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전날
2021. 3. 8.

 

  아카데미아 입학 전날, 나는 산을 올랐다. 괴짜 어머니와 함께였다. 어머니와 나는 신전에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서 간식을 나눠먹기로 했다. 나는 괴짜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산책을 하는 것이 좋았다. 앉아서 쉬기 적당한 바위를 찾은 나는 그쪽으로 빠르게 걷다가 넘어졌다. 쪽팔려서 얼굴에 열이 올랐는데, 어머니가 웃고 있어서 더 열이 뻗쳤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은 가끔 우리들을 보고 그렇게 웃으면서 재밌어한다. 그때마다 나는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그러지 않은 척 연습하고 있다. 그런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건 어린애나 하는 짓이니까.

  나는 바닥을 짚고 혼자 일어났다. 괴짜 어머니가 내 쪽으로 와 손을 잡았다.

  “역시 이체는 이체구나.”

  어머니가 너무 똑똑해서 화가 난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잘 넘어졌다. 산책을 하다가 넘어지고, 달리기 놀이를 하다 넘어지고, 심지어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다가 넘어진 적도 있다. 애들은 내가 덤벙대서 그러는 거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지만 조금 억울하다. 나는 이미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니고 있는데.

  반면 괴짜 어머니는 넘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전부 그렇지만, 괴짜 어머니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어른이었다. 나는 딱 한 번 괴짜 어머니가 넘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 괴짜야...

  그때 괴짜 어머니가 내 눈을 쳐다봤다. 나는 다른 어머니처럼 괴짜 어머니를 괴짜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어머니는 어깨를 어린애처럼 씰룩이면서 웃었다.

  그때부터 나는 괴짜 어머니와 자주 만났다. 어머니는 내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줬다. 그중에 재밌는 놀이는 다시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이를테면 단어 앞에 단어를 표현하는 말을 붙여서 끝말잇기를 한다든가. 어머니와 내가 그 놀이를 할 때, 어머니는 내 이름을 가지고 시범을 보여줬다. 재밌는 이체. 놀이가 끝난 뒤 나는 답례로 어머니의 이름 앞에 괴짜를 붙여서 말해주었다.

 

 

  괴짜 어머니.

  내가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자 어머니는 어깨를 씰룩이며 웃었다.

  꼭대기예요.

  그래. 기분이 어떠니?

  숨이 조금 차요.

  괴짜 어머니와 나는 산꼭대기에 올라왔다. 유토피아 바깥으로 점점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괴짜 어머니가 나에게 특별한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했다. 괴짜 어머니와 이렇게 오랫동안 둘만 있었던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카데미아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괴짜 어머니와 나는 조금은 특별한 관계였으니까, 어머니가 나를 위해 무언가 준비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끝말잇기를 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어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자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산을 올라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괴짜 어머니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짓는 알쏭달쏭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냥 너와 산책하고 싶었어. 혹시 싫었니?

  아니에요. 싫은 건 아니에요.

  그래. 아카데미아 입학을 축하한다, 이체.

  괴짜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기 전까지 어머니의 알쏭달쏭한 웃음을 계속 생각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남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아에서 어머니의 알쏭달쏭한 웃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가르쳐줄까. 나도 아카데미아를 졸업할 때엔 어머니처럼 알쏭달쏭하게 웃을 수 있을까.

  그날 꿈에서 나는 인간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알쏭달쏭하게 웃는 파란 공작새를 보았다. 세인트의 꿈을 꾼 것이다. 알쏭달쏭하고 중요한 일이 생길 거라는 예감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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