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서신
이 서신을 발견하였다면 적야의 한 무진의 제자, 단 장에게로 보내시오.
그가 없다면 서주 위정성의 향 서를 찾으시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장長.
장.
이름을 더 적은 것을 용서해라. 나는 네가 살 것이라 믿지만, 혹시 모르는 일에 대비하고 싶었다. 지금쯤 나는 땅에 묻혔을 테니 때려 줄 수 없어 얄밉긴 하겠구나. 너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네게 쓰는 열 번째 서신이야. 언제 죽을지 모르니 글을 남겨야 했거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 일기를 읽어. 죽은 놈 일기 읽는다고 아무도 뭐라 안 할 거다.
서신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열 번을 썼는데도, 아니, 실은 백 번은 썼을 텐데도 익숙하지가 않아. 여러 번 고쳐 썼거든. 마경에서 만난 사람들이 살아있는 자들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혹 내가 네게 쓴 서신을 발견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잖아. 물론 다 태웠다.
너를 따라 적야에 입문할 때만 해도 이런 것들을 상상하진 않았을 테지. 너도 잘 알잖아.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곳, 심상세계는 늘 내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고 보니 너는 빨간 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했지. 다시 생각하니 열이 뻗치네? 아냐…… 미안하다. 네게 좋은 말 한 번 하지 않는, 썩 좋지 않은 친구란 것, 알고 있어. 네가 아니라면 누가 나랑 이렇게 친구 해 주겠냐.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데 자꾸 화가 난다.
아니. 나는 두려워. 죽고 싶지 않고, 미치고 싶지 않고, 혼자이고 싶지 않다. 네가 죽거나 미쳐서 날 떠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제대로 살고 싶어. 남의 그림자나 뒤집어진 하늘이나 수상한 말에 두통을 앓지 않고, 번듯하고, 평범하게.
그래. 네가 이것을 읽을 때 하나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난 포기하지 않을 거고, 여기서 빠져나갈 거다. 너도 같이. 그러니까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웃기지만 거짓이 아냐. 체념이 아니라 각오라는 것을 기억해.
내 짐과 일기는 알아서 처분해 줘. 네가 갖거나 태우거나 나는 상관없다. 일기를 제하면 얼마 되지도 않을 거야. 그래도 고맙다. 네가 준 것들... 다른 것은 몰라도 암기 모음은 챙겨 둬. 너는 몸이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사람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 내가 이렇게 죽은 것처럼. 몸을 잘 간수하란 말이야. 알간?
너는 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났을 때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었으니까 어쩌면 많이 울 지도 모르지. 그 얼굴을 못 보는 것은 조금 아쉽네. 전에 했던 얘기 기억하냐. 네 존재 때문에 그곳에서 버텼다고. …그게 나의 진심이야.
너는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야. 나는 그곳에서 네가 살아 있을 것을 믿었고,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을 것을 믿었어. 그 믿음이 좌절되는 순간에도 하나밖에 없던 친우라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버텼어.
너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 말을 지켜. 살아남고, 극의에 다다르도록 해. 그러지 않는다면 내 영이 널 영원히 쫓아다닐 테니까. 너는 너처럼 하면 된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고 울다가도 다시 웃고 엉덩이에 뿔 달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 돼. 그러면 돼.
네게 고마워.
아주 많이 그리울 거야.
-심상세계에서, 무량霧亮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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