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2021. 11. 26.

Heritage Library (후가공)

 

 

with. 메리 벨라우드

 

 

 

  "설마 지금 일어난 건 아니죠?"

  "뭐야…. 메리?"

  오래 말하지 않은 사람처럼 푹 잠긴 목소리가 문 안쪽에서 흘러나온다. 메리는 복도에 서서 눈살을 찌푸렸다. 방안이 밤처럼 어둡다. 문 앞에 선 프랭키는 차림새가 엉망이었고, 그의 등 뒤로 어렴풋이 그보다 엉망인 방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메리는 프랭키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본다. "울었어요?" "아니? 설마. 오늘은 무슨 일로?" 즉답과 함께 미묘하게 거리를 두는 질문이 돌아왔다.

  정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메리는 술에 취해 뻗은 주정뱅이인 줄도 모르고 프랭키를 일으킨 적이 있었고, 겉멋만 든 기자인 줄을 모르고 프랭키의 사인을 고른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가 제멋대로 능구렁이라는 건 알았는데, 그런 주제에 인어의 꼬리를 보인 이후로는 두문불출하더니 꼬인 심사를 홀로 풀고 있다는 것도,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다. 곧잘 열려 있곤 하던 프랭키의 방문은 언제부턴가 굳게 잠겨 있었다. 제 알 바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방문에 흘긋 시선을 주던 메리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을 들었다.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소리였다. 문 앞에는 때가 탄 손수건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 오늘, 메리는 아직도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손수건을 들고 프랭키가 머무는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외출이라도 할 요량으로 승마용 가죽 바지에 조끼까지 차려입고는 이 객실 앞에 설 줄은 몰랐지만.

  "지나가다 보여서요."

  "오늘도 여기 들를 데가 있었나 봐?"

  메리가 일등실이 아닌 이등실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아는 프랭키가 가볍게 대꾸하며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팔은 옆으로 휙, 사라졌다가 돌아온다. 보이지는 않아도 근처의 장식장이든 테이블이든 땅이든 간에 방안에 손수건을 던져둔 게 틀림없었다. 메리는 괜히 커튼을 노려봤다.

  "해가 중천에 떴어요."

  "알지, 그럼. …들어올래?"

  모르면서 뻔뻔하게 둘러대는 얼굴이란! 프랭키의 미소는 맥이 없었고, 방에서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 방으로 메리 벨라우드가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터였다. 메리의 시선을 눈치챈 프랭키가 잠시 등 뒤를 돌아봤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지. 꼴이 꼴이 아니네. 뭐, 그럼…."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요?"

  "뭐?"

  "아뇨, 됐어요. 가죠!"

  팔짱을 끼고 있던 메리가 자세를 풀고 호기롭게 선포했다.

  "어딜?"

  "갈 데가 있어요."

  "그러니까 어딜? …우리 약속한 게 있었나?"

  프랭키가 멍청한 표정으로 묻자, 이제 메리는 약간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쯤 되면 고의로 질문을 잇는 건지도 모른다.

  "있다니까요! 하여튼! 옷 갈아입고 나와요."

  "아, 알겠어~ 화내지 마."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아니, 갈아입고 나와요. 기다릴 테니까."

  "이렇게 멋진 잠옷이 어디 있다고, 메리."

  프랭키는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채우면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은―아니, 인어는― 늘 같은 셔츠를 입었던 것 같다. 떡진 머리카락, 과거에는 흰색이었을 셔츠, …모든 게 익숙한 가운데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감색 바지는 낯설었다. 방문이 다시 닫히자 메리가 프랭키를 흘겨봤다.

  "처음 보는 바지네요."

  "아, 이거… 받았어. 전에 건 잃어버려서."

  복도로 나온 프랭키의 얼굴은 더더욱 초췌해 보였다. 셔츠의 땟국물도 그만큼 더 잘 보여서, 메리의 머릿속에는 저 셔츠가 그때 그 셔츠라는 확신이 섰다. 다 떠나서 프랭키는… 제멋대로 능구렁이인 주제에 풀이 꺾여 두문불출했던 인어는 복도에서 다시 바라보니 예의 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보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래서 어디로 데려다주려고?"

  놀리는 것 같은 눈이다.

  "하! 내가요?"

  "아니야?"

  프랭키는 오늘따라 더 날카로워 보이는 메리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메리는 앞으로 피곤해질 것을 예감하고 잠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하지만 멈추는 건 잠깐이다. 메리 벨라우드는 매정하게(아마도) 고개를 돌리고 먼저 걷는다.

  "섬을 돌아볼 거예요."

  "메리, 정말 제멋대로구나…. 싫진 않아."

  "당신이 할 소리인가요?"

  "화내지 말라니까."

  "화내는 거 아니라니까요!"

  "이러다 우리 시끄럽다고 혼나겠다."

  메리가 깊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걷기 시작했으니 멈추지는 않는다. 등 뒤로 가볍고 느리고 제멋대로인 걸음이 따라붙었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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