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 방아쇠
2024. 10. 21.

 

 

“… 자두지 그래.” 헤일이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 하품하던 파티마가 입을 가렸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그들은 어둑어둑한 도로 위를 달리는 중이다. 파티마가 무어라 답하려던 때,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두 사람의 것 전부.

파티마와 헤일의 시선이 잠깐 마주친다. 이 새벽에 두 사람에게 올 연락은 정해져 있다. “내가 볼게요. 어차피 같은 얘기일 테니까.” 파티마가 손짓하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헤일은 그래서 제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대신 라디오의 볼륨을 조절했다.

예상한 대로였다. 파티마는 특수부 전용 네트워크에 들어가 빠르게 메시지를 읽었다. 

“가야트리가 습격당했대요. 생사는 불명. 원광교 교주가 주모자로 추측. … 여기서 왜 원광교가 나와?”

“그렇군.”

헤일의 답은 간단했다.

“걱정은 안 되나 봐?”

“그 사람을 잘 아니까.”

그것으로 충분한 답이 되었다는 듯 헤일이 입을 다물었다. 파티마는 얼마 전의 가야트리를 떠올렸다. 한 손에 너클을 끼고 먼저 오라는 듯 손짓하던 가야트리의 당당한 얼굴이라든가 자길 이기는 에스퍼가 생각보다 안 나온다면서 거드름을 떨던 모습이라든가…. 정말로 가야트리를 이긴 에스퍼는 많지 않았다. 그의 실력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야트리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그래도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인데. 어디서 습격한 건지? 원광교가 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순식간에 피곤해진 파티마는 눈을 감았다. 종일 시달린 눈동자가 뻑뻑했다. 막 작전 브리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자리에는 가야트리도 있었다.

가야트리가 실종되면서 다시 소집 명령이 떨어졌으니 집에 도착한대도 눈을 붙일 시간은…. 파티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헤일의 지루한 옆모습을 응시했다.

“액셀 좀 밟아봐요.”

“….”

“밟은 거 맞아?”

헤일은 일정한 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파티마는 헤일을 흘겨보다가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BGM: Saint Motel - Bullet

Trigger

 

 

 

작전명 오퍼레이션 마아트

작전명 오퍼레이션 마아트. 대표 특수부장 가야트리 아드바니. 목표는 헤븐스게이트에 출몰한 인면괴수의 완벽한 토벌. 치안국에서는 막대한 보상금뿐만 아니라 시민권을 약속했다. 2257년 1월 15일, 26명의 선발 인원이 치안국 아웃스커트 지부에서 첫 작전회의에 참여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티마는 일이 쉽게 풀리리라고 예상했다. 에스퍼들이 토벌에 실패한 첫 케이스라곤 해도 스물여섯이다. 스물여섯의 숙련된 에스퍼들—파티마는 콰디라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가야트리의 인선을 잠시 의심했다. 이봐요, 쟨 아직 젖살도 안 빠졌어.—이 토벌에 실패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사상자가 나올 수 있겠지만, 그들의 일은 원래 그랬다.

어떻게든 괴수를 토벌한다. 그러면 끝.

— 1월 16일 오전, 브리핑 룸

가야트리 아드바니가 실종된 후 특수부장 대리를 맡은 엘레노어 덴버는 새로운 이슈를 늘어놓았다. 헤븐스게이트에 신흥종교인 원광교의 성전이 위치한다는 제보가 있다, 원광교도들이 가야트리 암살을 시도한 것 같다, 주모자는 종말의 마녀라 불리는 원광교의 교주가 유력하다.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다. 파티마는 최근 헤븐스게이트에 드나드는 유민의 숫자가 늘었다는 소문을 떠올렸다. 원광교는 유민을 중심으로 부흥하고 있는 종교였다. “아하.” 26명의 대인원을 모집한 이유에는 원광교와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계산속이 있었으리라.

“조금 당황스럽네요? 미리 말씀해주셨다면 좋을 텐데.”

“미안하지만 헤븐스게이트가 격전지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요. 작전부터 얘기하죠.”

엘레노어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사안이 시급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기 때문에 금세 사위가 조용해졌다.

스크린에는 랑그라디아 루시펠, 일명 ‘종말의 마녀’의 정보가 띄워졌다. 언뜻 드러난 사진 속의 랑그라디아는 두 다리와 오른팔을 기계로 대체했고 푸른 눈동자 역시 기계로 만든 것이었다. 저 돈을 다 어디서 났을지 궁금해졌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랑그라디아 루시펠은 사람이었다.

이런 중요한 걸 얘기하지 않았다니. 파티마는 짜증이 났다. 괴수와 싸우는 것과 인간과 싸우는 것은 다르다. 괴수와 인간이 싸울 때 그중 하나의 편을 드는 건 쉽지만, 인간과 인간이 싸우면 조금 어려워진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것에 이입한다. 파티마의 양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파티마는 치안국과 원광교의 충돌이 무엇을 야기할지 알 수 없었다. 잘 되면 반란 세력을 진압한 것이고 안 되면 애꿎은 민간인들을 억압한 것으로 보도될 것이다. 양쪽의 기사가 모두 실리겠지만, 엘레노어의 정부가 근래 보인 행보나 원광교가 부흥하는 속도를 생각하면 후자에 힘이 실릴 가능성도 있었다. ‘종교 박해’라는 문구가 추가되면 더 그럴듯하다.

옳은 선택을 내린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치며 종교며 껄끄러운 싸움에 휘말릴 생각은 없었는데. 치안국의 일부 간부들은 아직도 파티마 사이코를 하릴 무사의 사람으로 의심하는 판국이었다. 그러나 명령은 떨어졌고 파티마는 발을 담갔으면 제대로 담가야 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기사에 실릴 거라면 1면이 낫다.

엘레노어는 작전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성전을 탐색하는 인원과 인면괴수를 탐색 구역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인원. 그리고 양동작전을 펼치는 사이 남은 인원은 민간인 구출에 힘쓸 것.

파티마는 성전 탐색 팀에 자원했다.

“너도 같이해.”

옆에 있던 찬에게 눈짓하자 찬이 함께 손을 들었다. 찬 타타. 올해 9년 차 에스퍼인 찬은 파티마와 여러 번 임무를 함께 했다. 그때마다 찬은 군말 없이 파티마를 조력했는데, 일견 수동적인 찬의 성격이 파티마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파티마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 찬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찬은 긴장한 얼굴로 스크린을 보며 파티마에게나 들릴 목소리로 읊조렸다.

“누나. 랑그라디아 루시펠 씨는 왜 이러시는 걸까요….”

“만나면 물어볼래?”

“들을 수 있을까요…?”​

— 같은 날 오전, 헤븐스게이트

헤븐스게이트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태풍의 눈처럼 불길한 적막이었다. 파티마는 단층집 커튼 틈새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이송 트럭에서 내린 에스퍼들은 각자 배정받은 지역으로 떠났고 파티마의 곁에 남은 사람은 셋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던 찬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잘 해봅시다!”

세 사람이 동시에 찬을 돌아보았다. 먼저 반응한 건 미하일 타란이었다. 미하일은 정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밝게 웃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들에게 모르는 건 많이 배울게요.”

아직 어린 태가 나는 미하일은 자리에 모인 이들의 연차와 나이를 의식한 듯 싹싹하게 말을 붙였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게 풀어졌다. 찬이 미하일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오는 길에도 둘이 잡담을 나누더니 원래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선배님, 그건 나도 포함인가? 듣기는 좋네. 뭐, 나도 잘 부탁합시다~”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건 다웨이 첸이다. 다웨이는 느물거리는 모양이 속 빈 강정 같은 사람이었다. 파티마는 다웨이가 성전 탐색 작전에 자원한 이유도 분명 미인으로 소문난 랑그라디아 루시펠에게 호기심이 생겨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티마는 함께 작전을 수행할 세 사람의 전력을 머릿속으로 가늠했다. 다웨이는 실없는 사람이지만, 랑그라디아 루시펠과 닮은 점이 꽤 있었다. 왼쪽 눈이 푸른색의 기계 안구라든가 양다리를 기계로 대체했다든가. 이런 부분들은 단지 외견적 특성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잘하면 강화된 랑그라디아 루시펠의 다리를 따라잡을 추진력을 낼 수 있을 테다. 파티마는 무엇보다 그가 기계를 꽤 잘 다룬다는 것을 알았다. 공구를 휘두르는 다웨이의 전투 스타일이 오늘만큼 달갑게 느껴진 적이 없다.

미하일은 홀스터 안에 다양한 무기를 챙겼다. 보아하니 오늘은 먹거리도 잔뜩 챙긴 모양이지만. 어찌 되었든 미하일이 챙긴 무기는 꽤 쓸만해 보였다. 파티마는 스캐빈저들이 쓰는 폭약이나 단검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따져 물을 생각은 없었다. 다양한 무기를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으나 잠깐 본 미하일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들은 변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찬은 잘 알았다. 찬은 소심한 사람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앞에 나서서 팀원들을 지키는 역할을 곧잘 해냈다. 그는 에스퍼 중에서도 힘이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 찬은 파티마가 일격에 쓰러질 만한 타격을 입고도 상체 한번 굽히지 않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들은 성공할 것이다. 그래야 마땅하니까.

저쪽이 맞나? 찬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다웨이의 뒷모습을 한번 보고 파티마를 돌아보았다. 파티마는 싱긋 웃고 다웨이를 따라 걸었다.

“잘 부탁해요. 그럼 우리, 가까운 데부터 살펴볼까요.”

헤븐스게이트는 아웃스커트 변두리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건물들은 5층을 넘지 않고 주민은 500명 남짓.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곳을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였다. 치안국에서 성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해준 장소들에도 특별한 공통점은 보이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된 기차역 “이건 어디까지 연결될까?”, 텅 빈 주점 “여기 장사하기에는 입지가 안 좋네요.”, 오래된 공터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요? 일 끝나면 점심 먹죠.”, 만남의 광장 “이야, 그런데 미녀라니 데이트 신청이나 해 볼까. 나 최근에 데이트 바람 맞아서 속상하단 말이야~”…. 몇 군데나 허탕을 치다 보니 점차 긴장감이 옅어졌다. 인면괴수들과 화려하게 싸움판을 벌이는 이들의 소음이 아니었다면 헤븐스게이트가 격전지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네 사람은 미하일이 챙겨온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잠깐 쉬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누나, 이번엔 진짜 같지 않아요?”

미하일에게 이 과자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거냐고 물어보던 찬이 어느새 옆으로 따라붙었다. 폐교의 뒤뜰이었다. 처음에는 이번에도 허탕을 치려나 했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직감이라 칭한다면 누군가는 웃겠지만, 헤븐스게이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묘한 정적이 맴돌았다. “누가 왔다 갔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한 다웨이가 렌치를 고쳐 쥐었다. 그들은 뒤뜰을 샅샅이 수색했다. “여기요!” 지하로 통하는 문을 찾은 건 미하일이었다. 문을 열자 어두운 계단이 나왔고 네 사람은 대열을 맞춰 내려갔다.

계단의 끝에 한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마는 그가 혼자여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파티마는 처음에 랑그라디아가 싸우는 방식을 지켜볼 심산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랑그라디아 루시펠은 종말의 마녀라는 별칭답게 혼자서도 세 명의 에스퍼를 상대로 비등하게 싸울 줄 알았다. 랑그라디아는 빠르게 움직였고 일격이 강력했다. 파티마의 눈으로는 전부 쫓아갈 수도 없었다. 미하일이 먼저 랑그라디아의 연타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미하일이 터뜨린 폭약 연기를 뚫고 랑그라디아가 가볍게 뜀박질했다. 폭약의 화력은 랑그라디아의 기계 팔을 무력화하기에는 부족했다. “미하일!” 파티마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고 팔부터 끊어내라며 팀원들을 종용했다.

찬은 튼튼한 몸을 무기로 랑그라디아의 타격을 버텨내면서 그를 붙잡으려 애썼다. 다웨이는 틈을 노려 랑그라디아의 기계 몸체의 연결부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파티마에게는 총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 정신없이 싸우는 통에 랑그라디아를 맞추는 건 명사수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파티마는 애당초 이런 전투에 특화된 전력이 아니었다. 얘기를 나눌 틈이 있을까 했는데. 랑그라디아의 의중 같은 걸 물어볼 새는 없었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다웨이가 랑그라디아에게 찝쩍대는 목소리나 간간이 들렸을 뿐이다.

“이제라도 생각해 보는 거 어때? 데이트 말야.”

직전에 다웨이에게 복부를 걷어차인 랑그라디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내내 조용하던 찬이 입을 열었다.

“난 이런 사람 만나는 건 반대야.”

“뭘 신경 써. 금방 끝날 텐데.”

파티마는 홀 구석에 있던 쇠 봉을 가져오며 가볍게 덧붙였다. 우습게도 다웨이의 헛소리는 꽤 도움이 되었다. 랑그라디아의 상체가 고꾸라졌다. 파티마는 랑그라디아의 머리카락을 잡아채 그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고 네 사람의 몸이 엉켰다. 숨소리, 말소리, 몸과 몸이 부딪치는 소리, ….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파티마는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다웨이가 자신의 기계 다리의 엔진을 돌리는 소리였다. 찬이 팔꿈치로 랑그라디아의 상체를 눌렀고 다웨이는 랑그라디아의 무릎을 걷어찼다. 랑그라디아는 세 사람에게 둘러싸인 상태로도 찬과 다웨이의 몸을 가격했지만, 자리에서 벗어나기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기회다. 파티마는 품에서 총을 꺼냈다. 랑그라디아의 기계 팔은 이미 다웨이가 뜯어버렸고 상반신의 다른 부분은 기계가 아니었다. 다친 몸으로 총상까지 입고 움직이는 괴물은 아니겠지.

“괜찮겠어요?” 그때 랑그라디아가 입을 열었다. 처음 그들을 환영하던 때보다 거칠어진 목소리였다. 파티마는 랑그라디아의 형형한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랑그라디아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나요?” ¹

그들은 한데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그 질문은 다웨이에게 하는 것일 수도, 찬에게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라면….

그사이에도 격한 몸싸움이 이어져 랑그라디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파티마는 랑그라디아 루시펠의 눈동자가 향하는 곳을 흘긋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그가 보는 것을 여기서 볼 수는 없었다. 지금 파티마의 눈에 보이는 건 다웨이의 뺨과 찬의 어깨, 미하일의 신발끈, 뜯어진 기계 팔, 그리고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이를 앙다문 랑그라디아 루시펠의 옆얼굴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바닥 위에 가는 선을 그렸다. 파티마는 랑그라디아 루시펠이 무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아니. 당신은 해요?”

파티마는 방아쇠를 당겼다.

 

 

 

 


¹ NPC 랑그라디아 루시펠의 프로필 한마디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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