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Hadley Wood
타이탄에 공장이 들어설 무렵, 까다로운 이주 조건을 완화시켜주고 고보수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공고가 붙었다. 지나의 보호자는 일주일을 고민하다 지나에게 공고문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세달 뒤 타이탄으로 향했다. 단순 노동 분야 전반을 기계가 대체한 세계에서도 단순 노동을 하는 인간들은 존재했다. 정밀하고 강도 높은 기술을 요하며, 환경에 맞는 기계의 제작비보다 인간의 노동력을 싸게 치는 곳. 지나 콜은 그런 쥐구멍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지나는 공장부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근무를 마치고 처진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주상복합이었다. 지나와 지나의 보호자는 돈을 아끼기 위해 하우스메이트를 구했다. 고된 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든 건 여러 사람과 한집에서 부대끼는 거였다. 특히 어른들의 존재가 지나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보호자인 소현은 과도한 업무량으로 밤을 새는 일이 잦았고, 지나는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온 지나를 반기는 건 늘 해들리였다. 밥은 먹었느냐, 피곤하진 않느냐, 저녁이 남았으니 먹어라, 자신보다 앳된 얼굴의 해들리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지나의 일과였다. 가끔 지쳐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이 들면, 해들리가 지나의 양말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콜. 양말은 벗고 자요.”
지나는 그렇게 말하는 해들리의 목소리에 점차 익숙해졌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며 지켜야 할 것들을 지나는 타이탄에서 새로 배웠다. 집안일을 분담하고, 시간을 내 같이 밥을 먹고, 힘들 때는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위로를 건네는 일. 지나는 그런 것들을 아주 천천히 배웠다. 쉽게 소화되는 것도 있었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 시절 지나에겐 해들리가 있었다. 해들리는 지나가 느리게 걸으면서 많은 것을 흘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등 뒤를 좇아 걸으며 지나가 흘린 것들을 주웠다. “콜.” 해들리가 부르면 지나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해들리는 지나가 왼팔을 잃은 시절을, 안경을 쓰기 시작한 시절을, 엔지니어를 하겠다고 다짐한 시절을, 타이탄에서의 시절을 함께 보냈다. 혼자인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혼자인 청소년들은 서로를 가장 의지했다. 지나가 해들리에게 같이 지구로 떠나자고 제안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지나와 해들리는 각자 돈을 벌어 저축했다. 지나는 더 이상 쥐구멍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해들리 역시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다. 언제부턴가 타이탄은 그들에게 떠날 장소가 되었다.
지나 홀로 타이탄을 떠날 때 해들리는 ‘콜, 양말은 벗고 자요.’ 할 때와 같은 목소리로 ‘다신 만나지 맙시다.’하고 말했다. 서운함과 원망은 없었다. 그들은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만큼 혼자인 사람들이었으니까. “또 만나자.” 지나는 해들리의 등을 끌어안았다.
✳
소각실의 문이 닫힐 때 지나는 괴물의 입에서 작은 머리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잡아먹힐 거라 생각했다. 문이 닫히고,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도 그는 어둠을 보고 있었다. 쾅! 괴물의 꼬리가 안쪽에서 문을 때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캐러네이드 호는 괴물을 우주로 배출했다.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타이탄까지는 4일 이상이 걸려. 통신망은 바로 복구되는 대로 구조요청부터 보낼 테니 크게 걱정하지 마.”
타이탄. 떠나온 곳의 이름을 듣자 온 몸이 아팠다. 현실이 코앞으로 밀려와 몸을 때리고, 이제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꼴사납게 눈물이 자꾸 흘렀다.
다 끝난 걸까. 가장 큰 위협이 사라졌는데도 긴장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파일럿은 없고, 메디케어도 한 명뿐이고, 둘만 남은 엔지니어들은 손과 눈에 상해를 입었다. 사람들이 다쳤는데 물자는 부족했고, ‘감염’된 사람들의 존재는 시한폭탄처럼 캐러네이드 호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셰릴은 괴물에게 목을 졸리고 눈을 다쳤다. 의료 유닛에서 나온 뒤 그는 눈 위에 안대를 착용했다.
‘안 잃었잖아. 나 살아 있어. 아직, 멀쩡하게… … 털고 일어날 수 있어.’
‘… …당연히 무섭지. 나도 인간인데.’
지나는 안대로 가린 셰릴의 눈 위에 왼손을 올렸다. 빈자리에 환통이 느껴졌다.
지나는 해들리와 라운지에 서서 눈이 내리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충돌을 알리는 소음과 함께 함선이 한번 크게 흔들렸다. 지나는 오른손으로 해들리의 왼손을 잡았다.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가 위안이 됐다. 그렇게 손을 잡고 있자 며칠 전 그들이 무너졌던 날이 떠올랐다.
‘괜찮습니다. 늘 그렇듯이.’
‘…너는 늘 괜찮았어?’
‘… …아니. 아니요.’
흘리다 못해 바닥에 쏟아버린 것들이 너무 많았다. 분명 해들리도 그럴 텐데, 매번 맨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뒤에는 무엇이 떨어져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나는 해들리의 입에서 처음으로 괜찮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지나는 자신의 발밑의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뻥, 찌꺼기들을 우주로 배출하는 소각실의 소음이 귀에 울렸다.
소행성대에 휘말린 캐러네이드 호는 우박을 맞으며 타이탄으로 향했다. 이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나면 엔지니어는 다시 보수공작실로 향하고, 캐빈크루는 사람들에게 물과 수건과 위로를 내어줄 것이다. 해들리의 손을 잡고, 지나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흘리지 않고, 아무것도 줍지 않고, 그저 가만히… ….
창에 비친 두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졌다 빛에 드러나길 반복한다. 해들리와 지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같이 갔으면 더 좋았을 거야. …뉴욕.”
“…그렇게 들으니 기쁘네요.”
“콜.”
아득하지만 선명한 목소리. 지나 콜은 눈을 떠 해들리 우드의 얼굴을 확인한다. 해들리는 파란 담요를 지나의 어깨에 덮어주고 있다. 지나는 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견딜 수 없는 수마가 눈꺼풀을 누른다. 등을 끌어안았을 때 어깨에 기대던 얼굴과 아니,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하고 말하는 목소리.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듯 맨 뒤에서 사람들을 따라오는 모습. 자신의 뒤에 선 해들리의 얼굴.
‘콜… 괜찮아요?’ 지나는 뒤를 돌았다. 순식간에 멀어진다. 해들리의 등을 보며 지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쿵, 쿵, 쿵, 복도 전체를 울리는 소리에도 해들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신 보지 맙시다.’ 그 목소리에서 이번에 지나는 옅은 체념을 읽는다.
체념은 나의 것인가 그애의 것인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시공간 속, 지나는 발음이 뭉개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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