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2022. 8. 28.

 

  우리 인간은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답니다. 우리는 쇠사슬로 묶인 채 태어나 뒤를 돌아볼 수도 없고, 오로지 동굴의 벽을 보고 살지요. 다행스럽게도 우리 뒤로는 횃불이 불타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인간을 가엾게 여긴 신께서 우리에게 불을 선사하신 덕분이지요. 신은 인간에게 불을 준 죄로 카르카소스 산 정상에 묶였으니. 쇠사슬로 묶인 우리 인간과 닮은 형벌을 받으신 셈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앞을 봅니다. 동굴의 벽에는 그림자가 비치고 있습니다.

  신의 장난!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변고 앞에서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신들은 우리를 빚고 우리가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셨으나 때때로 얄궂은 장난을 벌이곤 합니다. 우리 앞에 나타난 그림자는 우리를 무너뜨리거나 현혹하기도 하지요. 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림자밖에 볼 수 없는 운명이라 그것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무너지고, 현혹됩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할 이야기는 우리 가슴을 옥죄고 눈물로 동굴을 가득 채우게 만들며 박쥐가 놀라 달아날 정도로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그림자의 모습을 하고 우리의 뺨을 어루만집니다. 귓가에 달콤한 말을 불어넣고, 쇠사슬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게 몸을 안아 주기도 하지요. 반대로 쇠사슬을 더 꽉 조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림자는 아주 흉측한 모습으로 펄쩍펄쩍 날뛰기도 해요.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스틱스 강에 도달하기 전까지 잊기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림자에 대고 말하기도 하죠. 어찌 내가 그대를 잊을 수 있을까.

  그래요! 무릇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이라면 모두 이를 알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것으로 밥을 짓고 노래를 만들고 가족을 꾸리고 목숨을 끊고 꿈을 그립니다. 아까 신들은 얄궂은 장난을 좋아한다고 말했지요. 여기 이런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장난을 즐기는 신이 있습니다. 그 신은 우리의 꿈에 깃듭니다. 눈을 감은 우리 앞에 최상의 그림자를 빚어 사랑을 속삭이지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모습으로, 목소리로.

  좋은 게 아니냐고요? 오. 말도 마세요. 이 신은 장난꾸러기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내가 사랑한 자의 얼굴을 하고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속삭이고, 에그머니나! 저런 모습은 죽어서도 보지 않으면 좋았을걸! 싶은 짓을 일삼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난 다음 자문합니다. 이것은 내 사랑의 죄일까, 아니면 신의 장난일까?

  그 신의 이름은…… 음. 일단 '찰리'라고 합시다.

  찰리는 인간의 꿈에 사랑하는 이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신의 세계에서 그는 소리 없는 날개를 달고 나풀나풀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꿈을 빚는 구름이 늘 그 곁에 함께하기 때문에 신들도 그의 얼굴을 쉬이 알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찰리는 시와 음악의 여신들이 사는 파르나소스 산에 곧잘 방문합니다. 그곳에는 '무사이'라고 불리는 9명의 여신들이 함께 지내고 있는데, 각자 다른 예술을 담당해 노래하고 있지요. 여신들은 신과 인간에게 예술의 영감이 필요할 때 나타나 그를 돕는다 합니다. 찰리가 자주 찾는 신은 '에라토'입니다. 당연하죠! 그 신은 사랑을 노래하니까요.

  여기까지 들었으면 눈치챘을 겁니다. 네. 오늘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닙니다.









  찰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볕 잘 드는 곳을 찾아가면, 에라토는 자리에 앉아 손을 흔들었습니다. 찰리는 에라토에게 자신이 방문한 것 중 가장 재미난 꿈을 얘기하고, 그러면 에라토는 노래를 지어 들려주곤 했지요. 참. 찰리는 에라토를 '이네스'라고 불렀답니다. 이유는 모르겠군요. 우리가 신의 뜻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여튼 하루는 이네스가 별난 부탁을 했답니다.

  나도 당신의 꿈이 궁금해요!

  에? 그게 보고 싶어요? 정말?

  네!

  찰리는 수북한 제 머리카락을 긁적였지만, 금세 납득했습니다. 신들도 사랑을 하니까요. 이네스는 눈을 감았습니다. 찰리는 자신에게 허락된 꿈의 영역으로 들어 가……

  오잉.

  ……가려다가 고개를 뒤로 빼고 펄쩍 뛰었지요.

  이네스. 당신은 아직 사랑을 해본 적이 없네요?

  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파하하! 박장대소했답니다. 산이 떨어져 나가라 웃었지요. 꿈 안개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갈대처럼 마구 흔들렸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이네스는 머뭇거리며 묻다가, 곧 민망함에 얼굴을 가렸습니다.

  웃지 마요~!!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와! 우리 여신 뿔났다~~

  찰리는 공중에서 발을 구르며 웃었답니다.

  어머. 정말 찔려보고 싶어요?

  이네스는 제 뿔이 잘 보이게 고개를 들었죠. 두 신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웃고, 놀리고, 민망해하고, 웃고, 놀렸습니다. 이네스는 찰리에게 물었답니다.

  꿈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랑 받는 기분은 어떤 건가요?

  재밌죠!

  찰리가 외쳤습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얄궂은 악동 같은 신은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으로 온갖 꿈의 형상을 그리는듯하더니, 이네스의 가까이로 날아와 제안했죠.

  해볼래요? 도와줄게요!

 



  

 

 


플라톤, 『국가』 제 7권에 상술되는 동굴의 우화를 인용했습니다.

 

그로신 AU~

찰리: 모르페우스 + 큐피트 쬐끔. 꿈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신해서 나타남. 평화롭지만 얄궂은 악동

이네스: '무사이'의 에라토. 사랑시를 노래하지만 그것밖에 노래할 수 없음을 비관.

이후로 풍성님이 풀어주신 것처럼 이네스가 꿈에서 어쩌고저쩌고를 경험한 뒤... 다시 빠져나와 찰리와 대화하는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핫핫핫.......................... 뒷심이 부족하고 이러다 영영 못 끝낼 것 같아 이쯤에서 우선 멈춰 둬요 ^_ㅠ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찰리... 사랑합니다.

'로그 >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류하는 소년들  (1) 2023.12.14
미제  (0) 2022.12.01
관측과 응시  (0) 2022.05.26
문은 열려 있다.  (0) 2021.10.31
I feel the same way  (0) 2021.02.26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