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7년 1월, 도쿄대의 연구팀에서 최초의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을 선보였다. 우주여행은 적지 않은 금액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관광 상품보다 촉망받았으며, 화성과 유로파로 이주하는 이주민은 나날이 증가했다. 2년 전 개발에 착수한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는 유명 연구소들이 연구소 부지에 자리잡았다. 인류는 이제 세계를 지구로 호명하지 않았다. 인류의 세계는 지구로부터 태양계로, 태양계로부터 더 먼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2057년 10월 4일. 첫 로켓이 성공적인 비행을 마친 이후로 100주년, 인류가 개척한 모든 테라토리와 지구에서는 인류의 눈부신 발전을 상징하기 위해 우주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지나 콜은 그때 열일곱이었다. 건물에 걸린 커다란 홀로그램에서는 우주로 쏘아 올릴 로켓을 생중계했다. 지나는 시내에서 사람들의 카운트다운을 들었다. 5, 4, 3, 2, 1, -. 로켓이 출발한다. 화성, 지구, 유로파, 그리고 타이탄에서 동시에 출발한 로켓은 성층권을 지난다. 중간권, 열권을 지나고, 우주. 우주에 도착한 로켓들이 일제히 분리된다. 아름다운 색색의 공. 눈부신 폭발. 새까만 우주를 수놓은 불꽃놀이가 화면을 채우자 거리의 사람들이 제각기 환호성을 내질렀다. 투명해지는 홀로그램 너머로 푸른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나는 거리를 메운 열기에 감화되어 바쁘게 거리를 쏘다녔다. 여기저기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차분한 새벽이 올 때까지. 친구와 싸운 것도 잊을 정도로 멋진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씻지도 않고 잠들었고, 꿈도 꾸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붉은 햇빛이 블라인드 틈으로 길게 들어왔고, 부엌에서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부엌으로 나가자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안녕.”
작고 새까만 눈동자를 보며 지나는 그가 자신의 먼 혈육임을 깨달았다. “내 이름은 소현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소현은 의자를 가리켰다. 벽에 등을 기댄 소현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여서, 지나는 더 묻지 않고 소현이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소현의 집에 지나가 방문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전날 먹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가 테이블에 흩어져 있었고, 지나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현의 말을 들으며 지나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어서 불안했다는 걸 알았다. 소현이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 수 있었고, 자신의 예측이 맞다고 소현이 확인해줄 것이 두려웠다.
소현은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말했다.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지나에게 생채기를 낼 걸 안다는 듯이.
그러나 발음이 또렷하고 단단한 소현의 목소리는 뉴스 앵커처럼 무정하게 들렸다. 지나는 그 목소리로 엄마가 더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들었다. 언니가 또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했는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아서 걱정했노라고. 며칠 뒤 연락했더니 ID가 바뀌어 있었다고.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이 집의 비밀번호가 전송되었다고. 어딜 봐야 할 지 몰라서 싱크대를 바라보았다. 이틀째 쌓아둔 그릇과 컵, 플라스틱 용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안 들어왔니?”
“……6일 됐어요.”
“넌 왜 여기 가만히 있었니. 왜 그러고 있니.”
“자주, 있는 일이어서…….”
소현은 지나의 머리를 안았다. 그런 식의 접촉이 낯설었다.
소현은 지나가 짐을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함께 살려면 이주하는 게 좋겠다고,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너도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소현은 섬세하고 무정한 목소리로 전했다. 아니, 무정한 목소리는 아니다. 소현의 목소리를 그렇게 설명할 순 없다. 지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늘 소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섬세함과 단단함, 배려와 연민과 고집을 기억했다.
타이탄에 도착했을 때 지나는 열여덟이었다. 지나와 소현은 공장에서 일했고, 하우스메이트를 구했다. 공장에서의 일은 늘 벅차서 집에 오면 씻지 않고 잠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지나는 타이탄에 도착하고도 몇 달이 지나서야 제대로 정리했다. 작은 직사각형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학교가, 바비타가, 붉은 햇빛과 파란 노을이, 공기와 모래가, 불꽃놀이가, 그리고 엄마가 있었다. 문득 화성이 그리웠다. 처음으로 엄마가 그리웠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미워졌다. 짐을 쌀 때 엄마의 물건은 거의 없었고, 거기서 가져온 것이라곤 엄마의 목걸이 하나가 전부였다. 지나는 엄마가 자신을 작정하고 버린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목걸이를 상자 깊숙한 곳에 집어넣고 다신 꺼내지 않았다.
소현은 여린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일했지만 일이 안 풀리면 조바심을 냈고, 늘 무언가 체념한 사람처럼 굴었다. 지나를 데리고 타이탄으로 이주하면서 그는 가난한 노동자가 되었다. 그 일로 지나를 비난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지나가 사고로 팔 한쪽을 잃었을 때에는 크게 화를 냈다. 소현은 세상과 그 자신에게 화를 냈다. 세상이 거지같고 자신에게 힘이 없어서 아직 어린 아이 하나도 지켜주지 못한다며 울었다. 언니 욕을 하다가 다시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지나를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나야. 너는 네 엄마처럼 살지도 말고, 나처럼 살지도 마라. 잘 먹고 잘 살아야 돼. 나처럼 화내고 울지도 말고. 그냥 평범하게 잘 살아야 돼. 응?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소현은 엉성하고 단단한 어른이었다. 그는 어린 아이처럼 울다가도 코맹맹이 소리로 어른에겐 아이를 지킬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눈물이 많고 화내는 일도 많았지만 그 화살이 지나에게 닿은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지나는 늘 소현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산재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다고, 마치 자기가 다친 마냥 아픈 표정으로 말하는 소현에게는 미안함과 동시에 체념이 느껴졌다. 지나는 소현에게 체념을 학습하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고 여겼다. 어린 자신의 등을 안아주던 그 사람은 그때 스물여덟이었다. 소현의 나이를 지나면서, 지금까지도 지나는 종종 그가 책임지고 보호해준 제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타이탄에서 살던 시절, 지나는 이전보다 행복했지만, 이전보다 불행하기도 했다. 토성의 고리가 박힌 타이탄의 창백한 하늘은 그를 무척 외롭게 만들었다. 하늘에 박힌 고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 지나는 어린 해들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린 저 밖에서 더 잘 살 수 있어, 해들리. 같이 타이탄을 떠나자.”
성인이 되었을 때 지나는 타이탄을 떠나 지구에 정착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대학에 가고, 일을 했다. 그리고 뉴욕 나우웨어에 입사하게 된 뒤, 오래된 상자 속에서 엄마의 목걸이를 발견했다. 그는 그걸 꺼내서 목에 걸었다. 그때는 이미 엄마가 그립지 않았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