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8월. 세계에 전운이 맴돌던 시기 미국에서 비행사들을 위한 파티가 열렸다. 각국의 유명한 비행사들이 한데 모여 근황을 나누는 자리였다. ‘유명한 비행사’라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람도 몇몇 있었는데 이네스 다비드가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번엔 공주님도 행차하셨네. 안 나는 거 아니었나?”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 작년에 피레네 프로젝트 이후로는 자주 보이던데.”
“그 프로젝트 망한 거 아니었어?”
“뭐…. 주피터는 망했지만. 아, 눈 마주쳤네.”
사람들과 소곤거리던 젊은 비행사가 위스키 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반대쪽에서 이네스 다비드 역시 그린 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는 망해가는 군수업체 다비드 사의 막심 다비드의 막내딸.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서는 결혼도 하지 않고 번듯한 직업 하나 없는 이네스 다비드는 많은 비행사에게 비웃음을 샀다. 트라우마 때문에 비행을 못 하겠다고 엄살을 피우는 이네스 다비드. 그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사람들은 이네스가 다시 비행기에 오른 것을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피레네 프로젝트에 참가한 것부터 의문이라나. 단지 멋들어진 종이 위에 제 이름을 얹고 싶었던 게 아니냐고, 트라우마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네스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뭇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건 피레네 프로젝트의 내막이다. 그때 하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천공섬이 어떤 곳이었는지도. 사람들이 아는 건 반쪽짜리 진실과 반쪽짜리 거짓이었다. 오로지 피레네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들만이 내막을 알았다. 이네스는 때로 모든 것을 밝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비밀을 내뱉고 머저리가 되느니 비밀을 머금고 인내하기로 선택했다. 그 비밀은 달콤하게 입 안을 맴돌았다. 뒤에서 열심히 떠들어보라지. 그래봤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언니!”
정장을 차려입은 클로이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이네스는 냉큼 클로이의 팔에 제 팔을 걸고 고자질하는 어린애처럼 수군거렸다.
“사람들이 또 피레네는 망했느니 뭐라느니 떠들지 뭐야. 혼자서 외로워 죽는 줄 알았어.”
“아항. 누가 또 그런 막말을 해? 어떤 사람들이야~? 내가 혼내줄까?”
말은 그렇게 해도 두 사람의 입가엔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공유하는 자들의 얄궂은 미소였다.
“됐어. 저런 사람들 신경 쓰면 시간만 아깝지. 그보다는 어떻게 지냈는지가 궁금한데.”
“아! 최근에 미국에 들렀는데…”
클로이는 신이 난 얼굴로 제 근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항공 정비로 유명한 윌포드의 막내는 이네스와 통하는 구석이 꽤 많았다. 두 사람 다 사업가의 딸이라는 것, 비행기를 몬다는 것, 철부지라는 것, 그리고 피레네 프로젝트에 함께했다는 것. 두 사람은 모두 피레네의 하늘을 경험했다. 피레네 프로젝트가 더 끝내주는 성공을 해서 둘의 이름을 드높이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겠으나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늘에 이름을 남겼다. 피레네를 경험한 이들 외엔 누구도 모르는 경지의 하늘 위에.
“비행기를 만들어볼까 하는데.” 클로이가 말했다.
“어머. 어쩌다 그런 결심이 섰대?”
“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때가 된 것 같아서? 다 만들면 언니도 태워줄게!”
“그러려면 잘 만들어야 해.”
“날 뭘로 보구~! 믿어요 언니!”
클로이가 섭섭하다는 양 이네스의 팔을 흔들었다.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사람의 팔이 맥없이 흔들렸다.
“알겠어.”
이네스가 웃으면서 걸음을 멈췄다. 클로이도 자연스레 옆에 섰다. 밤까지 이어진 행사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미국 국적의 비행사가 사람들의 이목을 한곳에 모은 뒤 말을 이었다. 그 해 초에 목숨을 잃은 비행사에 대한 추모, 국가 간의 평화를 기원하는 한마디, 그리고 비행사들의 앞날을 축복한다는 말.
“건배!”
각자 든 잔을 위로 들어 올리면 불꽃이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는다. 이네스는 문득 피레네로 빨려 들어가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이네스는 번개와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눈앞의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던 하늘. 그날 목격한 광경을 제대로 표현할 방도를 이네스는 알지 못했다.
언젠가 클로이는 그것이 다신 없을 불꽃놀이 같다고 표현했다. 옆을 돌아보니 클로이는 하늘에 붙박인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같은 하늘을 떠올리고 있는지 물어볼까? 이네스는 충동에 휩싸였지만, 말을 꺼내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때론 입 안에 머금기만 하는 것이 더 달콤하다는 걸 아니까.
두 사람은 하늘을 구경했다. 아무 말도 않고, 마지막 불꽃이 하늘에서 사라질 때까지.