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자
2021. 2. 24.


 



  야, 봤냐?

  어. 편의점 옆 골목에 둘.

  존나 세상이 망해도 x은 안 죽고 잘 서네.

  한 무리의 남자들이 킬킬대며 웃었다. 몰골은 더럽고 허름했으며 눈빛은 사냥을 앞둔 짐승처럼 번뜩였다. 그들은 바닥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미끈한 바닥 위에 나무나 천 따위가 타닥거리며 탔다. 과거에는 아마 카페였을 공간은 깨진 유리와 어질러진 가구들로 엉망이었다. 의자 두 개는 부서져 불을 지필 거름이 되었다. 이러다 곧 눈이라도 내리겠어. 안경을 쓴 남자가 말했다. 그럼 진짜 얼어 죽을지도 몰라. x도 어는 거 아냐? 아 그러니까 얼지 않게 잘 풀어줘야지. 옆에 앉은 남자들이 말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몸 적당히 녹이면 x도 녹이러 가자, 고 그들이 말했다.

  정하는 선우를 보았다. 선우도 정하를 보았다. …그보단 물부터 빼야겠어. 정하가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매부리코를 한 남자가 정하의 허벅지를 치며 웃었다. 야, 혼자 싸러 가는 건 아니지? 물만 잘 빼고 와라. 정하는 웃었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선우를 보았다. …나도. 같이 가자. 선우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워~ 둘이 뭐하러 가냐?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가 말하자 선우는 들고 있던 총을 한 번 들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혼자 가는 것보단 둘이 나아요. 저 새낀 꼭 혼자 저렇게 진지한 척 다 해? 선우는 대답 없이 앉아 있는 남자들 틈에서 빠져나갔다. 정하가 선우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얘 같은 애 한명쯤 있어줘야 균형이 맞죠, 형.

  …뛰어.

  정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선우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선우는 정하를 보았고 정하도 선우를 보았다. 그래도 여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망했어도 이따위 인간들 곁에 있을 순 없다. 그래선…

  주택가에서 선우는 위가 쓰리다고 말했다.

  …먹은 것도 없이 뛰니까 그래.

  벽에 기댄 선우 옆에서 정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먹을 걸 다 꺼내 손바닥에 펼친다. 초콜릿 바 2개와 사탕 5개, 당캔디 한 묶음. 선우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린대도 이보다 사정이 나았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으니 아쉽진 않았다. 그들과 함께 다닐 때도 둘의 몫은 얼마 없었으니까. 식료품은 카운터 옆에 모아두었고 선우와 정하는 그것을 나눠달라고 하긴 커녕 무리를 나가겠다는 말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둘이 무리에서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둘의 생사 같은 건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선우와 정하는 사탕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일단 식량이랑 물을 좀 구해야지.

  응.

  …여기선 더 멀어지는 게 좋겠어.

  응.

  그래도 총칼은 있어서 다행이야.

  선우와 정하는 말하면서도 틈틈이 주변을 살폈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약탈자가 될 수 있었다. 도시는 위험하다. 총을 매만지던 선우가 문득 말했다.

  …바다로 갈까.

  정하는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바다. 그 단어가 이렇게 낯설었나.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다. 정하는 곧 선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웃었다. 구겨진 이정표에는 ‘인천’이 적혀 있었다.

  그래. 바다로 가자.

 

 

 

 

 

 

 

 

  선우와 정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이름뿐인 동창으로 남은 사이가 아니라 졸업 이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둘의 집은 가까웠고, 그래서 시답잖은 문자를 남긴 후 서로의 집에 찾아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처럼 가벼운 농담을 나눴고 주로 뭘 같이 먹었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과 수박을, 겨울이면 귤과 붕어빵을. 선우와 정하는 서로의 가족, 고민,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대신 서로의 입맛이나 자는 자세를 알았다. 둘은 혼자 있는 집이 익숙한 애들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정하 집 앞 마트의 물가를 알게 되었고, 정하는 선우의 위층 사람들이 밤이면 자주 싸운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 선우는

  야 너무 많이 와서 내 집 같잖아. 어떡해.

  라고 말했고, 정하는

  새삼스럽긴. 니 집이 내 집이고 그런 거지.

  하며 웃었다.

  세상이 무너지고 며칠 뒤 둘은 만났다.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정하는 선우의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놀렸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살이 빠졌고 머리가 길었다. 선우가 있던 무리와 정하가 있던 무리는 뜻이 맞으니 함께하기로 했다. 뜻이 맞다니, 그냥 살아남는 게 전부면서 개소리는. 정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밤, 선우와 정하는 이어폰을 나눠 끼고 MP3의 배터리가 꺼질 때까지 음악을 들었다. 다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던 시대에 MP3라니. 정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선우는 웃었다. 그래도 얘는 나보다 그런 거 잘 쓰는데. 선우는 문자나 전화로 '너희 집 갈게'만을 남기기 일쑤였다. 그와 달리 정하는 SNS도 종종 했다. 인스타그램의 하트가 어떤 의미인지 선우에게 알려준 것도 정하였다. 하긴,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MP3에서는 한 밴드의 음악이 연이어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다.

  너 음악 취향이 이랬어? 좋네.

  …내 거 아냐 이거.

  정하의 손안에서 하얀색 mp3의 액정이 깜빡거렸다. 그렇구나. 선우는 그렇게 말했다. 더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그날 밤, 누군가 총을 쐈고 선우와 정하는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둘은 운명이니 뭐니 하는 말들은 낯간지럽다고 생각했지만, 하필 서로를 만난 건 대단한 우연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할까?

  선우가 퍼뜩 눈을 깜빡였다. 작은 불빛에 일렁이는 정하의 얼굴이 말을 끝내고 입을 다물었다.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토록 다행일 수가 없다. 하지만 둘은 또다시 사람이 모일만한 곳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정하가 하던 말도 그런 얘기였다. 선우는 초코바를 반만 먹고 껍질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뭘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이다.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 선우는 눈을 내리깔았다. …모든 인간이 다 죽고 나면 이곳은 더 살만한 곳이 될 텐데.

  나를 죽이는 건 너였으면 좋겠어.

  뭐?

  정하의 목소리는 당황한 것처럼 들렸다. 선우는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눈가를 찌푸렸다. 정하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 정하는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우는 슬퍼졌다. 어둠에 가려진 선우의 눈을 바라보며 정하는 말했다.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미안.

  하지만 진심이었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가자.

  선우야.

  해가 한 번 더 지고 다시 낮이 되어서야 겨우 찾은 식량이었다. 벽 뒤에서 튀어나온 아이가 가방 끝을 붙잡았다. 머리통이 선우와 정하의 허리까지 오는 작은 아이였다. 정하는 선우의 이름을 한 번 불렀지만, 곧 가방에서 손을 놓았다. 동시에 뒤로 빠르게 물러서야 했다. 가방 아래서 칼이 튀어나와 정하의 다리를 스쳤다. 아! 선우가 단말마를 내질렀고 아이는 뛰었다. 둘은 잡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저런 거 당연한 거니까, 우리가… 내가 무른 거니까. 선우는 자기가 다친 사람 같은 얼굴로 정하의 다리를 확인했다.

  괜찮아? …많이 다쳤어?

  살짝 스친 거야. 괜찮아.

  정하가 다리를 들자 찢어진 바지 사이로 피가 맺힌 게 보였다. 다행히 상처는 아주 얕았다.

  금방 나을 거야. 가자.

  정하가 선우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선우는 여전히 다친 사람 같은 얼굴로 머리칼을 정리했다.

  임마. 볼 사람도 없는데 머리는 왜 만지냐?

  아… 그런가.

  둘은 웃었고, 한 번 한숨을 쉬었고, 걸음을 옮겼다. 목이 탔는데 서로 물을 마시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은 달랑 한 모금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둘은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건물의 그림자 사이에 몸을 숨기며 계속 걸었다. 들르는 곳마다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텅 비었다. 버려진 채로 살아가는 그림자들 같아. 신은 믿지 않는데도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정도 걸었을까, 반쯤 앞서가던 정하가 속삭이듯 말했다.

  지겹다….

 

 

 

 

 

 

 

 

  바다로 들어가는 정하를 데리고 나온 건 선우였다.

  아니. 사실 누가 바다로 들어갔는지, 누가 누굴 데리고 나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하가 아니었다면 자기가 먼저 죽으려 했을지 모른다고 선우는 생각했다. 의외로 정하는 순순히 끌려 나왔다. 둘은 서로의 지친 얼굴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정하는 모래 위에 누워 기침을 했다. 입에서 짭조름한 맛이 난다. 누가, 바닷물 함부로 먹으면 안 좋다고 했는데…. 정하가 조용히 중얼거렸고 선우는 정하의 옆에 앉았다. 해변에는 한때 누군가의 소지품이었을 작은 물건들이 버려져 있었다. 마치 무덤 같은 모래사장. 파도에 떠밀려 모래가 된 자갈이나 조개껍데기처럼 그것들도 그렇게 잘게 쪼개져 모래가 될까. 그렇다면 나중에 이 해변은 이상한 모래사장이 될 거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 해변에 도착한 사람들은 그걸 알까. 그때 인간이 살아있긴 할까. 이상한 생각을 하며 선우는 파도가 춤추는 걸 바라보았다. 하얀 물건이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 정하의 MP3였다.

  너 저걸 아직도 안 버리고 있었어?

  뭐를?

  mp3….

  아… 응.

  주워올까?

  됐어. 물 먹었잖아.

  그래.

  …어디서 충전할 수 있나 해서.

  음악 꽤 좋았지.

  응. 밴드 이름이 뭐였더라? 그… K가 들어갔던 것 같은데.

  기억 안 나.

  정하가 웃음을 잘게 터뜨렸다. 선우도 웃었다.

  낚싯대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

  일단 여긴 뜨자. 바다 근처라 위험할 것 같아.

  응. 해도 졌고. …적당히 자리 잡아서 불부터 붙이자.

  응.

  자리에서 일어난 선우는 손바닥과 머리칼의 모래를 털어냈다. 온몸이 젖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선우와 정하는 물에 젖어 미끌미끌해진 껍질을 벗겨내 사탕을 먹었다. 모래를 먹어서일까 목구멍이 텁텁했다. 턱, 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등 뒤에서는 파도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바다가 부러워 순간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우리는 왜 바다를 보러 왔을까. 아무도 아무 말도 없이 얌전히 걸었다.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을 때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 같았고, 혹은 누군가의 그림자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리 묻자 그림자는 침묵했다. 대답이 없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선우와 정하는 푹 젖은 몸을 이끌고 천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끝과 끝이 겹쳐져 완전한 하나가 될 때까지. 밤이 올 때까지.

  그림자가 조용히 철썩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au 

#2018

'로그 >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사랑, 사랑!  (0) 2022.08.28
관측과 응시  (0) 2022.05.26
문은 열려 있다.  (0) 2021.10.31
I feel the same way  (0) 2021.02.26
물감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0) 2021.02.24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