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노엘라 켈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해요. 옛날 아주 먼 옛날……. 익숙한 시작이죠?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재밌어요. 어부가 폭풍우에 휩쓸려 무인도에 도착하거든요.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지 않나요. 어쩌면 그 어부가 도착한 섬이 이곳일지도요. 어부는 인어를 만났거든요.
흥미로운걸. 더 얘기해 봐.
어부는 인어에게 매료됐답니다. 인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요! 전 사실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어째서? 여기도 본 적 없는 인어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던데.
그 글. 인어에 관한 묘사가 없거든요.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물고기. 독자가 알 수 있는 건 그 정도예요.
그러니까… 머리카락은 어떤 색인지, 비늘은 어떻게 반짝이는지, 그런 걸 썼어야 했다는 소린가?
아뇨.
그럼?
작가는 인어에게 매료되지 않았어요. 관심조차 없었죠. 왜 그렇게 웃나요?
아니, 아니야. 당신 보는 눈이 정확하구나.
칭찬으로 들을게요.
칭찬이야.
프랭키 서튼. 정말로 인어에 관심이 없나요?
글쎄,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어떤가요?
그땐 쓰고 싶지 않았어. 생각해 봐. 여기서 정말로 인어를 본 사람이 생긴다면 말이야. 영국으로 돌아가 '프랭키 서튼의 글은 순 가짜구만!'하고 혀를 차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럴 땐 말을 아끼는 게 낫거든.
설마 그걸 정말로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니죠?
모르는 일이지.
이곳은 정말 인어의 섬일까요?
내기할까? 노엘라 켈란.
조난된 3주 동안 프랭키는 노엘라와 종종 해변을 걸었다. 그가 온갖 궁상을 떠는 밤은 아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한낮이었다. 그들은 해변을 걸으면서 인어가 나올 만한 곳을 찾거나, 흔적을 뒤졌다. 한 번은 인어를 목격했다는 자의 증언을 수집한 적도 있었는데, 돌아나오면서 프랭키와 노엘라는 시간을 버렸다고 한탄했다.
인어를 찾는 건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조난자들 사이에서 인간과 인어를 분류하기라도 하는 건지, 인어와 인간을 찾았다는 말로 가득한 새빨간 서류가 발견되었다. 구조선은 오지 않았고, 그 사이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붙였다 떼면서 부대끼던 조난자들은 점점 불안을 가까운 친구로 삼았다.
프랭키는 말을 아껴야 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말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다녔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는데, 불안과 두려움이 자꾸만 그를 충동질했다. 프랭키는 거의 매일 밤 섬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숲으로, 때로는 해변으로. 누군가를 마주쳤으면 했는데 그게 누구인 줄을 몰라 살아있는 자의 인영이 보일 때마다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가끔은 숨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프랭키가 멍청한 겁쟁이라는 것.
"인어 목격 일지를 함께 작성하는 건 어떤가요?" 프랭키는 노엘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해변을 걸으면서 인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어에 대한 진실은 모른 채로 피상적인 대화가 계속되었고, 그 사이에는 글과 농담과 바다와 세상과 프랭키와 노엘라 켈란에 관한 이야기도 섞여들곤 했다. 종이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이름만 '인어 목격 일지'로 바뀌었을 뿐, 그들이 함께 보내는 일과는 무료한 시간을 서신과 술잔으로 때우는 이들과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노엘라 켈란이 프랭키라는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정도는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어느 낮, 프랭키가 이렇게 말했을 때.
"사실 난 인어를 본 적이 있어."
노엘라 켈란은 여느 때처럼 웃는 낯으로 프랭키를 보았다.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저자는 인어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생각은 미소 띤 얼굴 뒤에 안락하게 눕는다.
"정말요? 진작 말해주지 않고요. 인어는 어떻게 생겼나요?"
"내가 본 인어는……."
프랭키는 노엘라가 제 말을 믿었으면 했다. 자신이 지껄이는 거짓말을 일지에 주워 적은 뒤 그 물 흐르는 듯한 목소리로 '그럼 인어 목격 일지는 아쉽지만 여기서 끝나는군요.'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는 인어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말하고 싶었다.
최소한 프랭키 서튼의 우스운 콩트처럼 거짓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싶지는 않다. 프랭키의 미소가 삐뚤어진다.
"그건 비밀이야. 어차피 당신은 직접 보기 전까진 안 믿을 테니까."
"절 파악하셨군요."
"그럼. 이 정도는 거뜬하지."
그들은 웃으며 다시 걸었다. 모래가 사각사각 발에 밟혀 소리를 내고, 파도가 시원하게 왔다 갔다 하는 오후. 진실이 생각보다 빨리 그들의 눈앞에 당도하리라는 것을 아직 모르던 때. 비밀은 해안가의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흩어진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