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소년들
2023. 12. 14.

@COL1ABO

파란님과 합작에 참여했어요!

Proper Motion, 우주 SF 배경 합작이었습니다 ^_^

고교 동창생 친구들이라 저는 글에서도 두 친구를 동창생으로 만들어 졸업을 시켜줬어요.


 

파란님 그림

 


 

표류하는 소년들

 

 

 

00:23:00

일렬로 앉은 학생들 사이에서 윤정하가 몰래 채선우에게 문자를 보낸다.

― 너희 반은 끝나고 뭐함?

― 몰라 집에 가겠지

― 뒤풀이 좀 참여하고 그래라

― 남이사

― 아 나왔다

“졸업장 배부에 앞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채선우와 윤정하의 눈이 마주친다. 둘은 말없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박수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진다.

00:18:34

― 언제 끝나

― 제발

― 끝?

― 플래그 세우지 마라

― 그렇게 말하면 안 끝난다고

― 제발

00:07:09

“새라 아카데미 고등부 19기, 우주항해부 조종과, 졸업생 윤정하. 내용은 같습니다.”

윤정하가 의례적인 박수 소리 사이에서 졸업장을 받는다. 주머니 속에 든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자리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그사이에 문자가 꽤 쌓였다. 졸업식이 벌써 1시간 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루하긴 할 테지, 선생들은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걸 알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윤정하는 고개 숙인 아이들 사이에서 실없는 문자들을 하나씩 확인해 답한다. 단체로 초대된 대화방에는 졸업장을 받는 윤정하의 사진도 올라와 있다. 사진을 꾹 눌러 저장한 뒤 윤정하는 채선우의 문자를 확인한다.

― 제목

조금 전까지 둘은 영화관에 새로 걸린 영화에 관해서 얘기했다. 윤정하는 영화 보러 같이 영화관에 가줄 사람이 없다면서 채선우를 붙들고 한참 동안 영화의 관전 포인트에 관해서 떠들어댔다. 채선우가 제목을 궁금해하는 걸 보니 어느 정도는 먹힌 모양이다.

― 궁금하지?

― ㅇㅇ 제목

― 보러간다고?

― 알겠다고

―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 추가

― ?

― 제목 알려달라며 

영화 제목을 말해주자 채선우는 문자를 읽고 씹었다. 답장은 1분 뒤에 돌아왔다.

― 영화관왜감? ott에 들어왔는데?

― 아제발 다르다니까

― ㅅㄱ

00:00:59

― 아 진짜 언제 끝나냐

― 이제 우리 과 나가니까 곧 끝날듯

채선우의 말대로 경호과 학생이 호명되었다. 경호과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에 머지않아 졸업장 배부도 끝이 날 테다.

― 오늘은 나 뒤풀이 있음 영화관은 내일 가자

― ?

― 좋지?

― ott로 보자고

― 영화관

― 집

― 영화관

채선우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껐다. 곧 자신이 호명될 차례였다. 주머니에 넣은 휴대전화가 웅웅 울렸지만, 안 봐도 뻔했다. 윤정하가 영화관에 가자는 문자로 대화방을 도배하고 있을 테다. 걔가 아니면 연락이 올 데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채선우. 이상 4명은 앞으로 나오세요.” 채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00:00:00

굉음이 울리면서 몸이 흔들렸다. 누구는 넘어지고, 누구는 의자에 몸을 부딪치고,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다시 한번 큰 소리가 났다. 건물이 흔들렸고, 사방에서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침착하고 일렬로 서서 대피해!” 선생이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가늘게 찢어지는 소리를 냈고, 곧이어 강당의 불이 꺼졌다. 비명이 더 잘 들렸다. “뭐야?” “정전?” “무서워!” “불 켜.” “너 어디 있어?” “핸드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사방에서 불빛이 터져 나왔다. 휴대전화의 라이트 기능을 사용한 것이다.

채선우도 휴대전화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하필 일어나 있던 터라 옆에 있던 애와 부딪쳤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다리가 욱신거렸다.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문자 8통. 모두 윤정하가 보낸 것이다. 채선우는 ‘영화관’이라는 내용이 보이는 윤정하와의 대화방을 켰다.

― 야 괜찮냐? (전송 실패)

― 야 괜찮냐? (전송 실패)

― ? (전송 실패)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표시가 보였다. “야…. 너도 문자 안 돼?” 앞에 있던 애한테 물어보자 “전화도 안 돼.”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한번 굉음이 들렸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곳이었다. 무언가가 떨어지면서 땅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역시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학생들이 서로를 밀면서 앞다투어 강당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 불빛이 가득했는데도 앞을 분간하는 게 어려웠다. 시야가 아주 어두웠다가 아주 눈부시게 번쩍거리길 반복해서 채선우는 눈을 연신 깜빡였다.

“서로 밀지 말고 조심해서 따라와!”

앞쪽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는 모든 애들처럼 채선우는 그 목소리 하나에 의지해서 앞으로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가 뛰고 싶었을 텐데, 서로 몸이 부대껴서 그게 잘 안됐다. 중간중간 넘어지는 애들도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창이 있는 복도로 진입한 것이다.

이상한 일이긴 했다. 지금은 자연광이 들어올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은 창밖을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채선우도 곧 이유를 알게 됐다. 커다란 바위… 아니, 저런 걸 운석이라고 한다고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배웠다. 체육관 건물이 있던 곳에 집채만 한 운석이 떨어져 있었다. 건물은 짓뭉개져 불타고 있다. 창가에 선 아이들의 얼굴에 붉은빛이 반사되어 일렁거렸다. 하늘로 고개를 올리자 별똥별 비슷한 것들이 보였다. 다시 굉음이 들린다.

저건 맞으면 죽는다.

아이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채선우는 다리의 통증을 겨우 참아내면서 무리에 섞였다. 얼굴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밀치며 지나갔다. 지워지지 않는 핸드폰 알림을 보면서 채선우는 문득 윤정하를 생각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들 속에서 윤정하의 얼굴을 찾아내려다 포기했다.

*

윤정하네 집에는 DVD가 많았다. DVD는 영화나 드라마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매체다. 모니터에 연결한 전용 플레이어에 DVD를 넣으면 영상이 재생되었다. 채선우는 윤정하의 집에서 DVD를 처음 보았다. 인터넷이 아닌 휴대용 기록 매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들었지만, 영화를 담기 위한 둥근 판은 정말이지 쓸모가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윤정하가 DVD를 수집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채선우가 물어봤을 때 윤정하는 ‘자기만의 것’이 생긴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건 조금 모순적인 얘기였는데, 윤정하의 DVD는 대부분 어머니가 사준 것이기 때문이다. DVD는 일반적인 경로로는 구할 수도 없는 고가의 골동품이었다.

윤정하는 ‘그린 유니버스’ CEO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었다. 방송을 통 안 보는 채선우도 윤정하를 만나기 전 그 애를 방송에서 먼저 봤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화목한 3인 가정의 일상을 한 조각 담아낸 방송이었다. 그들 가족은 전 우주에서 가장 깨끗한 것으로 알려진 ‘지구’의 과거의 삶을 모방했다. 지구는 모든 우주인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지금도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소수의 축복받은 케이스였다. 대부분의 우주인은 행성을 옮겨가며 살았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행성을 찾는 건 어렵고 그마저도 자원이 동이 나기에 십상인 시대. 풍부한 자원과 다채로운 날씨, 인간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지닌 ‘지구’는 만인의 동경 대상이었다. 그린 유니버스의 CEO는 그런 지구의 이미지를 자주 마케팅에 사용했다. 우주 쓰레기 청소와 환경 개발 연구를 주 사업으로 밀고 있는 기업이니 당연한 일이라면 당연했다.

윤정하와 채선우가 사는 행성, ‘새라’는 그린 유니버스 기업과 다른 기업들이 손을 잡고 만든 최초의 인공 행성이다. 행성의 주된 사업 역시 그린 유니버스와 마찬가지로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 윤정하는 새라 행성에서 가장 좋은 환경을 타고난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윤정하는 아카데미 고등부에 올라와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우주항해부 조종과에 배정받았고, 사람들은 윤정하가 당연히 졸업 후에 그린 유니버스로 들어가리라 예상했다.

“난 거기 안 가지.”

윤정하는 채선우에게만 자신은 그린 유니버스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애들이 회사와 관련된 걸 물어볼 때는 능청스럽게 웃고 넘기는 편이었다. 다른 애들한테 말하면 재수 없다고 욕먹을 것 같다나 뭐라나. 윤정하는 친구가 많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자기 친구들한테 중요한 말을 아끼는 모양이었다. 채선우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편이었고, 아버지의 회사가 언급될 때마다 윤정하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윤정하는 아마도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다.

“뭐 달리 하고 싶은 게 있냐?”

채선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글쎄. 영화?”

“그게 되겠냐…. 여기 새라인데. 영화 쪽은 아예 없잖냐.”

“알아 나도. 그냥 하는 말이지.”

윤정하가 소파에 드러누우면서 툴툴거렸다.

“그래 너도 고생이 많다….”

눈치를 보는지 채선우의 말투가 어색해졌다. 윤정하는 결국 피식 웃으면서 채선우의 옆구리를 발로 밀었다.

“아 왜 차는데.”

채선우도 윤정하를 밀쳤다. 둘은 윤정하의 집에서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윤정하는 부모님께 허락받았다면서 고등부에 진학한 뒤부터 혼자 살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사는 집에 친구들을 자주 불렀다. 언젠가부터 채선우도 윤정하의 집에 자주 놀러 왔는데, 둘이 놀 때는 대부분 영화를 봤다. 윤정하의 DVD는 채선우도 이미 다 봐서 가끔 윤정하가 새것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면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곤 했다. 윤정하가 9번은 돌려보고 채선우도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돌려보면서 둘은 팝콘을 먹었다.

“근데 두 번 봐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왜 갑자기 우는 거냐?”

“그것도 모르냐 채선우.”

“아 좀 알려주면 덧나냐고.”

“없던 손수건이 생겼잖아. 아마 이별 선물로 전 애인이 준 거겠지.”

“그런 장면이 어디 나오는데.”

“생략의 미학이라는 거다.”

“돌려본다.”

“그래.”

채선우는 영화를 앞으로 당겼다.

*

00:00:00

굉음이 울리면서 몸이 흔들렸다. 누구는 넘어지고, 누구는 의자에 몸을 부딪치고,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연이은 굉음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커다란 소리였다. 사방에서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침착하고 일렬로 서서 대피해!” 선생이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가늘게 찢어지는 소리를 냈고, 곧이어 강당의 불이 꺼졌다. 비명이 더 잘 들렸다. “뭐야?” “정전?” “무서워!” “불 켜.” “너 어디 있어?” “핸드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사방에서 불빛이 터져 나왔다. 휴대전화의 라이트 기능을 사용한 것이다.

윤정하도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야, 톡 안 돼.” “전화도.” “미친 무슨 일이냐?” 윤정하는 옆에 있던 애들과 수군거렸다. 다시 한번 굉음이 들렸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곳이었다. 무언가가 떨어지면서 땅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역시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학생들이 서로를 밀면서 앞다투어 강당 밖으로 나갔다. 자리가 바깥과 가까워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하야. 잘 됐다. 이리 와.”

아이들을 통솔하던 선생님이 윤정하의 바로 옆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복도의 창밖으로 집채만 한 운석이 체육관을 짓뭉갠 게 보였다. 그 자리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이쪽에 가연성 쓰레기가 없어서 다행이다…. 윤정하는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학교가 지어진 자리는 쓰레기가 없는 구역이라고, 쓰레기 처리 시설은 행성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모두가 배웠다. 그 부근으로 실습을 나간 적도 많았다. 남쪽은 연구소가 있는 방향이기도 했다. 그럼, 그럼 전부 어떻게 됐을까? 아니, 쓰레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저 운석이 당장 머리 위로 떨어지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윤정하는 뛰듯이 걸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우리?”

“밖으로 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밖이요?”

‘밖’이라는 건 행성 바깥을 의미했다. 공포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아이들이 선생을 붙잡고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문득 윤정하는 채선우가 어디쯤 있을지 생각했다. 걔는 오래 뛰면 뒤처지는 거 아닌가? 자세한 건 모르지만, 중등부 때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휴대전화의 문자 대화방을 열면 최상단에 자신이 채선우에게 보낸 문자가 있었다. 걱정되는 애들이 한둘은 아니지만, 먼저 떠오른 얼굴이 채선우라니. 새삼스럽게 윤정하는 자신이 채선우와 제법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행성 ‘새라’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행성입니다. ‘새라’는 순우리말로 ‘새롭다’를 의미하지요. 우주 난민 시대, 우주 쓰레기를 줄이고 살기 좋은 우주를 만들기 위해 ‘새라’가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이 만든, 인간을 위한 행성. ‘새라’ 행성은 안정적인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여러분은 이곳에서 난민이 아니라 새 시대를 여는 시민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새라 아카데미는 자라나는 새싹들을 육성하기 위한 최고의 학업 기관입니다. 새라 아카데미의 많은 졸업생은 그린 유니버스에 취직할 기회를 얻으며, 우주를 이롭게 만드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는 그린 유니버스의 부서 구성을 참고하여 학생들이 학창 시절부터 업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새라 아카데미의 고등부에 진학한 여러분은 중등부 생활 평가와 적성검사, 그리고 세밀한 테스트를 걸쳐 학급을 배정받게 됩니다. 먼저 생활전략부에는….

새라 아카데미의 고등부 건물. 커다란 전광판에서 새라 아카데미의 홍보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다. 정문을 통해 들어오면 곧바로 나오는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이었다. 선생들의 말에 의하면 ‘전기료 아까워서’ 평소에는 꺼두는 날이 많던 전광판이 오늘만큼은 쉴 새 없이 반짝거렸다. 영상은 행성과 아카데미의 유래, 아카데미 고등부과 중등부와 다른 점부터 시작해서 아카데미에 투자하는 그린 유니버스 기업의 홍보를 슬그머니 끼워 넣은 내용이었다.

“광고 엄청 때리네. 오늘 중등부 애들 견학 온다고 했지?”

“어. 근데 쓸모 있냐? 중딩 때도 졸라 들었던 것 같은데.”

“졸업생들한테 회사 어필도 하는 거지. 들어오라고.”

윤정하가 전광판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평소보다 묘하게 날이 선 말투였다.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던 채선우가 윤정하의 눈치를 살폈다.

“어어…. 뭐, 안 해도 많이들 들어갈 것 같긴 한데.”

“그렇겠지. 야, 선우. 너 아이스크림 몇 개째냐?”

“두 개.”

“빨리 먹어. 당장 다 먹어.”

“다 먹었거든.”

채선우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가 시린지 인상을 쓰는 채선우를 두고 윤정하가 먼저 1층 뒷문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양손에 긴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었다. 오늘 할 일은 교정의 쓰레기를 줍는 것이었다. 채선우가 조금 전까지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 바가 쓰레기봉투로 쏙 들어갔다. 뒷문으로 나가자 뒤뜰에 모여 있던 애들 중 몇몇이 지나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대부분은 윤정하를 아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채선우는 말없이 쓰레기를 줍는 데 열중했다. 뒤뜰은 특히 점심시간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소다. 그건 쓰레기들도 좋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야. 다 했으면 저쪽으로 가자.”

“그래. 나 간다~ 쓰레기 버리지 마라.”

윤정하는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채선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혼자서 애들이랑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건지, 윤정하의 표정이 이상했다. 꼭 장난을 치려고 벼르는 표정이다.

“야. 진아가 너 번호 알려달래. 조종과에 나랑 작년에 같은 반.”

“뭐?”

무표정하던 채선우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너 낯가린다고 둘러두긴 했는데, 관심 있으면 번호 주고.”

“아… 아니, 됐어. 무슨…. 난 걔 누군지도 모르는데….”

“오…. 채선우 잘나가네.”

채선우의 숫기 없는 반응을 보고 윤정하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채선우가 윤정하의 옆구리를 친다.

“악.”

“그만하지.”

윤정하의 놀림은 건물을 한 바퀴 빙 돌 때에서야 멈췄다. 두 사람은 운동장 앞 벤치에 앉았다. 채선우의 다음 수업이 체육이었기 때문이다. 윤정하와 채선우는 같은 반이었지만, 윤정하가 우주항해부 조종과, 채선우가 특수학부 경호과로 수업이 판이하였다. 졸업을 앞둔 3학년들은 서로 다른 과 학생들이 섞인 반을 배정받는 게 새라 아카데미의 전통이었다. 이 기회에 사회에 나가기 전 다른 학과생들과 교류하라는 취지라나. 3학년이 되면 각자 실습을 나가느라 반을 자주 비워서 유명무실한 통합반이었다. 그래도 윤정하와 채선우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곧잘 붙어 다녔다. 쓰레기를 줍는 교내 봉사활동도 둘이 시간을 맞춰 신청한 것이었다. 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던 사이였던 게 빠르게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야 곧 수업 종 친다.”

“어 그래. 심심하면 문자 해라.”

윤정하는 손을 흔들고 일어났다. 채선우와 같은 경호과 학생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모이는 게 보였다. 채선우는 체육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벤치에 앉았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같은 반 애가 윤정하의 옆으로 다가왔다. 1학년 때부터 죽 같은 반이었던 조종과 학생이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채선우랑은 어떻게 친해졌냐?”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하긴 둘은 한눈에 봤을 때 잘 어울리는 친구는 아니었다. 윤정하나 채선우는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받았고,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답했다.

“그냥 어쩌다?”

“기억도 못 하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물어본 애도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었는지 화제를 돌렸다.

체육 시간에 자주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 쉬는 시간이면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애. 소리소문없이 학교에 왔다 가는 애. 채선우는 그런 아이였다. 윤정하와는 부서도 반도 달랐기 때문에 중등부의 윤정하는 ‘채선우’라는 이름을 기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가 게임을 같이 했고 어쩌다가 매점을 같이 갔고 어쩌다가 마주쳐서 수다를 떨었고 어쩌다가 같은 반이 되었고 어쩌다가 친구가 되었다. 특별한 계기라든가 운명 같은 게 없어도 학교에서의 친구는 그런 식으로 생겼다가 사라졌다 했다. 그러니 채선우와 친해진 계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조금 의외인 게 있다면 채선우와 정말로… 그러니까 집안 사정을 조금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는 데에 있었다. 윤정하는 친구가 많았지만 집안 사정을 공유할만한 친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건 학교의 모든 애들이 윤정하의 부모의 직업을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얘기였다. 졸업을 앞둔 윤정하는 연락처의 누구와 앞으로 연락하며 지내게 될지 가늠해봤다. 당연하게도 채선우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야, 그….”

윤정하의 집에서 영화를 보던 채선우가 어색하게 운을 뗐다. 손수건을 손에 쥐고 엉엉 울던 비운의 청년이 새 연인을 만나게 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이었다.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뭐… 정 영화를 하고 싶으면 다른 행성에 자리를 알아봐도 되는 거고…. 어렵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있잖냐. 넌 그래도 뭘 해도 잘할 것 같다.”

아마 영화 러닝타임 내내 무슨 말을 해줄지 고민한 모양이었다.

“나 감동할 타이밍?”

“넌 말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맙다.”

채선우가 목덜미를 문지르면서 민망해했다. 윤정하도 조금 멋쩍었지만 고마운 건 진심이었다. 채선우와 윤정하는 둘 다 자기 얘기를 아끼는 편이었다. 윤정하는 채선우가 다리 부상으로 오랜 시간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채선우 역시 윤정하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때때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 또래 애들이 자주 그러듯이 장난스럽게, 소심하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서.

“너도 고민 있으면 말해라.”

“그래….”

둘은 민망한 분위기를 지워내기 위해 새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일 졸업식 끝나면 뭐 하냐?”

*

윤정하와 채선우는 우주선에서 마주쳤다.

아카데미에 몇 대 안 남은 실습용 우주선은 대피를 위해 탑승한 교사와 학생들로 꽉 들어찼다. “야 여기!” 윤정하는 채선우를 보자마자 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졸업장을 들고 왔다는 건 그때 알았다. 살아남은 건 다행인데 불 밝힌 우주선 아래에서 보니 오늘이 졸업식은 졸업식이구나 싶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애도 있었다. 채선우는 모조 헬멧을 들고 있었는데, 졸업 기념으로 전 학생이 하나씩 받은 것이었다. 경호과 애들은 웬만하면 쓸 일도 없는 걸 나눠주다니 이거 어디다 장식하냐고 채선우가 툴툴댔다. 윤정하는 장식은 자기가 해주겠다면서 채선우의 헬멧이 낙서를 제대로 해줬다. 채선우는 낙서가 그대로 남은 헬멧을 자기 옆구리에 끼고 윤정하에게 다가왔다.

“봤냐?”

“어.”

살아서 다행이라든가 걱정했다든가 하는 말은 새삼스럽게 필요하지 않았다.

윤정하와 채선우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전면 창 밖으로 새까만 우주가 보인다. 옆에는 다른 애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 동글동글한 게 펑! 펑! 팝콘처럼 터지고 있다. 그건 바로 몇 분 전까지 그들이 살았던 행성이었다. 전면 창이 영화관의 스크린이라면, 지금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고 모든 관객이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 테다. 졸업식을 맞이한 학생들에게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야…. 저거 쓰레기는 다 어떻게 하냐. 너 어떻게 못해?”

채선우가 정적을 참지 못하고 윤정하에게 물었다. 주변에 있던 애들이 두 사람을 흘긋 쳐다보았다. 윤정하는 눈치를 보면서 읊조렸다.

“야 내가 저걸 했으면 취업했지….”

“우리 쪽은 졸업하면 취직 확정인데. 너 아직임?”

“하. 경호과는 좋겠네….”

“어~ 엄청 좋아. 막 밥도 그지 같은 것만 주면서 6시간씩 연속으로 훈련도 시켜줌. 너도 오면 좋겠다.”

“절대 안 가. 잘 지내세요.”

“아 왜. 우리 과는 언제나 너를 환영한단다….”

그리고 다시 정적. 그지 같은 밥을 주거나 6시간씩 연속으로 훈련을 시켜주고 언제나 윤정하를 환영할 새라 아카데미의 경호과도 이제는 없다. 막 옆을 지나는 다른 우주선이 보였다. 윤정하와 채선우가 탄 것과 마찬가지로 그린 유니버스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실습용으로 학교 지하에 마련되어 있던 우주선은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용도였다.

‘깨끗하게! 맑게! 새로운 우주!’

판에 박힌 문구를 단 우주선의 전면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같은 학교 애들이 보였다. “어, 어, 시현아~” 옆에 있던 누군가가 전면창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웃기게도 옆에 있던 또 다른 애는 그 말을 듣고 울기 시작했다. 울음이 전염이라도 됐는지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전면창 바깥으로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랐던 행성이 완전히 부서져 파편으로 흩어진 게 보였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파편은 점점 작아졌고, 비현실적이게도 그건 실습하면서 나왔을 때 봤던 다른 우주 쓰레기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 근데 이렇게 쉽게 부서져도 되는 거냐?”

“내 말이.”

“막막하다….”

“아니 이런 식으로 떠날 생각은 없었는데.”

윤정하와 채선우가 중얼거렸다. 너무 황당해서 도리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게 막막한 졸업식 처음인 듯.”

“졸업 많이 해봤냐.”

“그냥.”

“이제 어떡하지….”

“영화 볼래?”

“인터넷 안 되잖아.”

“아 미친.”

윤정하와 채선우는 자신들과 비슷하게 혹은 전혀 다르게 막막한 얼굴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우주선 두 대가 나란히 우주를 횡단했다. 목적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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