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2021. 8. 2.

 

1

 

 

  하선은 자신이 큐레이터라고 말했다. "큐레이터요?" 아지지는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주 밖으로 나가기 전 하선과 아지지는 작은 말다툼을 했다. 하선은 처음부터 지금 방주 밖으로 나가는 게 시기상조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분명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아지지에게 겁을 주곤 했다. '안 좋은 일'은 실제로 벌어졌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지지는 하선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하선이 먼저 아지지를 찾아냈다. 하선은 아지지를 보자마자 달려와서는 아지지의 어깨를 때렸고, 번역되지 않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울다가, 끌어안듯이 안겼다. 아지지는 하선의 마른 등을 마주 안았다. 눈물이 다 그친 다음에는 역시 밖으로 나가는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한참 혼나야 했지만, 이번에 아지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화해했다.

  하선은 아지지가 없는 사이 게일과 듄과 주로 어울렸는데, 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꺼내는 음모론이 자신을 우울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 내용이란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방주 안의 '질서'를 잡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없어요, 하선." 아지지가 그렇게 말하자 하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쭈뼛대면서 조금 더 몸을 가까이 붙였다. "저… 전부터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지지 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아지지는 무엇이든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선은 아지지를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진 말은 다소 두서가 없었다. 방주는 너무 우울하고, 장례는 죽은 자들이 아닌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며,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추모와 애도가 필요하다고, 자신은 이런 날이 올 것을 대비하고 싶었고, 게일과 듄이 아무리 놀려도 이 계획엔 사심이 없으며, 자신은 생전엔 큐레이터였다고. 아지지는 하선의 말을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했으나 그가 일종의 장례를 준비했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하선이 이런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하선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진지했고, 죽음에 관해 말할 때의 말투는 더없이 섬세했다. "우리는 이런 얘길 잘 안 했으니까요." 머쓱하게 웃으면서 하선이 말했다.

  하선이 아지지를 데려간 곳은 지하 4층이었다. "복도에 표시를 해두려고요. 옛날 생각나네요~." 복도를 거닐면서 하선은 들뜬 얼굴로 바닥과 벽을 가리켰다. 이렇게, 저쪽으로 오시면 돼요, 화살표로 표시도 하고, 아, 노아에게 부탁하면……. 하선은 '노아'를 언급하다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노아에 대한 의심이 나날이 증폭되고 있었다. 방주의 모든 생활을 노아에게 의지하면서도 사람들은 노아에 대한 껄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지지는 자기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아지지와 하선은 한동안 침묵했다. 앞서 걷는 하선의 작은 등을 보며 아지지는 생각했다. 방 한 칸의 전시장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그 많은 사람을 방 한 칸에서 어떻게 애도할 수 있다는 건지. 아지지의 머릿속에서 큐레이터란 커다란 박물관을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애석하게도 방주의 방 한 칸과 하선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여기예요." 하선이 문을 열고 기다렸다. 들어가라며 문가에 서 있기에 아지지는 먼저 방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방이 흰 벽이었다. 자세히 보니 기껏해야 얇고 불투명한 막이 벽 위에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아지지는 순간 자신이 뭘 놓치고 있는 건지 의심했다.

  "아. 미쳤나봐. 앗… 죄송해요, 잠시만요."

  하선이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흔들어 보여서 아지지는 그것부터 보았다. 가상현실 체험관에서 쓰던 것과 비슷한 기구였다.

  "제가 이걸 씌워드릴게요."

  "그래요."

  아지지보다 작은 하선이 손을 위로 들어 기구를 씌워줬다. 대체 뭘 준비했다는 건지 궁금증이 일었으나 하선이 곧바로 비켜섰기 때문에 아지지는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만요." 하선이 방의 불을 끄고 천장 밑에 달린 프로젝터 전원을 켰다. 순식간에 눈앞이 색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더니 드넓은 공원이 펼쳐졌다. 녹음이 짙었고 하늘은 높았으며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홍색 머리카락을 높게 묶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지척에 서 있었는데, 그의 옆에는 비석이 놓여 있었다.

  아멜리에 펜델. ~2638.

  아지지는 그제야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그냥 공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공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곁에는 비석이 놓여 있다. 하선이 옆으로 다가왔다.

  "잘 보이나요?"

  "네."

  "좀 부족하지만…… 원래는 소리도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점검할 게 있어서 아직 안 넣었어요. 가까이 가면 그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이나 소리가 나오도록요. 2100년대에는 장례식에 음악을 틀기도 했다나요."

  거기서 하선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 키 크고 주근깨 많고… 아니, 아니다. 반삭했는데 초록색으로 염색한 친구가 있거든요. 몇 번 보셨을 거예요. 저랑 자주 같이 다녔는데… 한번 찾아보실래요?"

  "세이. 이름이 그랬던가요. 그 사람도…."

  "네."

  아지지는 더 말하지 않고 화면 속의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가상의 공원이었으므로 실제로 발을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아는 사람의 얼굴 앞에서는 잠깐 멈추고 싶어졌지만 가상현실 속의 몸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걷던 아지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를 찾았다. 세이는 자신의 비석 옆 벤치에 앉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이의 비석 밑에는 화려한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아지지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찾았어요."

  "앞에 꽃다발 보이시죠?"

  "네."

  "이건 세이 아이디어였거든요. 공원에 꽃 파는 가게를 만들어서 직접 꽃을 놓을 수 있게 하자! 원래 죽은 사람을 찾아갈 때는 그런 거 하잖아요. 그리고 비석도 클릭하면 옆에 문구를 추가할 수 있어요! 그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말 같은 거요. 이게… 그러니까…"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진 사람처럼 하선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아지지는 기구를 빼고 하선을 돌아보았다. "아." 아지지와 눈이 마주친 하선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 눈물을 글썽였다.

  "원래 같이 하던 거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죽을 줄 몰랐는데…"

  흔들리면서 툭툭 끊어지는 목소리를 듣자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끝이 떨렸다. 이러다가는 제가 먼저 울게 될 것 같아 아지지는 하선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 사람 모두 괜찮지 않았지만 그 말 외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2

 

 

  아지지는 하선과 함께 의자와 나머지 필요한 기구들을 옮겨왔다. 한쪽 벽면에는 가상현실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양쪽 벽면은 지금은 텅 비어 보였으나 사람들이 비석에 남긴 문구로 가득 차게 될 터다. 남은 벽면을 아지지는 하선을 도와 채웠다. "저 사실 노아가 없었으면 이런 거 못 했을 텐데… 음. 언제 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정전도 그렇고…." 하선이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그러니 하선과 세이와 다른 사람들이 노아의 도움으로 만든 이 가상의 공동묘지가 한순간에 사라지더라도 그들의 이름만은 남기자고, 하선이 말했다. 그래서 남은 벽에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쉽게 지울 수 없는 잉크로 새겼다.

  "공동묘지는 어감이 좀 그렇잖아요…"

  하선은 그곳에 '추모의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노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릴 거라고. 한참 우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하선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날 밤에는 통 잠이 오지 않았다. 방주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아지지는 보통 술을 마셨는데, 그날은 술 한 병을 다 비우기도 전에 '추모의 공원'에 갔다. 프로젝터 전원이 꺼진 방은 무척 한산하고 텅 비어 보였다. 다만 한 벽, 이름들을 새긴 벽만이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하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이 아니라 가까운 존재로 다가오는 게 충격을 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죽음이 심란해서일지도 모른다. 심란하지 않기에는 2638년의 세상이 너무 어지러웠기 때문에.

  이름을 새긴 벽의 빈 공간은 아지지를 불안에 휩싸이게 했다. 잃는 게 두렵다며 사람을 밀어내는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알렉산드르 볼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외로워야 합니까?'

  그 순간 아지지는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던 이들은 버사 힐의 죽음 뒤에 방황했으리라고. 영문도 모르고 육신도 묘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니 죽음을 추모할 방도를 몰랐으리라고. 왜냐하면 아지지 역시 비슷한 죽음 앞에서 정처 없이 방황했기에…… 그랬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그들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도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니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해일 테지만, 벽 앞에서 아지지는 조금 울었다.

  아지지는 벽에 다른 이름들을 새겼다. 지금이 아닌 아주 오래전에 죽어서 아지지를 슬프게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혹은 이제는 만날 수 없어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어떤 이름 앞에서 아지지는 잠깐 망설였다. 어떤 이름은 쓰지 않았다. 어떤 이름은 쓰고 나서 후회했다. 잘 안 지워진다는 하선의 말대로 이름은 꿈쩍도 하지 않아, 결국 아지지는 이름 위에 동그라미를 만들어 새까맣게 채웠다. 그렇게 몇 개의 이름들을 추가하고 삭제한 뒤 아지지는 캡슐로 돌아갔다. 어쩌면 하선은 방주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들을 새긴 범인이 누군지 눈치챌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지지는 그가 눈감아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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