 그것들을 좋아하거든요. 이건 그럴듯하죠?

  이곳엔 돈과 이야기가 많다는 게 이미 판명됐지 않습니까. …아차. 도둑질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래 봬도 그쪽으론 꽤 청렴해요.

 

 

 

 

 

 

2

 

  프랭키는 종종 뉴먼의 이름을 팔았다. 탐정님을 도우려고 따라왔죠, 조수입니다, 네, 아마 아실 거예요, 뉴먼 메릿이라고, 위대한 탐정님이시죠.

  정말로 뉴먼과 프랭키가 동행한 사이였다면 프랭키는 그레이트 니케호가 무인도에 당도한 다음 침을 뱉지 못했을 터다. 과거 탐정과 기자가 런던에서 처음 만난 곳은 살인사건 현장이었다. 프랭키는 누워있는 시체의 눈동자와 마주쳤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무례하군요. 뉴먼은 프랭키에게 망자를 예우하는 법을 다시 배우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레이트 니케 호가 조난된 직후. 해초와 모래로 덮인 시신과 바다로 떠내려간 망자들 사이에서 프랭키는 가래를 모아 뱉었다. 숨을 빼앗기기 싫은 탓이다.

  런던의 골목을 굽이쳐 들어가다 보면 돈과 자비를 구걸하는 자들이 많다. 프랭키는 언젠가 계단 앞에 앉아 돈 대신 일생일대의 조언을 주겠다고 떵떵거리는 사람 앞에 섰다. 그 자는 훗날 프랭키에게 '망할 놈'으로 기억된다. 망자와 눈이 마주치면 그들의 숨이 네 숨을 야금야금 빼앗아 가니, 망자의 숨결이 네 뱃속으로 기어 들어가기 전에 뱉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어째…. 넌 이미 숨이 명치까지 찼구나! 벼락처럼 꽂히던 마지막 한 마디에 프랭키는 화를 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했다. 죽은 놈 명예보다 내 목숨이 더 중해요, 나는. 프랭키는 뉴먼이 경멸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제가 뱉어낸 모래알의 개수를 프랭키는 세지 않는다. 신발로 그것을 뭉개고 파도에 쓸려나가게 둔다. 짜디짠 바닷물로 입안을 몇 번이나 더 헹궜다.

  프랭키를 선승객으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다. 프랭키는 선원들에겐 불청객이었고, 많은 승객에겐 무뢰한이었으며, 때로는 거지요, 주정뱅이였다. 무엇보다 그는 거짓말쟁이였다. 사람들은 프랭키를 신뢰하지 않았고, 프랭키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는 오히려 불신을 의도하는 사람 같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건 탐정과 사냥개다.

 

  인어를 찾았어! 인어를 찾았어! 인간을 찾았어! 인간을 찾았어!

 

  붉게 물든 서류를 가득 채운 건 광증에 가까운 글씨였다. 뉴먼은 창고에서 찾은 것이라며 프랭키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걸 본 순간 온몸이 차갑게 굳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디서 났지? 프랭키는 자기가 무슨 얼굴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탐정의 앞에서 말이다.

  프랭키. 인어가 중요한가요?

  뉴먼은 단서를 놓치지 않는 탐정이다.

  모르는 척해주시죠. 나한텐 추리에 도움 될 단서는 없을 테니까.

  그런 부탁은 들어줄 리 없다는 걸 알고도요.

  뭐, 그냥,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고요. 이 배에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인어 보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들.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요, 그냥.

  변명할수록 초라해졌다. 프랭키는 세련된 배우가 아니었으므로 많은 자들이 프랭키의 속내를 알아챘다. 그가 걸친 옷보다도 초라한 겁쟁이의 욕망과 감정을.

 

 

 

 

 

 

3

 

  경매장에서 인어의 진주가 매대에 오른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10, 20, 30, …550, 560, 570. 경매의 과열을 우려해 응찰가에 제한을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가격이 올랐다. 프랭키는 테티니스 스티스카의 여유로운 얼굴을, 윈프레드가 올라가는 응찰가를 감당하지 못해 자리에 앉는 모습을, 이베트와 파비앙이 출처에 관해 나누던 대화를, 시얼샤 모로우가 나지막이 턱을 괴며 흘린 말과 마지막까지 목소리를 아낀 자들의 얼굴을 눈과 귀에 담았다.

  경매품이 동이 나자 흥분으로 들썩이던 장내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흥이 식자 무료함이 몰려들면서 프랭키는 잭 클라크의 선장실을 떠올렸다. 얼마 전 선장은 모든 선원, 조난자와 차례로 독대했다. 승객이 아닌 자들까지 빠짐없이. 선장은 꼭 목표와 책임, 국가와 등대로 빚은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제법 들었음에도 단단한 몸으로 바르게 앉아서는, 질문했다. 그 질문이 프랭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목적지를 잊지 않았나?

  선장의 질문은 명료했다. 그러나 프랭키는 거짓을 능청스럽게 늘어놓으면서 선장을 기만했다. 자신은 탐정을 따라왔을 뿐이라 그분이 가는 곳이 곧 내 목적지다. 그런데 탐정은 또 사건을 쫓아다니니 그분이 호주와 지금 이 무인도 중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고르실지 궁금하긴 하다. 프랭키는 선장의 질문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레이트 니케 호는 꺾였다. 이 시점에서는 다시 물어야 한다. 그레이트 니케 호의 목적지가 호주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무인도에 고꾸라질 운명이었다면?

  선장님은 이 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배의 목적지가 어디인 것 같아요?

  프랭키의 물음에 잭은 입을 곧바로 떼지 않고 지도를 보여주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떨림 한번 없는 손가락으로 바다와 육지, 섬을 짚으면서…….

  하지만 우린 지금 여기에 있어요, 선장님. 인어의 섬에 말입니다….

  지도 위에 컵을 내려두면서 프랭키가 말했다. 잭과 프랭키의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달랐고, 선장은 지쳤으며, 프랭키는 좋은 대화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잭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프랭키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바다 위에서 일하다 보면 그와 같은 사람을 종종 만난다. 해로를 무시하고 자진해서 바다 위를 표류하는 자들. 사실 항해를 책임지고 돛을 올리고 키를 잡는 자들은 그런 이들에게 해줄 만한 게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잭 클라크는 프랭키의 뒷모습에 대고 부질없는 말을 보탰다. 만일 자네의 목적지가 바뀐다면 다시 들르게.

  몇몇 낙찰자들에게 실크 손수건이 지급되었고, 프랭키는 황동색 장식을 얻었다. "돈을 얼마나 쓴 거냐." 제가 생각해도 우스웠지만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프랭키는 그 가운데 서서 사람들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많은 사람이 인어의 진주를 가져가게 된 호른 나왈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야, 가만히 서서 뭐 해?"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엘리시아의 목소리에 프랭키는 정신을 차리고 웃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불길에 몸을 내던지는 일도 그만하구요.

  제인 셔우드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프랭키는 또다시 풍랑이 몸을 밀어줄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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