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베니타 웨스터룬드
아틸라스가 인어들의 분장을 파도로 씻어내린 뒤, 프랭키는 객실 밖으로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사라진 톰 웨슬리와 조르조를 쫓는 것은 프랭키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분노했고, 그놈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아틸라스가 그를 인어로 만들기 전의 일이다. 마법이 풀린 섬을 당당히 돌아다니기에는 그는 너무 많은 말을 했고 너무 많은 먼지를 뒤집어썼다. 프랭키는 숱한 시간을 연기자로 살아왔지만, 무대가 무대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한 연기는 우스워질 뿐이다. 그래서 며칠간 프랭키는 갈 곳 잃은 분노를 제 방 안에서 풀었다. 일등실 어딘가에서는 종종 물건이 깨지는 소리나 꼴사납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더 잃을 위신이 존재한다면, 방안에 틀어박혀서도 위신을 잘 깎아 먹으며 지냈다는 뜻이다.
가끔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시간대는 주로 밤. 다른 인간이나 인어를 발견하고 못 본 척 눈을 돌리더라고 변명할 거리가 많은 시간이다. 사위는 어둡고 그는 눈이 좋지 않았다. 안경을 아예 부러뜨릴까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그건 차마 못 할 짓이라 말았다. 프랭키는 그 안경에 비싼 돈을 썼고, 제법 아끼고 있었다. 가끔 안경을 쓰지 않은 호른 나왈의 바다 같은 눈동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가 치료해준 등이 아직 욱신거린다. 이것도 좋은 변명거리다. 게다가 하나 더. 그날 프랭키는 바지를 잃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갑판 위까지 올라와 있었고, 바지는 썰물과 함께 아틸라스가 가져갔다. 신은 무정도 하시지, 입지 않을 것을 가져가시고…. 중얼거려봤자 그의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물론 이쯤에서 짚어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프랭키는 다른 옷을 가져오지 않았고, 그는 바지를 잃어버렸다. 그럼 지금 그가 무얼 입고 있느냐 하면…….
"세상에. 프랭! 그게 무슨 꼴이야!"
"아, 베니… 이거 그렇게 안 어울려?"
"아니, 아니, 위랑 아래가 따로 노는 콘셉트를 추구하고 싶었다면 괜찮아! 좋은 선택이야! 그런데 그거 맞아??"
프랭키가 차지한 이 일등실의―제인 셔우드가 알기론 일등실에 아주 잘 어울렸을―원래 주인들은 프랭키보다 몸집이 한참 작았다. 바지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고, 차선책으로 택한 분홍색 치마 역시 잘 맞지 않아 작은 수선이 필요했다―허리끈을 찢었다―. 프랭키는 그가 사랑하는 다른 옷을 버리지 않고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말해두어야겠다. 만약 웨슬리 일당을 해신 앞에 무릎 꿇렸던 그날, 다른 자들이 말 붙일 틈도 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프랭키를 붙잡고 옷을 갈아입히고 싶었을 이상한 차림새가 완성되었다는 의미다.
"맞을 리가 없지. 이 사람들 어떻게 먹고산 거야? 이거 사람 허리 맞아?"
"오, 프랭…. 이제 여기 널 구원할 사람이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도록!"
복도에 당당히 선 베니타가 연극적으로 양팔을 벌린다. 프랭키가 감격 받은 표정으로 달려든다.
"베니…!"
아틸라스가 최후통첩을 남기고도 이틀이 지나서야 프랭키는 베니타 웨스터룬드에 의해 겨우 구제되었다.
보았느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단절과 공포가 필요하지.
너희 인간의 피와 숨으로 받겠다.
또한 너희 인어들이 다시 육지에 도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베니타가 건넨 감색 바지를 입고, 베니타와 함께 인간의 다리로 땅을 밟고 거닐면서 프랭키는 내내 그의 기분을 진창에 빠트리는 신의 언어를 잊기 위해 애썼다.
"연회 이후로 처음 보지?! 그때 프랭 술 진탕 마시고 물고기 밥도 줬잖아~~ 우웨엑~ 하고!"
"아니 그건!! 잠깐, 베니… 그런 건 잊어줘도 좋잖아."
그들은 아틸라스가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은 것처럼 걷고 있었다. 신에 의해 발가벗겨진 뒤, 수치에 땅을 기고 불쾌한 감각에 몸서리치며 각자의 방으로 도망치던 날을 모르는 것처럼. 그날 서로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그런데 이게 우리 잘못인가?' 간간이 삐뚤어지는 웃음 뒤에서 프랭키는 생각한다. 그는 이 섬의 인어들의 면면을 아직 전부 알지 못했지만, 몇 명은 알았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여행 기자라든가, 춤과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 것 같은 예인이라든가, 더는 춤을 추지 못하게 된 댄서라든가, 어떤 발칙한 편지 대필가라든가, 귀족가의 불길하고 아름다운 하인이라든가, 눈앞의 파란 광인, 뮤지컬계의 거장이라든가….
"어쨌든 가보자고~!! 아! 나 저번에 뭔가에 홀렸었는데 혹시 다른 곳에 빠지면 잡아줘~~"
"홀리는 게 아니라 홀렸다고? 그거 의외인데. 뭐, 나도 같이 홀리지 않는다면 기꺼이 잡아줄게."
베니타 웨스터룬드는 가짜 콧수염을 그리고 촛대 지팡이를 든 채로 웃고 있다.
프랭키는 가벼운 먼지를 흉내 내며 웃는다.
그들의 면면을 떠올리면 운명을 신봉하는 인어, 혹은 인간은 그들의 운명이 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배우와 광대와 방랑자가 될 운명인지도 몰랐다. 함부로 정체를 들키면 지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다로 돌아가기를 약속했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다른 인어의 손을 붙잡아주지도 못했다. 평화와 단절, 그리고 공포 때문에.
그런데 그 배우와 광대와 방랑자의 껍데기를 신이 직접 벗겼다.
"앗! 그건 좀 위험한데?? 프랭이 같이 홀리지 않을지~~ 새 옷도 입었으니까 홀리지 말아봐! 그거 바지 파란색인 거 알아?!!"
"아, 알았어, 알았어."
프랭키는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올린다.
그 수염은? 언젠가 프랭키가 물었을 때 베니타는 가짜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답했다. 없으니까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그때 프랭키는 멋지다고 베니타를 추켜세웠을 터다. 적어도 지금은 프랭과 베니의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프랭키는 이제껏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신의 뜻을 따르는 동시에 배반한다. 어쩌면 베니타 역시.
베니타가 촛대 지팡이 끝으로 쿡쿡 프랭키의 허리를 찌르자 프랭키가 허리를 굽히고 엄살을 부렸다.
"나 다쳤으니까 좀 봐줘."
"뭐?? 진짜?? 어디 다쳤는데??"
"여기…."
"뭐야. 여기가 아니잖아~~!!! 놀랐네~!"
"아야. 그래도…."
한없이 가볍고 실없는 장난을, 없어도 존재하는 것들을 서로에게 묻히며 두 사람은 흙을 밟고 파도 소리에서 멀어졌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